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창 6시집 『당신의 이픈 날을 감싸 주라고』
1975년에 전국 대학생 작품 공모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아 등단한 엄기창 시인이 6시집 『당신의 이픈 날을 감싸 주라고』를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이 시집은 ‘시인의 말’ ‘1부 꽃 한 송이의 기적’ ‘2부 세상에서 제일 향기로운 이름’ ‘3부 사랑하며 이별하며’ ‘4부 내려갈 때 보았네’ ‘공광규 시인의 해설’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 서평(공광규 시인의 해설에서 부분을 따옴)
#1
엄기창 선생의 시들은 따뜻하다.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그의 시 문장은 밝고 맑고 아름답고 행복한 기운과 향기가 맴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현재가 “참으로 추운 세상”이라고 한다. 추운 이유가 정치판 때문이고 세상인심 때문이다. “서로 아껴주고 도와주고 끌어안아 주는 미덕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상에 그가 시집을 내놓는 이유다.
#2
선생의 시에는 꽃이 많이 출연한다. 시 「사람의 향기」는 “세상을 맑게 씻어주는 사람”을 향기에 비유하고, 「갈대와 나팔꽃」에서는 갈대를 감아 올라가서 꽃을 피우는 나팔꽃과 같이 흔들리는 모습을 “아주 작은 것끼리도 서로 손을 잡아주면/ 큰 힘이 된다”는 협력을 통한 동반상승을 강조한다. 시 「환한 세상」에서는 인사를 잘 하는 처녀를 통해 “작은 꽃잎이 모여 꽃밭이 되듯/ 반가운 인사가 모여/ 환한 세상이 된다.”고 한다.
#3
부모를 시의 소재로 언급하지 않은 시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부모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부모가 없으면 내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은혜가 크고 깊음을 설명하는 경전이 있는데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다.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이다.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한다.
엄기창 선생의 시에서도 아버지, 어머니를 제재로 한 시가 여러 편 등장한다. 앞에 언급한 「남가섭암 불빛」을 비롯해 「동무 소나무」 「어머니라는 이름」 「동치미를 무치며」에서는 어머니를, 「팔월의 눈」 「겨울 허수아비」 「아버지의 등」에는 아버지가 언급된다.
#4
엄기창 선생의 시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불교제재의 시들이다. 불교는 중국을 통해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순서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배웠다. 그러나 축적된 연구 결과 한반도 남쪽 고대국가인 가야에는 이들 세 나라보다 앞서 인도에서 해안을 통해 불교가 직접 건너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적어도 2천 년 이상 불교가 이 땅에 와서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러니 우리 민족의 심성에 불교가 체화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충청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선생의 문장에서도 불교는 고스란히 문장에 자주 발현된다. 이를테면 「해우소에서」 「산사에서의 밤」 「고사古寺에서」 「부적」 「달빛 기도」 「백마강 물새 울음」 「대청호」 「은적암 가는 길」 「청우정에서」 「남가섭암 불빛」 「벌레의 뜰」 「내 고향 가교리」 「겨울 허수아비」 등의 시다. 선생의 불교는 어머니로부터 전승된 모태 신앙이다.
#5
엄기창 선생의 시들을 읽으면 마음이 밝고 맑고 아름답고 따뜻해진다. 세상을 자상하고 따뜻하게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준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세상을 걱정하는 선비의 풍모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더하여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 체화된 불교적 상상력을 통해 삶의 근원과 인생을 조망하는 힘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