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하고 시가에 첫인사를 다녀온 딸아이가 사돈댁에서 보냈다며 선물 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사부인이 직접 구슬을 꿰어 만들었다는 팔찌 묵주와 나무 발판이었다.
그런데 둘 다 내가 사용하기에는 마뜩잖았다. 묵주는 남자 버금갈 정도로 굵은 내 손목 탓이었고, 발판은 너무 작아서 어린아이가 딛고 서기에도 옹색했다. 높이와 둘레 모두 한 뼘을 조금 넘는 데다 중심부에서 바깥쪽으로 살짝 뻗은 네 다리는 너무 가늘어 무거운 내 몸을 감당할 성싶지 않았다. 앉은뱅이 의자로 쓰기에도 너무 낮았다. 묵주는 손 묵주로 사용하면 되었지만, 발판은 소용을 알 수 없어 난감했다.
사돈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용도를 물어보기는 어려웠다. 발판으로 사용해도 되냐고 물으면 너무 작은 걸 보냈다는 말로 들릴 수 있겠다 싶고, 장식용이냐고 묻자니 스스로 생각해도 실없었다. 누가 장식용으로 발판을 선물할까 싶었다.
발이 닿는 부분에 연갈색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꼬리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빨간 목줄을 하고 잠든 모양이 영락없는 새끼 고양이였다. 가슴에 파묻고 있어 그렇지 빨간 나비넥타이가 매어 있을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눈을 뜨고 쳐다볼 것 같은 생김새가 장식용이 분명했다.
거실 한 귀퉁이에 세워 두고 오가며 보니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한 듯했다. “야옹아!”하고 부르면 꼬리를 풀고 사푼사푼 걸어와 안길 것 같았다. 거실 창으로 햇빛이 비쳐 들 때면 세모진 검정 귀가 쭝긋쭝긋해지면서 살짝 감은 두 눈이 파르르 떨리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때는 쥐 울음을 듣기라도 한 양 몸을 털고 일어나 괴발디딤으로 서붓 발을 뻗어 공격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러면 나도 일을 멈추고 쥐가 들었나, 숨죽여 집 안을 두리번거렸으니 그새 정이 들 만도 했다. 방 안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도 발판을 보러 거실로 나갔던 적도 있다.
세탁한 커튼을 창에 매달려니 키가 모자랐다. 갑자기 평소에 쓰던 식탁 의자는 무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물 받은 발판에 눈이 갔지만 대번 포기했다. 천생 식탁 의자를 옮겨와야 하는데 또 눈이 게을렀다. 다시 고양이 발판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혹시? 슬그머니 모험심이 생겼다. 발판을 들고 와 불안한 마음으로 한 발을 올리고 서 보았다. 멀쩡했다. 절로 질끈 눈이 감겼지만 이번엔 두 발을 딛고 섰다. 깨끼발을 하고 기연미연 한쪽 팔을 뻗어 보았다. 놀랍게도 손끝이 천장에 닿는 게 아닌가. 거실과 온 방을 돌며 커튼을 다 달았다.
그때부터 포기하고 말았던 집 안의 공간이 다 내 안으로 들어왔다. 책장 맨 위 칸에 올려둔 책을 내릴 때도, 베란다 나팔꽃에 실을 매달아 올릴 때도, 새로 들인 초대형 통돌이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낼 때도 구둣주걱을 사용해야 했지만 고양이 발판이면 만사형통이었다. 까치발로 물건을 꺼내려다가 허리를 다쳐 고생한 후로는 아예 비워두었던 싱크대 맨 꼭대기 칸도 살아났다. 어린 날 찬장 높은 곳에 있던 원기소 병에 손을 닿게 하기 위해서라도, 할머니가 살강에 올려둔 꿀단지와 홍시를 내리려 했을 때도 무언가를 딛고 올라서야 했다는 걸 잊고 있었던 거다. 모든 대상에 다다르자면 발디딤이 필요했었는데 말이다.
사람의 마음에 닿는 일도 그랬던 것 같다. 금세 가까워지는 사이가 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매양 처음 그대로인 사이가 있었다. 어떤 만남은 만나면 만날수록 아득해져서 까마득해진 거리도 있다. 내겐 너무 높다고, 너무 멀다고 판단하여 미리감치 포기해버린 관계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지레 겁먹고 포기했던 거리란 작은 나무 발판의 높이에 불과했던 것을.
심지어 어떤 만남은 의도하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사돈지간이 그렇다고 했다. 자식이 품에 있을 때는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는데 나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애초 내 깜냥을 알아보아 묵주만으로는 모자랄 거라 여겼을까.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30센티미터가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라고 한다. 자로 재어 보니 고양이 발판이 꼭 그 높이다. 발판을 보고 있으면 멀게만 느껴지던 마음의 거리가 그렇게 가깝게 느껴질 수 없다. 묵주에 발판까지 받았으니 이제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다다르지 못할 거리란 없겠다.
고요히 나무 발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묵주를 손에 든 듯하다. 그런데 옛말에 “사돈네 봉송(封送)은 저울로 달아야 한다.”고 했는데 귀한 선물을 받고도 삼 년이 다 되도록 답례를 못 했으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래저래 요즘 나는 발판을 사돈 모시듯 하고 산다.
(박금아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