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자리로 돌아가는 존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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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사윤회에서의 나는 小我이며
생사를 벗어난 나는 無我的大我로써 眞界에 뛰어드는데
생사윤회전의 나는 누구이며
머문 곳은 어디였던 것인가?
시발의 생사윤회 이전의 나는 맹탕의 무아, 맹탕의 공이었지만
물질구성으로 생성된 마음은 생명이 되었기에
이제 다시 시원전의
나,
盲空은 될 수 없는 것이니 진공으로 회귀하야 하는 것이다.
회귀라함은 시발전의 나도 생사윤회에서의 나도 眞空本의 바탕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먹구름과 흰 구름이 다 같이 허공의 본자리에서 일어난 것처럼
모든 존재가 허공에서 나았고
다시
허공속으로 입멸하고 만다
하나의 허공에서 나왔지만 그 하나의 허공이 돌아간 자리는없다.
盲空,
盲我,
또한 진공본 자리에서 일어났기에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진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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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공에서 진공으로, 윤회에서 본래자리로 돌아가는 존재의 길, (글을 읽으면서)
생사윤회 속에서 드러나는 ‘나’라는 존재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업과 인연이 잠시 모여 형성된 하나의 현상이며, 물질적 구성과 마음의 작용이 결합하여 생명으로 드러난 연기적 흐름일 뿐이다. 우리는 이 흐름 속에서 자신을 고정된 자아로 착각하지만,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아(無我)를 말한다. 윤회 속의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업을 따라 움직이는 식(識)의 작용이며, 진공에서 잠시 드러난 묘유(妙有)이다. 생사윤회는 실체적 존재의 순환이 아니라, 조건이 조건을 낳는 연기의 연속이며, 그 속에서 ‘나’라는 개념은 단지 작용의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면 생사윤회 이전의 나는 누구였는가. 불교는 무시이래(無始以來)를 말하므로, ‘처음의 나’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윤회 이전의 나는 실체적 자아가 아니라, 조건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연기적 가능성, 즉 맹탕의 공(盲空)이다. 이 맹공은 본래 공이지만 자각되지 않은 상태이며, 무명에 덮여 있어 작용도 분별도 없는 무기적 공성이다. 맹공은 공이지만 공을 모르는 상태이며, 존재의 바탕이지만 그 바탕을 스스로 비추지 못하는 어둠의 공이다. 그러나 윤회 속에서 마음이 업을 따라 움직이며 분별을 일으키는 순간, 이 맹공은 ‘나’라는 작용을 만들어내고 생사윤회의 흐름이 시작된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무명은 나를 만들고, 나라는 작용은 다시 업을 만들며, 업은 또 다른 생을 낳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시원전의 맹공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맹공은 무명에 가려진 공이며, 해탈의 상태가 아니다. 맹공은 공이지만 공을 모르는 상태이기에,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무명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회귀해야 하는 곳은 맹공이 아니라 진공(眞空)이다. 진공은 무명을 벗어난 공이며, 연기·무상·무아의 진리를 자각한 자리이다. 진공은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일어나는 바탕이며, 모든 작용을 허용하는 근원적 자리이다. 회귀란 ‘없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변하지 않는 공성을 깨닫는 것이다. 진공은 존재의 근원이며, 존재의 종착지이며, 존재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자리이다.
먹구름과 흰 구름이 허공에서 일어나고 허공으로 돌아가듯, 모든 존재는 조건이 모여 잠시 드러났다가 조건이 흩어지면 사라진다. 그러나 허공은 어디로도 돌아가지 않는다. 허공은 본래 움직이지 않는 자리이며, 존재의 근원적 바탕이다. 존재는 허공에서 나지만, 허공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허공은 본래자리이며,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무차별의 장(場)이다. 이 허공이 바로 진공본이며, 모든 존재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자리이며, 생사윤회조차 이 허공 위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맹공과 맹아 또한 이 진공본 자리에서 일어난 작용이므로, 본래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무명에 가려진 분별도, 윤회 속의 나도, 시발전의 무아도 모두 진공의 작용이며, 결국 진공으로 회귀하는 길은 본래의 자리를 자각하는 데 있다. 진공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머물고 있는 자리이다. 다만 무명이 그 자리를 보지 못하게 할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아(眞我)는 실체적 자아가 아니라, 무아를 완전히 깨달은 상태를 방편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진아는 진공의 자각이며, 진공은 존재의 본래자리이다. 진아는 자아의 확립이 아니라, 자아의 소멸을 통해 드러나는 본래의 광명이다.
결국 생사윤회 속의 나도, 윤회 이전의 나도, 무명에 가려진 맹공도 모두 진공에서 일어나고 진공으로 돌아간다. 회귀란 사라짐이 아니라 자각이며, 본래부터 떠난 적 없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존재는 본래 진공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윤회는 진공 위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꿈과 같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해탈이며, 꿈속의 나를 버리는 것이 무아이며, 꿈을 꾸게 하는 바탕을 깨닫는 것이 진공이다. 이 깨달음이 바로 불생불멸의 진실이며, 생사윤회를 넘어서는 길이다. 존재는 본래 생하지 않았고, 본래 멸하지 않았으며, 본래 떠난 적도 돌아온 적도 없다. 다만 무명이 떠남과 돌아옴을 만들고, 깨달음이 떠남과 돌아옴을 소멸시킨다.
그러므로 맹공에서 진공으로의 회귀는 새로운 도달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를 밝히는 일이며,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머물고 있는 자리의 진실을 깨닫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허공에서 나고 허공으로 돌아가며, 허공은 돌아갈 자리가 없고 떠날 자리가 없다. 이 허공이 바로 진공이며, 진공이 바로 본래자리이며,
본래자리를 깨닫는 것이 곧 해탈이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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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첫댓글 佛ㆍ法ㆍ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You are welcome to the Buddha, the Dharma, and the Three Seasons.
I pray with the utmost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hide and mercy shine. Thank you.
attain Buddhahood
Amitabha Buddha, Avalokiteshvara Bodhisattva()()()
= 朴圭澤 華谷·孝菴 公認 大法師(佛敎學 碩士課程 2學年 在學中)의 좋은글 中에서(Among the good articles of Park Gyu-Taek HwagokㆍDharma-Bhānaka and Hyoam's official Daebosa(I'm in my second year of a master's course in Buddhist studies) =
마하반야바라밀 ~🙏🙏🙏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