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어야 할 마음이 있는 것 같아서
샤워기를 틀면 습기 찬 저녁은 알몸뚱이를 거미줄같이 감싸고
땅바닥에 흘린 물기를 걸레로 닦으며
물 한 방울 마실 데가 없었을 너에 대해 반성했지
나는 어쩐지 미안함을 느끼고 싶어, 방바닥에 붙어 눈감고
침묵으로 거미의 울음소리를 돌보고 있으면
이 밤이 벚꽃을 토하는 소리가 창을 넘어오고
‘괜찮니?’ 혼잣말을 하면, 방 한구석에
작은 물방울의 자세로 숨을 죽이는 감정 하나
마음의 변태로나마 붙잡고 싶은 한 목숨이
거미줄도 없는 허공에 매달려 아슬아슬 깊어진다
-『경북매일/이성혁의 열린 시세상』 2022.01.26. -
시의 화자는 쓸쓸함과 미안함의 습기에 의해 거미줄에 걸린 먹이처럼 방바닥에 꽉 붙어 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을 거미로 상상하게 되는데, 침묵의 방 안에서 거미의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너의 부재로 인해 지옥이 되어버린 방, 방바닥에 꽁꽁 묶여 있는 이 방에서, 화자는 작은 한 방울의 의욕, 비록 그것이 변태적이라고 하더라도 ‘한 목숨’을 붙잡으려는 의욕을 거미처럼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