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때였습니다. 객지생활하고 있던 제게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성당에서 매년 학예회를 하는데 올해는 아이들이 장기자랑을 하지 않고 어른들이 공연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중요한 배역을 맡게 되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시험기간이라 어머니께 축하한다는 말만 간단히 전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로 설명 들었을 때는 대사 몇 마디밖에 하지 않는 ‘가난한 여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겠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보니 공연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남달랐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거울 앞에서 상대 배역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대사를 반복하셨습니다.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거라 너무 떨린 나머지 계속 대사를 잊어버린다며 가족들을 배역 삼아 연습하셨습니다.
또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사 연습을 마치고 오시면, 연습시간에 틀린 부분을 고쳐야 된다며 온 가족이 모인 앞에서 또다시 맡은 배역을 열연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언제 저렇게 무언가를 즐겁게 하신 적이 있었던가, 저렇게 즐거운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자꾸 작아지기만 하는 어머니를 보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열연하는 어머니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자 기쁨이었습니다.
공연 당일, 20여 년 동안 당신과 딸이 주인공이던 행사에 당신이 꽃다발을 들고 오신 것처럼, 저는 무대 위에서 가난한 여인이 가장 예뻐 보일 만한 화사한 꽃다발을 들고 공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 연기에 큰 박수를 쳐 줄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말입니다.
장미 / 경북 포항시 북구 득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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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복된시간 되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