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은 이미 허리 높이에 걸려있었다. 까마득해 보였다. 끝머리를 쥔 아이들이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더욱 팽팽해졌다. 여름 햇살이 그 위를 반뜩이며 걸어갔다. 고무줄이 굵어졌다 가늘어지는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몸을 앞뒤로 가볍게 흔들었다. 하나, 둘, 셋, 넷.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입을 모아 부르는 노래에 맞춰 발을 구르며 고무줄에 뛰어들었다. 용케 다리 사이로 고무줄이 들어왔다. 발을 교차해 가며 왼편, 오른편으로 옮겼다. 박자에 맞춰 뒤꿈치로 밟기도 했다. 팔짝팔짝 뛰면서 뒤로 돌아서는데, 치맛자락이 팽팽한 고무줄에 휘리릭 감겼다. 치마를 잡고 주저앉았다. 고무줄은 튕겨 올라가고, 노랫소리가 그쳤다. 딱 중간인 허리에서였다. 발목에서 시작해 종아리, 무릎, 허리를 거쳐 가슴, 목, 머리 순으로 고무줄은 높아졌다.
나는 자주 전학을 다녔으므로 아이들과 서먹했다. 그래도 노랫소리가 들리면 밖으로 나와 공터 한쪽 작은 바위에 앉아있곤 했다. 그날따라 편을 가르기에 한 명이 모자랐다. 한 아이가 손짓으로 쭈뼛대는 나를 불러 끼워주었다. 아이들의 실망하는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들의 놀이에 몰두했다.
달리기를 못하는 내가 고무줄뛰기를 잘할 리 만무했다. 운동회 날, 횟가루로 그어진 하얀 선에 서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귓속이 울리고 사정없이 다리가 후들거렸다. 달리기 트랙은 저 멀리 한 점에서 소실되는 기찻길처럼 끝이 없어 보였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호루라기 소리에 힘껏 뛰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옆에 섰던 짝지의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달릴수록 땅이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뛰어도 간격은 벌어지기만 했다. 순간 발이 붕 뜬 것 같더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넘어진 것이다. 무릎에서 피가 났다. 절룩거리며 겨우 다음 조 아이들과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눈물을 흘렸다. 꼴찌를 한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손목에 도장도 찍히지 않았고 당연히 공책 선물도 없었다. 둘러보아도 짝지는 보이지 않았다. 중간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 후 나는 한 번도 달리기에서 꼴찌를 면한 적이 없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선생님은 키 순서대로 번호를 붙였다. 60명이 넘는 반에서 57번이 내 번호였다. 나보다 작은 친구는 다섯뿐이었다. 앞번호의 키 큰 친구들은 교실 뒤쪽에 앉았다. 수업 시간이면 칠판 앞에 앉아 눈을 말똥거리기만 하는 나와는 달리 서로 쑥덕거리기도 하고 키득거리기도 했다. 선생님은 지나가며 지휘봉으로 내 머리를 톡 치다가도, 그 친구들 앞에서는 허리를 펴고 반듯하게 걸어갔다. 키가 크면 빨리 어른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교실 뒤에 공납금 납부 그래프가 붙으면 내가 중간 이하라는 걸 체감하곤 했다. 나름 학비 납부 독려를 위해서였겠지만 그런 날은 학교에 있고 싶지 않았다. 유독 내 이름에서 푹 낮아진 막대는 우리 집 형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세상에 위와 아래를 나누는 선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선자를 만난 건 세 번의 전학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5학년 여름이었다. 또래인데도 선자는 두세 살 위로 보였다. 키가 크기도 했지만, 태도가 달랐다. 공터 옆 느티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친구들이 노는 걸 지켜보다가 간혹 시선을 하늘로 돌리며 미간을 찌푸리곤 했다. 좀 지루해하는 표정 같기도 했는데, 선뜻 다가갈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선자의 진면목은 고무줄 앞에서 나타났다. 맨발로 고무줄에 뛰어들어 거침없이 허리를 지나 가슴과 목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했다. 이제 고무줄은 머리 위 주먹에 얹혔다. 치마를 말아 넣은 검정 광목 팬츠는 공처럼 부풀었다.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 고무줄을 향해 달렸다. 순식간에 양팔로 땅을 짚고, 다리를 들어 올렸다. 발끝이 거뜬하게 고무줄을 넘었다. 아이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선자가 어느 날 편을 짜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약간 낮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응숙이, 너는 내 편!”
어쩌다 놀이에 나가면 나는 늘 마지막까지 선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끼면 그 팀의 전력이 중간 아래로 내려갈 터였다. 하지만 선자가 나를 선택하면 아무도 불만이 없었다. 나의 모자란 실력을 메꿔주니 도리어 양 팀의 실력이 비슷해져 놀이가 더 재미있어졌다. 나는 자주 고무줄뛰기를 하며 놀았다.
무엇이든 하면 는다. 선자 덕분에 나도 허리 높이의 고무줄쯤은 뛸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도 일부러 뒤로 물러나 지나치게 고무줄을 팽팽하게 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 허리에서 고무줄뛰기를 마치며 듣는 노래의 끝자락은 항상 즐거웠다.
“언제나 아름다운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어쩌면 선자는 내 어린 시절 영웅이었는지 모르겠다. 약자의 편에 설 용기가 있는 사람이 영웅이다. 혼란스러운 뉴스 사이로 영웅의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다. 집단 폭행을 당하는 학생 앞을 가로막은 청년이 있다. 가난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준 변호사도 있고, 이웃의 외로운 노인을 오랫동안 보살핀 평범한 주부도 있다. 크고 작은 영웅들이 꿈꾸는 것은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닐지 싶다. 지금도 선자는 약자를 향해 “너는 내 편!”이라고 외치고 있을까. 그 목소리가 그립다.
(김응숙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