‘달구벌을 달리다’
대구의 여름은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 막힘 때문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덥다.
대구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사람들도 조금은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 여름을 팀의 승리와 자신들의 꿈을 위해 달리는 이들이 있다.
20일 전날 열렸던 경기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던 그날, 2006년 대구FC의 시원한 폭풍을 위한 주역으로 발탁된 문주원(23,MF), 박정식(23,MF)을 만났다.
좋아하는 일이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후회하기 마련이고, 나도 모르게 회의감이 밀려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단 한번 자신이 축구선수로써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고, 단 한번 다른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진지한 좌충우돌 축구 이야기를 들으며 신인들의 풋풋함을 한껏 느꼈던 이날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공개한다.
Player Profile
대구의 허리에서 공격과 수비를 맡고 있는 이 두 사람은 83년생 동갑내기 친구이다.
능곡중-수원공고-경희대를 졸업한 문주원(이하 문)은 선수들의 이동으로 약해진 허리에 공격형 MF로 투입되어 활약을 펼치고 있다. 재빠른 동작과 플레이로 상대 진형을 흔들고 수비전환에 있어서도 미리 차단해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쳐주고 있다.
재치 있는 플레이만큼 그의 입담도 재치가 넘쳐난다.
“개그맨이요? 전 축구가 좋아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호남대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박정식은 대학교 시절 친절한 선배로 불리는 착한 청년이다. 지금도 박정식(이하 박)에 대해 호남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이것저것 하나하나 잘 챙겨주고 알려주는 선배로, 수비 실점에 있어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결과로 대답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대구에서도 대학교 시절만큼 안전한 플레이로 김현수, 최성환, 박종진 등 대 선배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수줍은 청년, 말 수가 적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요목조목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다.
“제가 말이 별로 없어요. 경기 전엔 더 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프로와 아마추어
축구선수경력 12년차. 프로선수경력 1년차.
12년이라는 경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프로라는 세계에서는 이제 첫 해를 보내고 있는 이들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에 대해 몸으로 실감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박) “볼의 전개가 빠르다 보니까 체력소모도 상당히 늘어나는 것 같아요. 몸싸움도 더 격렬해서 더 힘들죠. 몸으로 실감하는 그런 것들에서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대학시절에는 ‘호남대’라는 학교 이름을 가슴에 달고 출전하잖아요. 그런데 프로에 입단하고 나서는 가슴에는 대구라는 이름을 달고, 등에는 제 이름을 달고 뛰게 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게 제일 큰 차이인 것 같아요. 책임감이 더 가중되는 것 같아요. 부담스럽다는 것보단 책임감, 그게 많이 제 마음과 몸을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차이점을 알게 한다고 생각해요.”
(문) “말 그대로 프로니까 실력차이가 많이 나죠. 경험 같은 부분에서도 선배님들이랑 하다보니까 더 다양한 플레이가 있고, 그런 부분들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고 그렇죠.”
“FA컵 때 그런 걸 많이 느낀 것 같아요. 대학시절 상대팀으로 만났던 후배들도 있고 아무래도 새롭죠. 저는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뛰는 거니까요. 진짜 선배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날 저희가 중앙대랑 경기를 해서 이겼잖아요. 대학교 때 경기를 하고 난 기분이랑은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대학교 시절에 저희가 중앙대랑 세 경기를 했었는데 다 비겼거든요. 이겨서 기분이 좋긴 했는데 대학교 때 같은 대학교 팀을 이긴 기분이랑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긴장하라, 그라운드가 그대를 부를 것이니
대학팀과의 경기였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는 소감으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하던 이들은 왠지 도전을 받은 듯한 기분으로 경기를 했다며 말을 맺었다.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보통 사람들처럼 이들도 프로축구팀 대구FC에 취직했다. 학교의 명예가 아니라 구단의 명예와 더 나아가서 본인들의 명예까지도 철저히 지켜야하고 만들어 가야하는 현실에 놓여진 것이다. 첫 발령을 받고, 계약을 하고, 나의 회사의 첫 출근했던 기억. 조금은 어색하고 정신없었던 그들의 그 첫 번째 순간의 기억은 이러했다.
울산과의 경기에서 상대 진형을 돌파하는 문주원 선수 ⓒ2006 이솔희
(문) “대학교 감독님이 우선지명, 그러니까 자유계약 끝나기 하루 전날인가 갑자기 저를 부르시는 거예요. 이전에 대구행에 대해서 얼핏 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무런 말이 없어서 저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부르시더니 내일 대구 내려가서 계약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주섬주섬 챙겨서 다음날 새벽기차타고 내려와서 계약했죠. 다른 곳과 고민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구라는 팀에 끌렸어요. 감독님도 제가 그 팀과 맞을 거라고 생각하셨으니까 말씀한거라고 생각했죠. 대구 와서 계약하고 형들 훈련하는 것 보고 감독님하고 인사도 나누고 그러고 다시 올라갔던 기억이 나네요.”
