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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술은 사회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시각’ 열어줘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지식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다. 어떤 지식인은 지식사회 내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어떤 지식인은 지식사회 외부인 시민사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행사한다. 이 시민사회가 물론 단일하지는 않다. 지식의 발견에 우호적인 이들과 무관심한 이들이 공존해 있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에서 전자 그룹은 부르주아지 또는 교양시민 계층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새로운 지식의 주요 소비계층이자 정신적 후원 그룹이 돼 지식과 사상의 발전에서 중요한 사회적 지반을 이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시민계층에게 예술과 문학을 계몽시킨 대표적인 저작이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1892~1978)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다. 1951년 영어 번역본이 나오고 1953년 독일어 원본이 출간된 이 책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와 함께 서구 미술에 대한 대표적인 입문서다. 이 저작이 갖는 장점은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음악·영화를 포괄하는 예술의 종합 입문서인 동시에 뛰어난 역사서라는 점에 있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영국에 정착해 이 책을 발표하고 사망하기 1년 전에야 조국인 헝가리로 돌아갔던 이 방랑하는 유럽 지성의 끝없는 예술 탐험을 돌아볼 때, 그리고 이런 탐험과 그로부터 비롯된 사색이 이 책 안에 온전히 담겨 있음을 고려할 때, 출간된 지 60여년이 흘렀지만 이 책과 같은 저작이 다시 쓰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시민계층에게 예술과 문학을 계몽시켰다.
■선사시대부터 영화의 등장까지
“홀란트(네덜란드) 사회는 그(렘브란트)로 하여금 자유롭게 성장하는 것만 허용했고 그가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는 순간 가차 없이 그를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톨스토이)의 죽음으로 유럽이 ‘주인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 토마스 만의 느낌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인용한 두 문장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서술 방식의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렘브란트와 톨스토이에 대한 설명에서 볼 수 있듯 하우저는 예술가의 삶과 창작 활동을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켜 이해하고 기술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네 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저작이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결코 지루하지 않은 저작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넓은 의미의 비판적 마르크스주의 자장 안에서 쓰인 책이다. 그는 하인리히 뵐플린의 양식에 주목한 예술사적 방법을 거부하고 막스 드보르자크의 정신을 강조한 예술사적 접근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나아가 그는 인간 의식이 사회·경제 변동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카를 마르크스, 죄르지 루카치, 카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적 가정을 수용하고, 이러한 문제틀에 입각해 서양 예술사를 기술한다.
하우저에게 명시적·묵시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은 같은 헝가리 태생의 미학자 루카치와 사회학자 만하임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인간 의식이 물질적 요인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루카치의 계급의식론보다 경제적 요인을 중시하되 ‘자유부동하는 존재’로서의 지식인 위상을 부각시킨 만하임의 지식사회학론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이론적 착상에 기반을 둬 하우저는 사회·역사 변동과 결부된 예술양식의 변화와 예술가의 활동에 대한 서술에 변화무쌍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구성은 ‘제1권: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제2권: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끄’, ‘제3권: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 ‘제4권: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로 이뤄져 있다. 조토에서 피카소에 이르는 화가들, 단테에서부터 프루스트에 이르는 작가들, 바흐에서 스트라빈스키에 이르는 음악가들, 그리고 대중예술의 새로운 기수인 영화의 등장 등 이 책이 펼쳐놓은 예술사의 풍경은 흥미로우면서도 교육적이고, 현란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가져온 성공에 힘입어 하우저는 이 책의 이론틀이라 할 수 있는 <예술사의 철학>(1959)을 발표했다.
■예술에 대한 탁월한 입문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발표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내재적 방법과 예술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기존의 예술 이론 및 방법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사회 속의 예술에 대한 분석이라는 예술사회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예술 역시 포괄적 의미에서 지식 형태의 하나라면, 어떤 지식도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지식사회학의 주장을 이 책은 생생히 증거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돌아보면 양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한편에서 이 책이 예술에 담긴 사회적 의미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예술가와 그 작품이 갖는 개별성이 과소평가된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예술이 천재적 예술가의 고독한 창조의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하우저는 자유부동하는 예술가의 위상을 주목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놓인 사회적 맥락을 때때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다른 한편에서 이 책은 미술과 문학을 위시한 서양 예술과 그 역사에 대해 더없이 탁월한 교양 입문서다. 예술 감상은 삶과 사회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의 하나다. 하우저는 사회와 문화, 경제와 예술, 화가와 감상자, 작가와 독자 등의 관계를 주목함으로써 예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및 계몽을 선사한다. 고전 읽기는 시민들에게 요구되는 덕목들의 교육에서 출발점을 이룬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교양 교육에서 여전히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고전임에 분명하다.
■한국어판 저작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백낙청, 염무웅, 반성완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져 창비에서 1974년부터 1981년까지 네 권으로 출간됐다. 이후 1999년에 개정 1판, 2016년에 개정 2판이 나왔다. 개정 2판에는 많은 컬러 도판들이 실려 있다 .
■1966년 ‘창작과 비평’에 처음 소개 진보적 예술·문화론의 필독서 꼽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국내에 소개한 것은 계간지 ‘창작과 비평’이다. 영문학자 백낙청이 책의 마지막 장인 ‘영화의 시대’를 1966년 ‘창작과 비평’에 처음으로 소개한 후 1974년 ‘현대편’이 창비신서 제1권으로 출간됐다. 이후 ‘고대편’(1976), ‘근세편 상(1980)’, ‘근세편 하(1981)’가 잇달아 나왔다.
1970~1980년대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진보적 예술론과 문화론의 필독서가 됐다. 이 책을 통해 루카치, 테오도어 아도르노, 발터 베냐민의 미학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들의 저작들이 국내에 소개됐다. 루카치와 베냐민의 주요 저작들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보다 먼저 쓰였음을 고려할 때, 독일 미학 및 예술론의 한국적 수용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번역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와 같은 저작을 우리말로 소개하는 일이 독창적인 저작을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까닭은 그 번역이 미치는 영향에 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이 밝혔듯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지식인들에게 문학과 예술을 통해 사물과 세계를 인식하는 서구적 방법을 알려줬다. 유홍준뿐만 아니라 1970~1980년대 공부를 시작한 인문사회과학도들에게 이 책은 서양 예술에 접근하는 기본 교재였다.
국문학자 김윤식은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에서 백낙청과 ‘창작과 비평’의 역사를 검토하는 데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기여를 주목했다. 김윤식에 따르면, ‘문학과 지성’을 이끈 김현·김치수·김병익·김주연의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에 맞서 ‘창작과 비평’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번역해 세계 문학과 예술의 흐름을 소개한 것은 자신의 문학론을 제시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문학의 사회적 맥락을 중시한 ‘창작과 비평’에 이 책은 매우 유용한 텍스트였던 셈이다.
필자의 경험을 돌아봐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만큼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책도 드물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에 이 책을 통해 서양 미술에 입문했고, 하우저의 시선으로 작품들을 감상했다. 이 책에서 하우저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부분 중 하나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놓인 매너리즘에 대한 설명이다. 파르미자니노, 틴토레토, 엘 그레코의 걸작들을 실제로 봤을 때 하우저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