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침에 밥을 먹고 TV 앞에 앉지 않고 얼른 배낭에 물 한병만 넣는다.
바보에겐 광주극장에 가거나 양림동 산책이라도 해보자고 해야 하지만
내가 무등에 오른지 오래되어 그냥 나서고 만다.
내게 성탄절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수 탄생의 의미와 부활에 대해, 기독 신앙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없다.
성경이야기를 다섯권 사두고도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부분인 1권도 다 읽지 못했다.
1999년 무렵 같이 강진 근무하던 박영숙 선배가 당신이 보던 성경을 선물하며
관심을 가지라고 하셨는데 난 대충 훑어보고 만다.
난 신앙으로서가 아니라 지식이나 학문으로서 기독교를 공부하려고 한 적이 있고,
기독교의 영성가나 성자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아는 건 없다.
김교신 선생이나 함석헌 유영모 김흥호 선생 등 무교회기독인이나 다른 종교와 두루
통하시는 분들, 그리고 장준하 문익환 등 기독교 지도자이면서도 사회운동에도 참여하신 분들을
존경하지만 따르는 실천은 없다.
요즘엔 선교사 없이 자생으로 기독신앙을 받아들인 화순의 이세종 선생에 대해
관심을 조금 가지긴 했다. 이현필 최흥종 같은 분의 흔적을 찾고 그분의 생각과 실천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난 여전히 건방지고 게으르다.
고행과 묵상 청빈을 좌우명으로 삼은 고정희 시인의 삶이 존경스럽다.
8시 반무렵 나섰는데 남광주시장에서 바로 환승하여 증심사 주차장에 닿으니 9시 반이 지난다.
조금 흐린 날씨 탓인지 주차장 승차장 부근에는 연세드신 분들과 여성 산객들만 더러 보인다.
중머리재식당에 들러 김밥 두줄과 막걸리 한병을 5천원 주고 산다.
배낭에 넣으며 앞쪽의 오뎅국물 떠 먹는 빨간 국자가 가득 찬 바구니를 보고 여사장께 하나 달라고 하니
안된다고 한다. 괜한 말을 꺼냈다.
증심사까지 아스팔트 길을 오르는 길은 팍팍하다.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막기도 한다. 증심사를 지나 당산나무로 오르며 오방 최흥종 목사의 기념비가 서 있는 신림교회수련원을
사진 찍어 본다. 다섯가지를 내려놓고 세상을 살으신 그 분 앞에 난 엉터리다.
송풍정 의자에 배낭을 벗고 수건을 매고 겉옷도 배낭에 담는다.
가지만 남은 당산나무를 다 담지 못한채 사진을 두어번 찍고 중머리재로 오른다.
무등에 오른지 꽤 되었다.
한 주에 서너번 서석대에 오르시는 신사형님의 이야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난
지난 11월 이후 한번도 서석대에 가지 못했다. 산악회를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정말 혼자 걷는 산길은 무심히 외면했었다. 혼자 걸으니 조금 힘이 난다.
술에 찌든 내 몸은 지치지만 그래도 산에 다니는 이력을 기억하는지 걸음은 다른 이를 앞지른다.
다른 이를 앞지르는 것은 경쟁심인가?
내걸음이란 어떤 것일까? 자동차 레이싱 처럼 앞사람을 무조건 앞지르는 산행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앞서간 이의 생각의 깊이를 따라갈 생각은 않고 수준낮게 숨을 헐떡이며 걸음자랑이나 하려 하다니.
중머리재에 닿으니 10시 반이 지나간다. 주차장에서 한 시간에 잘 걸었다.
건너편 만연산과 서인봉 사이로 남쪽의 산하가 하얀 안개에 아래를 적시며 파랗게 솟아 서 있다.
월출산 뾰족한 봉우리 옆으로 제암산과 일림산 천관산 덩치도 보인다.
빙 둘러 시내쪽까지 사진을 한번 찍고 중봉으로 오른다.
중봉 오름길은 경사도 경사지만 쉬지 않고 걸은 탓인지 조금 느려진다.
가파르게 올라 묘지 부근에서 또 뒤돌아보며 하얗고 파란 남쪽을 본다.
숲속 돌무더기 길을 오르는데 숲속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지나치는데 눈이 마주쳐 보니 담양에서 일하는 최교장이다. 인사를 나누고 일행을 보니
역시 1년 후배인 최경련이다. 반갑게 인사하며 차 한잔을 권하는데 난 사양한다.
기홍이 이야기를 하다 최경련이 금호지구에 산다며 전화번호를 따고 연락해 술 한잔 하자고 한다.
나도 그러자고 하며 혼자 오르막을 올라간다.
소나무 아래도 보고 용추봉 선 바위들도 길에서 보며 중봉으로 오른다.
한 사나이가 따라오기에 그를 풍경 속에 넣고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는다.
낵 좋아하는 오름길에서 자꾸 뒤돌아보니 그가 나에게 붙어온다.
난 또 앞서다가 중봉 봉우리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이 그는 중봉을 넘는다.
군부대복원지는 노란 억새밭이다. 정상 쪽에도 눈은 보이지 않는다.
눈이 몇 번 와 천왕봉 봉우리 쪽은 눈에 쌓인 걸 멀리서만 봤다.
목교 부근에도 사람이 없다. 서석대로 오르는 길에는 몇 사람이 힘들게 걸어올라가고 있다.
길 가에 하얀 눈이 보이고 돌 사이에도 얼음이 남아있다. 서석대 아래 의자가 놓인 곳에
몇 사람이 앉아 있다.
서석대 전망대에 들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절벽을 건너다 보고 나온다.
