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저녁이 지나가는 길에 서 있었다 ●지은이_김종윤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3. 6. 26
●전체페이지_120쪽 ●ISBN 979-11-91914-42-9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존재의 삶을 발견하고 이름을 지어주는 시
김종윤 시인의 시집 『저녁이 지나가는 길에 서 있었다』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초목을 뭉뚱그려 잡초나 잡목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하나의 이름을 정답게 불러준다. 풀이나 나무 이름을 잘 안다는 사실에서 시인의 독특한 삶의 면모와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잘 드러난다.
금강초롱꽃은,
식민지 시대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긴 우리 꽃이지
세상에는 점점 잊히는 이름도 있고
새롭게 고쳐 부르는 이름도 있지만
금강초롱 청초한 이름에는
우리 몸에 아리게 새겨진 빗살무늬처럼
골마다 이랑마다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 있지
금강산 바람처럼 금강산 바위처럼
금강산 붉은 소나무처럼
지금도 금강산에서 초롱불로 피고 지는 꽃
―「금강초롱꽃」 부분
나무 이름, 풀이름, 새 이름을 잘 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존재자에 관심이 많고, 존재자를 사귀며 관찰하는 시간을 오래 가져서 저마다의 다름을 안다는 것이고, 세계의 다양성을 온몸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시인의 자연 친화적인 성향이 시에 잘 반영되어 있다. 도감을 통해 배운 지식이 아니라 생활 현장에서 필요한 만큼 자연스럽게 몸으로 느끼고 익힌 이름들이기에 존재자마다 이름을 알기까지 많은 사연 또한 깃들어 있을 것이다. 몸소 경험한 존재자들의 개성 있는 표현을 놓치지 않고 시로 옮기는 김종윤 시인의 시를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사귐의 노래라고 부를 수 있다.
다람쥐 볼은 볼록볼록 배부른 아기집이라서
비단벌레를 낳고
붉은박쥐를 낳고
하늘다람쥐를 낳고
참수리를 낳고
스라소니를 낳지
우리가 진즉에 지워버린 이름들
―「숲으로 가는 다람쥐」 부분
시인에게 시는 새롭게 이름 짓는 일을 거쳐 생긴다. 이름 짓는 일에는 “이름뿐인 허울의 껍질을 벗”(「기둥」)기고, 이름의 실속을 되찾는 일도 포함된다. 시에서 이름이 어떤 생각이나 뜻이 깃든 낱말일 뿐 아니라 저임을 이르는 일이라면 이름은 어떤 뜻을 다 이룬 것이라기보다 이루어지는 가운데에 있는 일, 곧 어떤 됨됨이, 곧 존재 자체를 이르는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밑이 좁아야 쓰러져!
깨진 플라스틱 두레박을 대신할 요량으로 결 좋은 목재를 골라 마름질하고 대패질해서 두레박을 내놓았네 옆에 서서 말없이 보고 계시던 늙은 아버지가 건넨 한마디 말씀
깊은 우물 맑은 물을 힘 있게 길어 올릴 욕심으로, 기술 선생 실력으로 모양 좋은 두레박을 만들었지만 물 위에서 쓰러지지 않는 두레박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바닥에서 넘어져야 비로소 물에 잠기고 속을 채워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아직도 모르고 살고 있네
―「두레박」 전문
두레박으로 달고 시원한 우물물을 길어 마시던 일은 전설이 되었다. 두레박은 모양만 좋을 것이 아니라 우물물에 닿았을 때 잘 넘어져야 제구실을 다할 수 있다. “바닥에서 넘어져야 비로소 물에 잠기고 속을 채워 다시 일어설 수 있음”, 이것이 두레박의 이름에 담긴 본래의 뜻이다. ‘두레’가 “농촌에서 농사일이 바쁠 때 서로 도와서 공동으로 일하기 위하여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이고 ‘박’은 물 떠먹는 바가지를 뜻하므로 마을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도구의 이름으로 이보다 더 좋은 말을 찾기 힘들 것이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는 세태, 존재 자체를 망각하고 사는 현실에서 시인은, 저마다 제자리에서 제 빛깔과 제소리만으로 아름다운 임들의 존재를 시에 모시려고 애쓴다.
