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노트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다!
영화 <식스틴 블럭>은 한 때 잘 나가던 형사였지만 경찰 내부의 위험한 커넥션에 의해 낙오되어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채 절망 속에 살아가던 한 형사가 우연히 맡게 된 증인 호송 임무를 통해 잘못된 지난 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마지막으로 옳은 일에 자신의 남은 인생 모두를 걸게 된다는 내용으로 감독 ‘리차드 도너’와 오랫동안 끈끈한 친분을 이어왔던 감독겸 시나리오 작가 ‘리차드 웽크’의 상상력을 통해 탄생했다. 그는 “모든 걸 다 가졌다가 인생을 포기하게 된 한 남자가 그 무엇도 가져본 적은 없지만 항상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청년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 속에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런 두 사람이 절박한 위험 속에 118분을 함께 하고 나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가 궁금했다”라고 웽크는 덧붙였다.
작가 리차드 웽크, 3개월간 뉴욕 경찰과 동고동락하다!
리차드 웽크는 이 작품을 위해 3개월간 뉴욕 경찰의 24시간을 일거수일투족 관찰했다. “캐릭터들의 대사 하나하나까지 실제 경찰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한 그는 경찰도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유혹의 손길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으며, 공직인 경찰 신분이기 때문에 어떠한 선을 넘어서게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던 경찰 내부의 다양한 현실적 이야기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토대로 그는 자신의 상상력 속에 접목 시켜 영화 <식스틴 블럭>의 시나리오 초안을 완성하게 된다.
액션 영화의 거장 리차드 도너에게 전달된 시나리오 초고!
‘리차드 웽크’는 시나리오 초안이 완성되자 ‘리차드 도너’ 감독과 프로젝트에 대해 상의한다. “웽크가 집에 찾아와서 한 20분 정도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난 웽크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작품의 연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리차드 도너 감독은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작가의 이야기 중 상황 설정 정도의 내용인 “6년 전까지 최고의 팀웍을 자랑하던 두 형사 잭 모슬리와 프랭크 뉴전트는 경찰 내사에서 밝혀진 비리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하지만 간교한 형사 프랭크는 자신의 죄목까지 잭에게 뒤집어 씌우고 위기를 벗어난다. 구속만은 면하게 된 잭은 한직으로 물러난 후 삶의 희망을 잃은 채 술에 의지하며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라는 부분만을 듣고도 영화 속 그림이 그려졌다고 한다.
리차드 도너, <식스틴 블럭>의 연출을 결심하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 볼 줄 알았지만 리차드 도너는 ‘복수는 하지 말자’고 내게 제안했다. 그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는 순간이었고, 한 번 시작해 보자는 그의 답변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리차드 웽크의 말대로 이 이야기를 단순한 복수극으로 끌어 가고 싶지는 않았던 리차드 도너는 “예상은 했지만 단순한 구조의 스토리는 아니었다. 웽크는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 변화의 계기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사소하고 하잖은 것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그에게 지금 시나리오면 충분할 것 같다고 했다.”고 연출 의사를 전달한다.
영화 <식스틴 블럭>에 대해?
스토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걸 가졌다가 인생을 포기한 남자와 가진 것은 없지만 포기하지 않는 남자가 16개 블럭을 지나는 2시간 동안 서로의 인생에 큰 변화를 준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같은 휴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 속에서 하고 싶었습니다
캐스팅에 대해?
브루스 윌리스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흥미롭지만 문제가 됐던 건 브루스가 망가져야 된단 거였죠.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에게는 커다란 도전이었을 겁니다. 저 같이 볼품없는 외모를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용기 있는 스타급 배우들이 헐리웃에 없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는 달랐죠. 그는 용기 있는 진정한 배우였고 배역을 기꺼이 선택했으며 또 훌륭히 소화해냈죠. 영화를 보시면 아무나 감히 흉내 못 낼 배역이란 걸 분명 아실 수 있습니다
씨네21 리뷰
알코올 중독에 다리까지 불편한 형사 잭(브루스 윌리스)은 마지못해 증인 호송 임무를 떠맡는다. 그는 두 시간 뒤인 오전 10시까지 흑인 청년 에디(모스 데프)를 법원에 데려가 증언대에 세워야 한다. 경찰서에서 법원까지 거리는 16블록. 그러나 잭이 술을 사기 위해 잠깐 멈춘 사이에 킬러들이 자동차를 습격하고,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잭은 에디가 경찰 내부 비리를 증명할 증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년 넘게 잭의 파트너였던 프랭크(데이비드 모스)는 한번만 눈을 감으라고 잭을 회유한다. 그러나 동료들을 적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은 잭은 “길을 여섯번만 건너면 되는” 법원까지 가기 위해 모진 고생을 시작한다.
