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5월 하순 초여름이었다.나는 감사원에 입사하여
기획실 평가담당관실에서 근무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제일 쫄짜였기 때문에 토요일인데도 이것.저것 정리하고 제일 늦게 오후 네시쯤 퇴근했다.
당시 삼청동-안양 다니는 유진버스 104번을 타고 광화문 버스정거장에서
서울역-불광동 다니는 155번 버스로 바꿔 탔다.
나는 버스 맨 뒷좌석 바로 앞에 앉아 있었는데,초여름이라서 졸음이 밀려왔다.
버스가 서대문역에서 정차하자 그린색 원피스를 입은 늘씬한 숙녀가 타더니,
앞쪽에 자리가 없자 내 가까이 와서 "옆에 앉아도 될까요?"하고 물어서
나는고개만 끄덕이고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버스가 독립문을 지나 무학고개를 넘을 즈음 그녀가 내 왼쪽 어깨를 살짝 두드리면서
"저 모르시겠어요?"하는 것이었다.순간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니 전혀 모르는 원피스를 입은 아리따운 숙녀가 내 옆좌석에 앉아서 "저 모르겠어요?"하다니,
나는 심호흡을 하고 "모르겠는데요"하고 고개를 저었다.
조금 지나서 "5넌전 여고생일 때 저에게 키스.."하는 말을 하자 아련히 떠올랐다.
"아~~미스강~~"하고 더듬 거리자 "맞아요."했다.
그런데 사실은 미스 강은 대학교때 미팅을 했던 경희대 간호학과 여학생을 착각한 것이었다.
우리는 홍제동을 지나 연신내 버스 정거장에서 내러 다방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녀는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오늘 드디어 만났군요.
5년전 그때 어린 학생에게 키스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구나하고 안만났어요.
또 저는 미스 강이 아니고,미스 윤이예요.미스 강은 누구예요?역시 미스강에게도?"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그녀는 집은 가난했지만 막내라서 고교 졸업후 두 오빠들의 도움으로 음대에 갔고,
지금은 합창단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실로 만 5년만에 뜻하지 않은 우연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5년동안 그녀는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졸업한 어엿한 숙녀가 된것이다
우리는 광화문 국제극장 건너편 전원 다방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서너번 만났다.
그때 만나서 우리는 사직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광화문에서 걸어와 사직 공원으로 건너는데
신호를 못보고 건너다가 피출소 경찰에게 걸려서 파출소에 갔다.
파출소장이 조사를 하는데 미스 윤이"이사람이 건너자고 해서 건넜으니까 저는 보내 주시고
저 사람만 처벌하세요"하는 것이었다.나는 미스 윤의 당돌한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파출소장은 미스 윤은 밖으로 나가게 하고 나만 조사받았다.
내가 감사원에 근무하는 사람이고 실수 했으니 봐 달라고 하자
앞으로 조심하라면서 나가라고 해서 다행히 그냥 나왔다.
그렇지만 5년전의 키스건 때문에 그녀는 항상 경계를 했고 그러다 보니 마음도 시들어 갔다.
그리고 또 만남이 뜸해졌다.
그러던 그해 73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날 아침이었다.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이모댁에서 자고
아침 일찌기 불광동 '외삼촌댁에 가기 위해 서대문에서 155번 버스를 탔는데
버스 맨 뒷좌석에서 여자들이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가까이 가서 보니 미스윤과 친구들 셋이서 나라히 앉아 있으면서 미스 윤이
"저 사람. 내가 아는 사람인데 너희들에게 소개해즐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서대문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세번이나 우연히 만난 후부터 우리는 조금 더 친하게 만났다.
전원 다방에서 만난 횟수도 더 많아졌다.그리고는1975년 1월 우리는 둘이서 부여 고란사 여행을 갔다.
떠나기전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몸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나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저녁에 영등포쪽 터미날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부여에 밤11시경 도착했다.
그날 떠나기전 약속한 대로 그 뜨거운 젊음의 열기를 꾸~~욱 참으며 약속을 지켰다.
내 여자니까 아끼겠다고 천진난만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그리고 이제는 내 여자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경하자 마자 얼마 안되어 결혼이야기가 나와서 의견이 다르자,
그녀는 "그러려면 우리 헤어지자"고 했다.나는 내여자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였다.
너무 화가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그날 내가 안았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내 여자가 아니였다.
그래서 또 시들해졌다.그때 나는 방위근무 입영통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미스 윤에게 전화했다.꼭 할 말이 있다고..그리고 광회문 전원다방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얼마후인 "74년 2월7일 군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그녀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그러면 난 어떻게 해? 보고 싶으면?"하는 것이었다.
여고 3년때 만난후 7년만.그리고 우연히 시내버스에서 만난 후 2년만에그녀는 내 여자가 되었다.
첫정을 나눈 후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나 숯처녀 맞지? 자기를 맞으려고 23년간 지켜왔어."
다음날 우리는 종로3가 금은방에 가서 나는 미스윤에 삼만원 짜리 금반지를 해주었고,
그녀는 나에게 좋은 고급시계(?)삼원 짜리를 해주면서 "우리 변치말자"고 다짐했다.
둘이서 한 이 작은 예물들이 약혼의 정표이자 결혼의 정표였다.
그예물들 이외에 우리는 아무것도 주고 받지 않았으니..
그때 예물을 주고 받았던 그날 그 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도대체 그어린 시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말했다"내가 그동안 자기 속많이 썩혔지만 나 버리면 안돼! 나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아"
그렇게 해서 우리는 수십 번 갈등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50여년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