(박) “전반기 끝나고 대구 이야기를 들었어요. 흘러나온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학 감독님이 대구에 가면 저랑 색깔도 잘 맞고 좋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이랑 둘이 와서 계약하고 갔었어요.”
(문) “와, 넌 감독님하고 같이 왔었어? 나는 혼자 새벽기차타고 내려와서 했는데. 좋았겠다.(웃음)”
뿌듯한 부모님의 얼굴을 뵈면 흐뭇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인터넷 신문사에 일하던 시절, 첫 원고료를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내 손으로 쓴 기사를 인정받고 원고료를 받던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이들도 프로 입단과 함께 시간이 흐르고 첫 연봉을 받았던 날. 기자처럼 기쁨에 하루 종일 미소가 떠나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박) “저희가 대구 입단해서 훈련할 때, 그때는 옷에 그냥 등번호만 있었어요. 훈련복이었죠. 경기 유니폼은 받지 않은 상태였는데, 리그 개막하니까 옷이 나오는 거예요. 처음 딱 받아봤는데, 뒤에 ‘박정식’ 이라는 제 이름이 쓰여 있는 거예요.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그날도 참 기분이 좋았지만, 아마 첫 연봉 받았을 때 그 때는 정말 더 좋았어요.”
(문) “첫 연봉 받았을 때 잊을 수 없죠. 받자마자 부모님께 갔어요. 부모님이 통장관리 하시거든요. 딱 드리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용돈 타서 쓰긴 하는데 불편한 건 없어요. 부모님 이 그 통장 보시면서 얼마나 뿌듯하시겠어요. 그 생각하면 행복해요.”
(박) “진짜 ‘아, 내가 돈을 버는 구나’ 했던 순간이었어요.”
내 삶의 원동력 축구
프로라는 이름을 달기까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들은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두 선수 모두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축구와 인연을 맺어 축구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축구를 통해 삶의 이치를 배웠다고 한다.
박 선수는 아버지가 이전에 잠시 축구를 하셔서 친근하게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돌아오시면 운동장에서 함께 공을 차며 축구를 시작했고, 부산에서 축구를 시작한 뒤 군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곳에서 본격적인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박) “저희 외가 쪽이 다들 운동을 하세요. 사촌 형이 하태권 선수거든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 아시죠?”
(아, 환상의 복식조 하태권,김동문 그 두 분 중의 하태권선수요?)
“네, 환상의 복식조 중에 그 분이 저희 사촌 형이에요. 형 말고도 외가 친척들이 다 운동을 하세요. 그 영향이 컸어요. 체격적인 부분도 외가를 닮았어요. 아버지의 영향도 컸죠. 만날 밤에 아버지랑 공차고 웃고 좋은 추억이에요.”
현재 축구협회 이영무 기술위원장이 운영하는 이영무 축구교실에서 축구를 시작한 문 선수는 어머니의 큰 반대를 무릅쓰며 경기를 뛰었다며 그 때의 아슬아슬한 축구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능곡초에서 능곡중으로, 능곡고에 입학했지만 하루 만에 수원공고로 전학 간 사연.
(문) “이영무 선생님이 ‘너는 축구해라’ 하시면서 뽑아주셨어요. 그래서 축구를 시작했죠.
근데 어머니께서 반대를 하셨거든요. 매번 선생님이 부모님 설득해주시고, 유니폼 입고 뛰게 되었어요. 그렇게 조금은 반대 속에서 축구를 시작했는데 제가 시작하자말자 한 달 만에 팔이 부러졌거든요. 어머니가 유니폼 숨기고, 그럼 저는 축구하러 가서 유니폼 받아오고. 계속 그 일을 반복했었어요. 나중에 되니까 장롱 속에 어머니가 숨겨놓은 유니폼이 가득 들어있더라고요.”
감독님 감사합니다
경기에 선발 출전한 문주원 선수. (오른쪽) ⓒ2006 이솔희
다정한 아버지와 함께하던 달밤의 공차기, 어머니와 매번 유니폼 숨바꼭질을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두 선수. 12년 동안 축구선수로 뛰면서 가장 많이 즐거웠고, 하루라도 조용할 날 없었던 그 시간들 속에 함께하는 네 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해본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잊지 못할 사람이라는 질문에 두 선수 모두 스승님의 존함을 서로 외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진정한 축구를 일깨워주신 분, 어려운 집안 형편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직접 스폰서를 자청하신 스승님.
그리고 추억 속에 잊혀질 귀여운 한 소녀와의 이야기까지 되돌아보았다.
