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1:28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개역개정판)
잠언 21:28 거짓 증인은 망하고, 그의 말을 듣는 자도 영원히 망할 것이다. (쉬운성경판)
잠언 21:28 위증을 하는 사람의 증언은 사라지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의 증언은 채택된다. (새번역성경)
잠언 21:28 거짓 증인은 멸망하려니와 듣는 사람은 확고하게 말하느니라. (한글흠정역)
잠언 21:28 거짓말하는 증인은 망하지만, 잘 듣는 사람은 계속 말할 수 있지. (새한글성경)
Proverbs 21:28 A false witness shall perish; But the man that heareth shall speak so as to endure. (ASV)
위증하는 사람들이 100% 발각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확실한 증거를 목격한 증인의 말에는
위증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힘이 담겨 있다.
거짓말을 할 때의 심리와 사정은
각양각색이나
대체로 믿는 자가 거짓말을 할 때
그 믿는 자가 가진 성령의 힘이나 경건함의 무게가
갑자기 상실되어 버린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사사기 16장에서 삼손의 머리가 잘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반면에 애매한 경우가 있는데
요한복음 7장...
동생들에게는 큰 형님이신 예수가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 속에 있을 때
동생들은 믿음, 또는 최소한의 옹호 대신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요 7: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개역개정판)
예수님을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는 사람 취급한 것일까?
이것은 적극적인 적대감이라기보다는
애매한 스탠스에서 나오는 중립적 반응 같아 보인다.
가족들도 그랬으니
남들은 오죽할까?
요 7: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개역개정판)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확실한 증거와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이유는
확실한 증거나 증명을 가진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이고
그들의 말에는 힘이나 영향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4장 우물가의 여인 같은 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으며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요 7:6)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우니(요 7:2)
애매하게 이러지 마시고
유대로 가서 드러내시죠."
주님의 반응은 NO였는데 (요 7:8)
이게 무슨 빈정상하거나 삐져서 안가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때와 기한의 관한 말씀인 것으로 이해된다.
어찌되었거나
확실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일종의 홍보는
확신의 표현이 아닌 불안과 불신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거 진짜로 진짜로 좋~~~습니다."라는 겉으로만 확실한 명제보다
애매하지만 삶의 본질을 건드린 홍보와 광고가 울림을 주는 경우도 있다.
KCC 스위첸 CF와 같이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CF는
홍보하고자 하는 대상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화제성을 낳기도 했다.
https://youtu.be/L5lyx7JASIM?si=b0rCOUT70fb1QX9A
https://youtu.be/B0wcoNbqihc?si=t8zucHfazq-5QlmH
그러나
거짓이나 무지, 또는 자기 확신으로만 가득찬 홍보는
대부분의 영역이 애매함으로 남아 버린다.
남들이 알아봐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은
위증하는 자가 남들이 알아채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그 성격은 참 유사하다.
내가 가진 말에 힘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보고 들은 것에 확신하는지에 달려 있다.
어차피 증인은 다수가 아닌 소수이다.
(요즘은 실시간 중계라는 매체에 의해 증인이 다수가 되는 수도 있지만...)
애매한 위치에서 이야기하는 자들은
대체로 안전한 위치에 있다.
예수님은 미움을 받았지만
형제들은 미움을 받을 일이 없었다.
이 일을 행하려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는 말은
애매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뜻도 있지만
본인들의 애매함만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그 애매함은
세상의 방식으로 말하고,
세상이 듣기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하며
미움 받을 용기조차 갖지 못한 채
자기 홍보와 브랜딩을 하는 수많은 세상의 영역과 이방 종교와 같은 논리로
세상이라는
가장 익숙해보이는, 안전지대처럼 보이는
가장 위험한 애매함과 혼돈의 공간에서 맴돈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에게 줄지도 모를 그 약간의 불편함마저 최소화하기 위해
진실이 가진 힘보다
애매함의 영역에 머묾으로써
진리를 확실히 선포하지 않으며, 진리의 영역에 거하지도 않는다.
빌라도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