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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전, 50년대...김두한의 시대
일제시대 조선의 경성상권은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명동상권과 조선인들이 주도하는 종로상권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들 상권을 둘러싸고 주먹깨나 쓰는 사람이 출현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
당시 일본인이 많은 명동은 일본 최대의 야쿠자조직 현양사의 보스 두산만 휘하에서 성장한 하야시(한국명 선우영빈)라는 자가 1인지배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이에 반해 종로는 뚜렷한 리더가 없는 상태로 '구마적' 고희경, '신마적' 엄동욱, '쌍칼' 등이 두각을 나타냈고, 여기에 서대문의 김기환, 왕십리의 김남산, 마포의 정춘식 등도 합세해 혼전을 빚고 있었다.
이 혼란의 양상을 일거에 해소한 인물이 바로 '장군의 아들' 김두한. 서대문 김기환패의 말단 조직원이던 그는 김기환의 구속과 신마적의 만주행으로 무주공산이 된 종로를 평정하고 이어서 마포, 영등포, 왕십리까지 평정, 명실상부한 '조선의 주먹'으로 위세를 떨쳤다.
해방 이후 6·25가 터지면서 우리 나라 주먹의 역사는 변화의 몸살을 앓는다.
일단 일본인이 빠져나간 명동은 이화룡, '시라소니' 이성순, 장천용 등 서북청년단이 주도권을 차지했다. 또한 김두한이 정계진출로 자리를 비운 종로는 '아이마스' 심종현이 자리잡았고, 동대문은 이정재, 광화문은 장영빈, 서대문은 최창수가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
이들 중 이정재는 자유당 정권과 결탁하면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정권의 도움을 받아 명동세력을 제거한 후에는 독보적인 1인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정재는 후에 자유당 정권의 버림을 받으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