(박) “저는 초등학교 때, 첫사랑이 생각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슈팅 연습하는데, 저희는 골대 위로 볼이 넘어가면 자기가 가지러 가야하거든요. 제가 뛰어서 가지러 가고 있었는데, 그 분이 그런 모습을 보고 절 좋아했나 봐요. 전 몰랐는데, 조그마한 편지를 주더라고요. 저희 학교에 연못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서로 만나고 그냥 친하게 지내게 됐어요. 그러다가 제가 전학을 가면서 서로 못 보게 되었거든요.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교 때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났어요. 그래서 대학교 입학해서 한 번 봤어요. 근래에도 봤고요.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괜히 이야기 했나? 쑥스럽네요.”(웃음)
“한 가지 더 이야기해도 되요? 정말 제 축구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분이계시거든요. 대학교 시절 감독님이신데 강압적이지 않으시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시고 다독여주셨던 분이세요. 신연호 감독님께 정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문) “ 저도 러브스토리 하나 할까요? (웃음) 저는 지도자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중 ․ 고교 시절 감독님. 제가 축구를 하면서 어려운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때 허기수 감독님이 정신적으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사실 외적인 부분도 힘들었거든요. 운동을 하다보니까 집안 형편이 안 좋았어요. 주위에서 운동 그만하라는 소리도 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대신 비용도 내어주시고 스폰서라고 하죠? 받아서 도와주셨어요. 오늘 대회 때문에 대구 오셨다고 좀 전에도 전화 오셨어요. 잊지 않고 매번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고교 감독님은 제가 축구라는 것에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세요. 제가 능곡고등학교로 입학을 했었는데 축구에 대해서 조금 별로 재미가 안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입학하자말자 하루 만에 수원공고를 갔어요. 가니까 정말 다른 세계에 와서 축구하는 것 같았어요. 두 선생님 모두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셔서 항상 감사드려요.”
첫 데뷔 무대
든든한 후원자들의 좋은 가르침 속에서 두 선수 모두 꿈 꿔왔던 프로라는 이름을 달았다.
스승님의 가르침 그대로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리는 그들. 데뷔전 떨렸던 그 순간을 기억하면 아직도 스스로의 모습에 미소를 감출 수 없고,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고 한다.
문선수는 전기리그 포항과의 원정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해 데뷔전을 가졌었다. 상기된 얼굴로 스틸야드에 섰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컵대회 부산과의 원정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박선수는 후반 4골이라는 실점을 당해 데뷔전을 패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문) “경기 이틀 전에 명단에 제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팀에 주일이형(윤주일)이 대학팀하고 경기 중에 다쳤어요. 제가 어떻게 하다가 엔트리에 든 거예요. 저는 뛸 거라고 생각을 안했죠. 그냥 이름만 명단에 올랐다고 생각했어요. 별 생각 안하고 그냥 몸 풀고 있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부르셔서 ‘저 자리 자신 있게 해라’ 하시는 거예요. 전반 끝나고 완전 긴장하기 시작했죠. 불안하고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혼자 어수선하고 막 그랬어요. 근데 그 때까지도 설마 했거든요. 후반에 교체출전 딱 하는데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어요. 잘해야겠다. 이 말만 생각하고 뛰었어요. 무지 기분 좋았어요.”
경기에 선발 출전한 박정식 선수. (왼쪽에서 두번째) ⓒ2006 이솔희
(박) “전 데뷔전에서 졌어요. 경기를 크게 졌어요. 전반전 1 : 1로 비기고 후반전에 골을 많이 먹어서 많이 우울했죠. 그래도 데뷔전인데 잘 하고 싶었어요. 전반전 끝나고는 더 잘하면 결과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결과가 안 좋아서. 많이 속상했어요. 시작이 조금 우울하긴 했지만 계속 우울한 경기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기운 냈죠.”
처음은 그러하다. 항상 아쉽고 부족한 것만 보이는 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처음이기에, 시작이기에 그러한 실수들도 자연스레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자랑스러운 아들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들의 부모님 또한 행복했을 것이다. 두 선수 모두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부모님의 어깨에 커다란 짐을 지어드리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는 말과 본인들로 인해 다른 형제들이 피해 본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로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는 직업을 가진 축구선수가 되었기에 든든한 오빠이고 싶고, 다정한 막내아들이고 싶다는 귀여운 83듀오의 가족사랑.
