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자 바쁜 일과를 보내신다.
병든 이들이 낫고, 마귀 들린 사람이 온전해진 것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 드러났다는 뜻이다(복음).
예수님께서는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한마디 말씀으로 고쳐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 옛날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모든 것을 한 말씀으로 이루신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느님 말씀의 힘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과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4,12).
마치 의사가 수술을 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송두리째 열어 놓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몹쓸 것은 도려내고
사람을 살리는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해 보면,
주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 어려움을 이겨 내는 교우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을 만납니다.
소공동체 모임에서는 ‘말씀 나누기’를 하는데,
어느 여교우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제 아이는 장애아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이런 아이를 보내 주신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보다 제가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저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보내 주셨습니다.”
요한 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눈먼 사람을 두고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9,2)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의 죄도 아니며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9,3 참조).
장애아를 둔 어머니는 성경의 이 말씀이
자신을 두고 한 말씀이라고 믿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 여교우를 이처럼 변화시켰습니다.
이 모두가 주님 말씀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학 지식을 앞세워 질병과 믿음을 무관한 것으로 여깁니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질병도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개입하시면 ‘못 고칠 병’은 없는 것이지요.
다만 그러한 청을 ‘감히’ 못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분의 ‘다스림’을 인정하면, 주님께서는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십니다.
그리하여 질병을 그분의 손길로 보게 합니다.
병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병이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병을 이기게’ 되는 것이지요.
병을 친구라 생각하면 인생의 또 ‘다른 불가사의’와 우정을 맺는 것이 됩니다.
그 우정을 주님께서 주관하신다고 여기면 마음은 달라집니다.
질병을 은총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이미 ‘주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루카4,40)
그분의 손이
사람들에게 닿을 때마다
마귀들은 물러가고
병든 이들은 벌떡 일어나
시중을 들었네.
그러므로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마다
그분의 손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닿아
우리가 앓고 있는
영육간의 병이 치유된다네.
- 김혜선 아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