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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9. 큐티
레위기 10:1 ~ 7
다른 불로 분향한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관찰 :
1)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 1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것을 엄밀히 순종하도록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 더 좋은 방식으로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서 분향을 했습니다. 이미 이 자체로 큰 문제였고, 향후에 이 일이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예측이 되는 문제였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네 아들들 중에서 장남과 차남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론과 함께 제사장 위임식을 통해서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죄는 사실 향로를 취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금향단에 향을 피우는 것은 대제사장의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제사장의 할 일은 번제단에서 이뤄졌기에 향로가 있는 성소에 들어가서 향로를 각기 가져다가 불을 담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기뻐뛰며 찬양하고 경배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이 누리겠다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월권했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무시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무례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은 거룩한 성막과 아무 상관이 없는 외부로부터 온 어떤 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자기들 마음대로 외부에서 불을 가지고 와서 분향을 한 것입니다. 이후로 여호와 앞 단에서 피운 불로 향로에 채우라는 규정이 주어지게 됩니다(레 16:12). 나답과 아비후의 이 사건 이후에 제사장의 금주 규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미루어볼 때 나답과 아비후가 이 때 술에 취해서 이런 행동을 한 가능성을 엿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칠일 간의 제사장 위임식의 거룩한 절차를 거친 아론의 아들들이라 할지라도 쉽게 죄악에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2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자마자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불로 인해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재로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룩한 예물이 경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태우셨지만, 나답과 아비후는 거룩한 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만 태워버리신 것입니다. 그들의 시체는 그들의 5촌 당숙인 미사엘과 엘사반에 의해서 성소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 3절.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 모세는 자신의 사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서 아론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그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의 삶과 행동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과 행동으로 드러날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을 입혀 주시려고 규례를 세워주셨고, 그 규례를 순종하는 것이 그들에게 거룩을 덧입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명예로운 제사장 직분을 합당하게 행하지 않음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거룩을 덧입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계수하실 것입니다. 아론은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아론은 잠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답과 아비후 시신의 처리
- 4절.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하매” => 아론의 숙부인 웃시엘은 레위의 둘째 아들인 고핫의 네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즉, 아론의 아버지인 마므람의 막내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은 아론과 사촌 형제였고, 죽은 나납과 아비후에게는 5촌 당숙지간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시체 만지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제사장이 아닌 자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친척을 불러 시체 처리를 맡겼습니다.
- 5절.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 영 박으로 메어 내니” => 나납과 아비후는 영광스러운 제사장의 옷인 세마포 겉옷을 입고 죽었습니다. 아무리 영광스러운 옷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지켜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고 훌륭하다고 소문난 교회를 다닌다고, 그 자체가 그의 신앙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외형적인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옷을 입은 채 죽은 나납과 아비후를 통해서 그들이 불에 그을려 타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나답과 아비후의 일로 슬퍼하지 말 것
- 6절.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
- “머리를 풀거나”는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기 위해 쓴 제사장의 관을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를 제멋대로 자라게 두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애통의 표시로 머리를 깎지 않고, 손톱이나 발톱도 손질하지 않고, 심지어 씻지도 않는 것을 통해서 애통을 표현했습니다. 직무 수행 중이 아닌 다른 제사장은 그의 일가친척을 위해서 애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상황은 그것을 금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옷을 찢지 말라” 제사장은 어떤 경우에서도 그들의 거룩한 옷을 찢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이 규정은 대제사장에게는 두 번 주어진 규정이었습니다. 이 규례는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규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이 예수님 앞에서 그의 옷을 찢으면서 참람하다고 했는데(마 26:65; 막 14:63), 사실은 대제사장 스스로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행위를 한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퍼해야 하는 이유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인해서 슬퍼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즉, 회중의 죄를 담당해야 할 제사장들이 불에 태워져 죽은 그 사건 자체를 슬퍼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불이 가져다 준 두려움과 하나님의 진노에서 긍휼을 얻기 위해서 우는 것은 허용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 7절.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라” => “여호와의 관유”란 표현은 그들을 위임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아론의 입장에서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아버지가 몸을 던져서라도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셋째와 넷째도 두 형들이 죽었기에 그냥 가만있는다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회막문 밖으로 뛰쳐나가 나답과 아비후를 살피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것을 금지한 것입니다. 그들이 죽지 않은 것은 여호와의 관유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론과 나머지 두 아들들은 모세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길 외에는 죽음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나머지 아들들이 죽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친히 세우신 거룩한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당한 나답과 아비후의 시체에 접촉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가르침 :
1) 제사장 위임식이 끝나고 곧바로 두 명의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다가 주검이 되었습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제사장 위임식이 끝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드린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로 인해서 그들은 기뻐 뛰며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러한 신앙적 열정 속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보다 더 우월한, 혹은 더 괜찮은 그 어떤 재료나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너무나 잘 아셨고, 인간의 죄악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를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제사 규례는 다른 종교의 규례와 비교해 볼 때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가 불손한 의도와 어쩌면 술에 취해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서 성소 안에서 향단을 들고 나와 성막 외에서 준비한 불로 채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나답과 아비후의 생명을 태워버리셨습니다.
2)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직 회막문 안에 있던 아론과 다른 아들들의 생사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지정하신 대로의 제사가 아니라 다른 불을 사용함으로 두 명의 제사장이 죽임을 당해 시체가 되었습니다.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어 일반인이 접촉해도 부정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막문 안에 있던 제사장이 회막문 밖으로 나와 나답과 아비후로 인해서 슬피울거나, 슬픈 티를 내거나, 회막문 밖으로 나와 그들의 시체를 만지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미사엘과 엘사만을 통해서 시신의 장례를 지내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론과 다른 두 아들들도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파행을 막아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로 인해서 다른 이들이 죽게 되기를 바라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랬기에 모세를 통해서 사는 길을 말씀해 주셨고, 아론과 다른 두 아들들이 순종해서 목숨을 유지하게 되기를 원하셔서 방도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예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답과 아비후의 실패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언제나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바른 순종을 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로 인해서 아론과 엘르아살과 이다말도 죽게 될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것은 회막 문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유, 곧 성령의 보호하심 가운데에서 나오지 말라 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답과 아비후의 시신을 미사엘과 엘사만을 통해서 처리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죽을 위기에 있을 때 성령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을 붙잡고 소망할 때 살 길이 열리게 됨을 믿습니다.
3)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과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으로 슬퍼하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너무 지나친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의 문제를 다루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의 실패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실패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의 실패는 교정이 될 수 없는 실패라는 것을 아셨고, 그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슬퍼하며 성소에서 회막문을 열고 나와서 그 시체를 만져서는 안되었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회막에서 나와서 슬퍼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론과 남은 두 아들의 감정을 조절하라 명하심으로 더 큰 죄를 짓지 못하게 막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인간이 판단하고 측정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 놀라운 하나님이 저를 사랑해 주시고, 제 인생을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