정상 쪽의 바람은 차다. 배낭에서 겉옷을 꺼내 입고 귀마개 달린 모자도 쓴다.
흰줄이 그어진 운동복 바지를 입은 젊은 학생들이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은 추위를 잘 이겨내겠지만 준비를 않고 오른 그들이 조금은 염려된다.
백운산 억불봉 봉우리가 보이는데 지리사 ㄴ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건너 백마능선
낙타봉에서 보면 좋겠다. 백마능선지나 수만리로 내려가 화순에서 버스를 탈까 하다가
규봉암으로 가기로 한다.
서석대 봉우리 동쪽 끝에 바람을 피해 자릴 잡는다.
아랫쪽에 컵라면을 끓여먹는 일행이 있어 내려가지 못하니 바람이 차다.
김밥을 꺼내고 막걸리를 마시니 몸이 따뜻해지며 배가 불러 온다.
한 어른이 윗쪽에 앉아 배낭을 벗는다. 막걸리를 한잔 드리니 고맙다고 잘 마신다.
한잔 더 드린다. 식사 안하시냐 하니 빵을 가져왔다 하신다.
어르신이 빵을 드시느냐하니 나사모 따라다니며 배운 행동식이라신다.
하루 20km 전후의 산길을 달리듯 따라다니셨다며 이젠 혼자 다니신다고 하신다.
무등산도 새인봉을 지나 서석대 지나 장원봉으로 가거나 군왕봉 지나 각화동까지 걸으셨다고 하신다.
이 세상엔 도처에 고수가 많다. 다 자기나름의 길을 용감히 걸어가고 있다.
그 분은 서석대전망대 쪽으로 내려가시고 난 장불재쪽으로 걷는다.
승천암 위에서 남쪽의 산하를 한번 더 보는데 오전의 희고 푸른 색은 많이 흐려졌다.
입석대는 지나치고 장불재에서 낙타봉과 옹성산 쪽으로 보고 입석대 서석대 정상도 한번 보고
규봉암쪽으로 길을 잡는다. 규봉암 가는 길은 호젓하다.
피안교 작은 다리를 건너 돌길을 밟다가 석불암 이정표를 보고 오른다.
이제 석불암 옹벽 공사는 마쳤나 보다.
너덜에서 석불암을 보고 돌계단을 올라 석불암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열려 있고 석불암 전각 문도 열려 있다. 옆벽에 보니 화주 등 한자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신발 벗기 실허 밖에서만 본다.
샘 앞에 국립공원공단에서 세운 안내판도 보인다.
보조석굴 안에는 작은 황금빛 불상을 세워두고 10월짜리 동전을 쌓아 두었다.
누군가 썩은 나무를 가져다가 돌담에 기대어 두었다. 누구일까 여기서 나처럼 불을 피우고 싶었을까?
돌지붕 아래의 잠자리는 많은 돌들이 앉아 있다.
주변의 썪은 나무들을 보아가며 규봉암으로 간다.
앞쪽에서 남자 몇 명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남자 셋이 절에서 나오는데 한 사나이 손에 달력이 들려있다.
관음전 앞 마당에 올라서니 하얀 개 한마리가 다가온다. 지난번에 소리크게 짖더니
경계의 눈빛응로 내 주변을 맴돈다. 관히 긴장이 된다. 스님 출입문 앞에 작은 달력이 수북히 놓여 있다.
김영택의 펜으로 그린 절 그림이다. 하나를 챙기고 관음전 복전함에 김밥 사고 남은 오천원을 넣는다.
관음전 앞에서 이서쪽을 내려다보는데 보이지 않던 흰둥개가 짖는다.
방안에서 더 젊은 스님이 나와 백구야를 부르며 사람보고 짖지 말랬지 하며 꾸짖는다.
말을 알아듣는지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고막재 쪽으로 걸으며 너덜 바위위에 서서 지리산을 찾는다.
반야봉 뒤로 천왕봉이 흐릿하다. 발 앞의 너덜 돌무더기와 이서 벌판 그리고
얼마 전 오른 백아산을 배경으로 지리산을 잡아보지만 사진에서는 너무 멀어 작고 흐리다.
꼬막재에 이르자 두시 반을 넘어 지난다. 꽤 많이 걸었는지 다리가 뻐끈하다.
원효사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오기를 부려 바람재를 지나 증심사로 걷기로 맘 먹는다.
지붕에 낙엽만 쌓인 산장을 지나 제일기도원 산길에서 늦재삼거리로 길을 다시 오른다.
예전 다니던 좋아하는 길이어서인지 나무들이 반갑다.
늦재삼거리에서 바람재까지 걷는 아스팔트 찻길은 조금 지루하다.
몇 번 구비져 사람들 사이를 스틱으로 탁탁거리며 앞선다.
바람재에서 향로봉쪽으로 허릿길을 잡다가 능선을 잠깐 만나고 장군봉 못 미쳐 아래에서 1수원지
삼나무 숲으로 내려간다. 내리막에서 힘을 내는데 점점 걸음은 느려진다.
삼나무 숲을 빙 돌고 내가 보아 둔 나무를 한번 더 보고 정류장에 이르니 어느새
4시 반이다. 배가 고프다. 7시간 정도(그 중에 쉬는 시간도 있는데)의 걸음에 지쳤다. 약하다.
스틱을 넣고 손을 씻고 나와 버스를 타고 학동증심사입구역에서 45번을 기다리는데 차는 쉽게 오지 않는다.
밥차려 놓고 기다린다는 바보의 연락을 받아 집에 부지런히 걸어오니
어느새 어두워져 6시가 다 된다.
난 성탄절을 잘 보낸 건가? 뉴스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교황, 그리고
북한의 종교단체가 보내 온 성탄메시지 뉴스가 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