(박) “밑으로 여동생 있어요. 저보다 한살 어린 동생인데,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저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시느라 동생이 항상 두 번째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한테 참 미안해요. 부모님들께도 항상 죄송스럽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운동을 하다보면 이렇게 저렇게 쓰이는 돈이 많잖아요. 단 한번도 힘든 얼굴 하지 않으시고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프로선수 되었으니까 돈도 벌고 있고. 잘해드려야죠.” (웃음)
(문) “형이 이제 군제대해서 복학을 했어요. 체육교사 임용고시 준비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정말 축구하는 거 싫어한다고 그랬잖아요. 아버지가 만날 은근슬쩍 돈 주면서 갔다 오라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어머니한테 걸리면 아버지랑 저랑 구석에서 눈치보고 있고 그랬어요. (웃음) 조금 지나면서 어머니도 인정해주셨고 그 뒤로 한해도 안 빼먹고 계속 한약해주세요. 합숙도 항상 함께 해주시고. 너무 감사하죠. 막내아들이 이제 든든하게 지켜 드릴 거예요.”
신인이기에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그들은 신인이다. 신인이기에 할 수 있고, 신인이기에 해야 하는 일이 어느 자리에서든 있기 마련이다. 신인이기에 겁 없이 도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본 기자의 단순한 생각은 두 청년의 말에 일침을 당했다.
대구FC의 허리에서 공격을 물꼬를 열어주는 문주원 선수. ⓒ2006 이솔희
(문) “오히려 신인이니까 더 조심스러워요. 물론 더 도전할 수 있고 할 수 있지만 또 다르게 보면 일단 신인이니까. 아무렇게나 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축구는 11명이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더욱이 혼자 튀는 행동이나 나만이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내어 보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더 조심스러워요.”
(박) “신인이니까 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작은 것 하나도 신경 써서 하게 되고 대충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경기장에서 주눅 들거나 소극적으로 다들 운동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일상적인 행동에 있어서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문) “신인이니까 선배님들한테 잘하고 그래야 하잖아요. 어렵고 그럴 수 있는데 저희 팀은 너무 가족 같아서 좋아요. 선배님들한테 예의 있게 행동하고 또 서로 재밌고 웃고 즐기고 할 때는 서슴없이 장난치고 좋아요. 다들 친 형제들 같아요. 오 선생님(오주포 트레이너) 하고도 재밌게 지내요. 텔레비전에서 유재석씨가 세리모니 하잖아요. 선생님하고 그냥 서로 보고 있다가 막막 가슴 툭툭 치고 손에 뽀뽀하고 하늘에 찌르고...(웃음)”
83듀오의 칭찬 릴레이
다음 경기 준비를 위한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 박정식 선수. ⓒ2006 이솔희
선수단 모두 재미있고 즐겁다는 두 선수.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숙소생활을 하는 두 선수는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누군가 자신의 좋은 점을 가르쳐 주거나 칭찬을 해줄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무척 뿌듯해진다. 조금은 쑥스럽지만 서로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열어주는 칭찬 릴레이. 무언의 압박 속에 먼저 박 선수가 입을 열었다.
(박) “주원이는 정말 재밌어요. 옆에 그냥 같이 있으면 미소가 지어져요. 부담 없이, 거리감 없이 재밌고 가깝게 잘 대해줘요. 운동할 때도 열심히 하고, 뭘 하든 사소한 거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좋아요.”
(문 - 너 너무 좋게 말했다. / 박 - 너 좋게 말해라 ~)
(문) “정식이는 매사에 무엇이든 열심히 해요. 먼저 칭찬을 해줘서 그런 게 아니라 운동할 때 게임 뛸 때 보면 ‘정말 열심히 뛴다’ 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맡은 책임감이 강해요. 자기가 할 일 다 하고, 숙소나 이렇게 단체 생활할 때 안하는 애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 먼저 일하고 다 정리하더라고요. 단체 생활을 잘해요.”
오고가는 무언의 압박 속에 서로의 숨은 정을 드러낸 두 선수.
축구에 대한 신인이기에 어려운 이야기 보단 표현하며 쉽게 다가가는 것이 인터뷰의 주제였기에 더 이상의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두 선수 모두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음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진다면 두 선수의 마음과 닿은 것이다.
스스로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어느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몇 해가 지나도 자유롭게 미래의 꿈을 그릴 수 있는 것. 그것이 시작하는 이들에게 좋은 방향키가 되지 않을까한다. 나의 이미지에 한계라는 선을 긋지 않고 더욱더 언제나 자유롭게 미래를 그려나가는 문주원, 박정식 선수가 되길 기대해본다.
(문) “게임 꾸준하게 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제 개인 기량도 향상 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먼저 팀에 힘을 더 할 수 있도록 노력할거예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외리그도 뛰고 싶어요. 일단 목표를 크게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나가고 싶어요. 지켜봐주세요.”
(박) “대학교 때 목표가 프로 입단이었잖아요. 일단 그 꿈은 이루었으니까, 주원이 말처럼 경기 꾸준하게 뛰고 열심히 잘 해야죠. 대구에 입단했으니까 대구를 위해서 열심히 뛰어야죠. 경기장 많이 찾아주세요.”
K-리그 명예기자 이솔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