<식스틴 블럭>은 영화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과 실제 상영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영화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잭의 과거나 경찰 내부의 음모를 설명하지 못한 채 6년 전 경찰 비리 사건의 증언을 거부했던 잭이 느닷없이 에디를 지키겠다고 결심하는 변화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난감한 숙제지만 <리쎌 웨폰> <컨스피러시> 등을 연출했던 감독 리처드 도너는 시나리오를 보고 이 점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은 어떤 선을 가지고 있다. 그 선을 넘으면 삶은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한다.” 삶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잭은 불행하게 살아왔지만 케이크 가게를 열겠다는 꿈을 간직한 에디를 만나 바로 그 선을 넘는 것이다. 리처드 도너는 카메라 열두대를 동원한 버스 충돌 장면처럼 긴박한 액션을 통해 관객을 잭과 에디 곁에 묶어두려 했다. 관객이 그들과 호흡의 속도를 맞추어야만 두 시간 동안 몇번이고 생이 뒤바뀌는 드라마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무기라 할 만한 요소는 브루스 윌리스다. 오른쪽 발에 돌멩이를 묶어 절뚝거리는 잭의 걸음을 표현하기도 한 윌리스는 이미 여러 번 알코올과 무력감에 젖어 살다가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찰을 연기해왔다. 그러므로 관객은 잭을 보며 그가 조만간 정신을 차릴 거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어느새 50이 넘은 윌리스는 더이상 <다이 하드>에서 그랬듯 비행기 날개에 매달리는 액션을 보여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식스틴 블럭>은 한때 활기찼던 액션감독과 스타의 후일담을 듣는 듯하여 어느 정도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리얼타임 영화
<식스틴 블럭>은 영화 속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과 상영시간이 거의 일치한다. 잭은 두 시간 안에 에디를 법원에 데려가야 하고, 상영시간은 118분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영화로 <폰부스> <비포 선셋> 등이 있다. 조엘 슈마허의 <폰부스>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 갇힌 남자가 얼굴 없는 저격수에게 위협받고, 마침내 부스 안에서 탈출하기까지 시간을 그대로 기록한다.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인 <비포 선셋>은 파리를 돌아다니는 제시와 셀린느의 여정이 실제와 거의 일치하는 영화. 이미 오래 전에 서부극 <하이눈>은 장르영화로는 드물게 상영시간과 리얼타임을 일치시켰었다. 2000년 김기덕 감독은 <실제상황>을 상영시간과 리얼타임뿐만 아니라 촬영시간까지 통일한 영화로 기획했지만 도중에 촬영이 끊어져 삼위일체의 야심은 불발에 그쳤다.
미합중국 대표형사 브루스 윌리스
브루스 윌리스는 시니컬한 형사와 탐정을 두루 섭렵해왔다. TV 시리즈 <블루문 특급>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윌리스는 아내와 이혼하여 외로운 데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험한 사건에 휘말리는 <다이 하드>의 맥클레인 형사로 스타가 되었다. <라스트 보이스카웃>의 퇴물 탐정, 죄책감을 안고 사는 <스트라이킹 디스턴스>의 경찰, <호스티지>의 전직 협상전문가, <머큐리>의 전직 특수요원 등등이 그가 거쳐온 직업. 공무원 전문 배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브루스 윌리스는 언제나 삐딱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남들과는 다른 공무원상을 창조해온 배우다. 글 김현정 2006-04-18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