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참고말씀: 왕하25:27-30; 스1:7-11; 렘39:1-10; 골4:2
읽을말씀: 렘52:1-34
주제말씀: 렘52: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월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첫째,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일깨워주시기 위함입니다!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렘52:17-19)
본문은 어떤 내용입니까?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것입니다.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그 성벽이 파괴되매...”(4-7절)
그런데 이는 본서 어디에도 이미 언급된 바 있습니까? 예레미야 39장 1-10절입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렘39:1,2)
단순한 반복입니까? 아닙니다. 성전의 파괴(13절)에 대한 언급과 그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진 내용(17-23절)이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이 이르러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12,13절)
왜 이 부분을 언급한 것입니까? 예루살렘 거민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성전 건물에만 집착하다가 망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시기 위함이기도 하고요.
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도 그들처럼 신앙생활의 외형적인 것에만 치중하기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내용적인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도 열심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성전의 기구들을 언급할 때 ‘가져갔다’는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17-19절)
이는 성전의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영원히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곳으로 옮겨 보관하는 것일 뿐, 언젠가는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 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 그 수는 금 접시가 서른 개요 은 접시가 천 개요 칼이 스물아홉 개요 금 대접이 서른 개요 그보다 못한 은 대접이 사백열 개요 그 밖의 그릇이 천 개이니 금, 은 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스1:7-11)
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지금의 고난은 연단을 위한 일련의 과정일 뿐, 전부가 아니며, 언젠가 때가 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현재의 고난에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않되, 잘못이 있었다면 이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둘째,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월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렘52:31,32)
본문에는 또 무엇이 추가적으로 기록되었습니까? 포로로 잡혀갔던 여호야긴 왕의 석방과 높임을 받은 사건입니다. 누구 왕 때 일어난 사건입니까? 바벨론의 왕 에월므로닥입니다. 이는 여호야긴이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간 지 몇 년째 되던 해에 일어났습니까? 37년째 되던 해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월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31절)
그는 여호야긴을 석방하되 구체적으로 그를 어떻게 높여 주었습니까? 비록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온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32절 상) 그의 자리를 바벨론에 붙잡혀온 여러 왕들보다 높여주었으며,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32절 하) 죄수의 의복을 벗고 새로운 의복을 입혀주었으며,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33절 상) 일평생 바벨론 왕과 함께 식사하게 하였으며,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33절 하) 날마다 쓸 것을 공급하되 죽는 날까지 그리 했던 것입니다.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34절)
왜 이 부분을 비교적 소상하게 언급한 것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대로 영원히 끝나는 게 아니라 때가 되면 반드시 회복될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니, 그 회복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월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끝이지 아니하였더라.”(왕하25:27-30)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도 고통 중에 있습니까? 고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그렇더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대로 영영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잠시 뒷면 다시 일어날 것이며 다시 시작될 것이므로, 이 같은 점을 깨닫고 계속 기도하며 감사로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