시인은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시인은 누구나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말하고, 그냥 지나친 것을 말하고, 그렇게 표현할 생각을 해보지 못한 어떤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시인은 좋았던 일이지만 우리가 잊고 사는 존재도 드러내 밝힌다. 우리의 혼란스러운 느낌이나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면 그 지각 현실과 감정의 현실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느낌이나 감정에 적실한 이름을 붙이고 서로 공감하면서 느낌이나 감정이 질서를 찾게 도와주는 김종윤 시인의 존재의 향연이 독자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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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제1부
저 섬에 가고 싶다·11
낫들·12
흰 종이 한 장 위의 꿈·14
가을비 냄새·16
눈을 감으면·18
봄 끝에 비로소 꿀벌 한 마리·20
시몬 바일스, 아름다운 그녀·21
암탉의 아침·22
층층나무 우산·24
봄비 안부·25
검둥개·26
오색 1·28
11월·30
저녁이 지나가는 길에 서 있었다·31
276·32
제2부
그림자·35
대숲에 서면·36
숲으로 가는 다람쥐·38
겨울 무창포·40
빗살무늬들·41
이명에게·42
주름잎·44
적막(寂寞)·45
오색 2·46
꽃눈·47
한가한 날·48
금강초롱꽃·50
이쪽·52
국화들·54
두레박·56
제3부
나비야 소풍 가자·59
경운기·60
땅강아지·62
마침내·64
상처가 기우는 세 개의 풍경·66
어둠 속에서 우리는·68
멀어지는 물살처럼·70
미선나무 어머니·71
밀렵·72
탁란·74
피라미들·75
이런, 이런, 이런·76
포도밭 터·78
고구마를 사랑하는 방법·80
기둥·81
제4부
노(老)각·85
3등·86
연필 깎는 밤·88
길을 잃다·90
꿀벌에게·93
삼십 년·94
오래된 공·95
길을 깨트리다·96
낙엽들·98
늙은 메타세쿼이아·99
동병상련·100
동행·102
어떤 안부·103
기권이라는 용기·104
해설│권덕하·105
시인의 말·119
■ 시집 속의 시 한 편
누가 여름밤 해변에 섬을 밝혔을까
해당화 마른 가시 줄기와 해풍에 쓸린 솔방울 풋 도사리들, 파도에 밀려온 폐목으로 밝힌 불의 섬
저 섬은 조왕 할멈 형형한 눈빛 같아서
푸른 바다 껍질을 열고 나온 불꽃이 밤새 어둠을 밝히고, 얼굴 설은 사람들이 검은 장막을 걷고 모닥불 울타리 안으로 걸어 들어와 서로 눈인사하고 아하! 마침내 한식구가 되는 곳
저 섬은 메진 바위 절벽 끝에 홀로 선 등대 같아서
거친 난바다 너머에서 만난 희망 절절한 섬, 어둠을 사르는 혼의 섬, 옆에만 다붙어 있어도 절로 가슴 응어리가 풀리는 섬, 짠내 절은 상처를 꺼내어 널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빛의 섬
저 섬에 가고 싶다
―「저 섬에 가고 싶다」 전문
■ 시인의 말
눈물샘이 깊어졌습니다.
갈증의 본능으로
언어의 두레박을 자꾸 내립니다.
때로는
하늘 소리를 맑게 길어 올리는
성당의 무쇠 두레박이 되고저
2023년 여름
김종윤
■ 표4(약평)
존재와 감각의 집이 되는 언어가 있습니다. 고유한 임의 몸이 되는 시가 있습니다. 임의 고유한 표현으로 어둠을 사르며 밤을 밝히는 시인이 있습니다. 시 덕분에 임의 양태는 사라져도 임이 남긴 존재의 흔적을 통해 저 임은 보존됩니다. 희망 없는 시대, 희망이 고문한다는 말이 횡행하는 시대에 빛의 섬이 있습니다. 임들 사이에 감각들의 일어섬이 있고 다가섬이 있습니다. 관계의 섬, 내 삶에서 서로 몸을 주고받는 섬, 나와 임이 함께하는 섬, 우리가 회통하여 한식구가 되는 자리에서 어둠을 밝히는 섬, “가슴 응어리가 풀리”고, “짠내 절은 상처를 꺼내어 널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빛의 섬”은 저 임의 아름다운 표현으로 충만한 시가 아닐까요.
_권덕하(시인)
■ 김종윤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1998년 『공무원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 『텃밭, 생명의 노래』, 『길에게 길을 묻다』, 『네모난 바퀴를 가졌네』, 『나뭇잎 발자국』, 『금강 천리 길』, 『기술교사의 학교일기』가 있다. 현재 ‘화요문학’, ‘좌도시’, ‘해밀’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댓글 김종윤 시인의 시집 『저녁이 지나가는 길에 서 있었다』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과 사랑(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대전 종윤 시집 잘 도착했어요, 이번에 대전문협 한금산문학상도 받아요.
축하, 축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