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의 섬김과 사랑의 실천"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1929년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가난한 홀어머니 품에서 성장했습니다.
모녀는 전쟁 중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한 구호단체 직원이 모녀를 찾아내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모녀는 구호품을 받아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구호품을 얻어 먹던 소녀는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성장했습니다.
살아 있는 천사, 우아한 스타일리스트, 요정, 청순미, 깜찍, 발랄, 모태 미인, 만인의 연인, 패션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배우. 세월이 흘러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 아름답되 이지적이고,
우아하되 기품이 넘치는 여왕 같은 이미지….
1999년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 선정한 ‘지난 100년간 가장 위대한 100명의 스타’의 여성 배우 목록에서 3위에 오른
여배우..이 영화배우는 바로 오드리 헵번입니다.
미인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태어난 여성인 듯하지만 그녀의 삶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1929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태어난 헵번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백일해로 폐렴으로 퍼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는데 의사와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여섯 살 되던 해 나치를 위해 일하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떠났고, 그 뒤 집안이 몰락하여
헵번은 튤립 뿌리를 씹으며 몇 달 동안 살았고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어머니마저 떠나면서 그녀는 할아버지 손에 맡겨졌습니다.
발레리나를 꿈꿨던 헵번은 170cm라는 큰 키로 인해 무리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영국으로 건너가 모델로 활동했고
1950년대와 60년대 지방시 모델이 되어 이 브랜드가 세계적 명성을 얻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녀는 연기 수업을 받았고 몇몇 영화에서 단역이나 조연으로 활약하다 드디어 1953년 그레고리 펙과 함께 출연한
데뷔작 ‘로마의 휴일’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신데렐라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휴일’이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오드리 헵번은 세기의 여배우로 떠올랐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이른바 ‘헵번 스타일’이라 불리는 숏 커트 헤어 스타일을 세계적으로 유행시켰습니다.
이후 그녀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전쟁과 평화’, ‘사브리나’ 등에 출연하며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미국 아카데미와 제19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유엔아동기금(UNICEF)의 홍보대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위한 보수는 1년에 1달러, 교통비와 숙박비 외에는 아무 것도 제공되지 않는 보잘것없는 대우였지만
그녀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활동에 헌신했습니다.
“인기가 떨어지니까 별 쇼를 다하는 구만”
“몇 달 저러다가 말겠지”
“자기가 아직도 앤 공주인줄 아나 봐”.
언론과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행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과거 은막의 스타가 세상 주목을 받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의 슬픈 현실을 세상에 알렸고 곤경과 죽음에 처한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발길은 아프리카 전 지역, 서남아시아의 방글라데시, 중남미의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등을 찾아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살려냈습니다.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비행기를 타고 버스와 낡은 트럭으로 이동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그녀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로마서 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
그녀는 질병에 신음하는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끌어안고 고통을 함께 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 천사를 보며 인류의 양심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소말리아 방문 전부터 대장암 말기임을 알았지만 자신의 건강 때문에 소말리아
방문이 취소될까봐 이야기 하지 않았고 통증을 느낄떄마다 진통제를 맞으며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가 주신 시간이 얼마쯤 남았지요?”
“3개월쯤 남았습니다.”
“3개월이라..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 시간은 충분하군요”
그녀의 암소식이 알려졌을 떄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돕는 거죠?”
“희생이 아니지요. 희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아이들을 돕는 것은 제가 받은 선물이지요”
그녀는 은퇴 후 오랫동안 살았던 스위스 아름다운 호반의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고,
자식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유언처럼 좋아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눠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1993년 1월 20일, 향년 63세로 그녀는 눈을 감았습니다.
유엔과 민간단체 ‘세계평화를 향한 비전’은 오랜 기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인류애를 실천한 그녀를 기리기
위해 2004년 2월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제정했습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를 그냥 살아서는 안됩니다.
소중하게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사하지 않고 생각 없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사랑의 손길이 없었다면 그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의 자선이 없었다면 우리는 명배우의 화려한 연기를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손길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사랑을 누군가를 위해 베풀고 섬기는 손길은 더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공허한 구호일 뿐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말을 앞세우기 보다는 몸소 실천에 옮기는 우리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고린도전서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랑의 하나님 이버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섬기고 베풀며 살아야 하는지 오드리 햅번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일이나 큰 일을 하기보다 내 주변의 한 사람부터, 작은 일부터 마음을 다해 전심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섬기는 일에
신앙의 초점을 맞추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저의 죄를 사하시고 품으시고 안아주시며 용서하신 것처럼 이웃을 더욱 잘 섬기고 실수와 허물을 품어주는
사랑의 관계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고통가운데 있는 이웃, 외로움으로 우울해 있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전화나 문자, 손길을 베풀며 사랑과 섬김을 통해
기쁨과 위로를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