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
원제 : The Arrangement
1969년 미국영화
감독, 각본, 원작 : 엘리아 카잔
출연: 커크 더글러스, 페이 더너웨이, 데보라 커
리처드 분, 흄 크로닌, 마이클 히긴스
캐롤 이브 로센, 윌리암 한센, 마이클 머피
존 랜돌프 존스
'열망'은 '워터프론트' '에덴의 동쪽'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베이비 돌' '초원의 빛'등의
명작을 남긴 50년대의 거장 엘리아 카잔 감독의 후기 작품입니다. 역시 엘리아 카잔 감독
전성기 시절에 함께 명성을 누린 50년대의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와 데보라 커 라는
헐리웃 빅스타가 함께 출연하고 60년대 후반의 떠오르는 신성 페이 더너웨이가
공연하고 있습니다. 한창 전성기를 맞이하는 페이 더너웨이를 제외하고 엘리아 카잔,
커크 더글러스, 데보라 커는 모두 엄청난 빅네임이면서 자신의 시대를 살짝 지나가는
시절에 함께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난해한 심리물입니다. 얼핏 보면 유부남이 젊은 내연녀와 바람피는 삼각 로맨스물
처럼 구조가 갖추어 있지만 실제는 훨씬 복잡한 내용입니다. 어릴적 강압적이고
완고한 아버지로 인하여 자아에 영향을 받은 주인공이 복잡한 정신적 혼란을
표출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겉으로 보면 부유하고 안정된 가족처럼 보이는 한 가정이
속을 들여다보면 꽤 엉망인 치부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엘리아 카잔이 직접 쓴 책을 연출한 것인데 여러가지 심리적인 내용을 담아내고자
하는 욕심 때문인지 영화는 고급스런 심리물로 완성도를 높이지 못하고 다소
뒤죽박죽하고 알쏭달쏭한 추상적 그림이 되고 만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잘 만들면 더 없는 고급 영화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20% 부족한
영화가 되기 마련인데 '열망'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되던 70년 당시로는 그냥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처럼 여겨졌을 상류층 부부의 하루의 삶이 시작되는 모습입니다.
넓직한 침실에서 라디오 소리에 맞추어 잠을 깨고 독립된 샤워 부스에서 샤워를
마치고 풀장이 딸린 넓은 마당에서의 아침식사를 하고 차고에 있는 오픈카를
몰고 출근하는 남편과 배웅하는 아내.... 담배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는 남자
에디(커크 더글러스)와 정숙하고 아름다운 부인 플로렌스(데보라 커)라는
중년 부부이며 다 큰 딸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유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들 가족, 하지만 에디가 운전하는 도중에
트럭에 차를 돌진시키는 셀프 교통사고를 내고 크게 다치면서 그 집안에
숨겨진 문제점이 수면위로 드러납니다. 과연 에디는 성공한 기업의 중역으로
행복했을까요? 혹은 부유한 가족의 행복한 가장이었을까요? 내용을 까보면
에디와 플로렌스는 오랫동안 부부관계를 하지 않은 무늬만 부부였고, 딸은
입양아이며, 그웬(페이 더너웨이)이라는 회사의 계약직 여성과 내연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에디는 아내인 플로렌스와 함께 있는 와중에도 옷을 벗은
그웬의 환상이 보이는 등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에디의 아버지인 샘(리처드 분)이 입원하면서 에디는 남동생 부부, 아내와
갈등을 빚는데 샘을 요양원에 보내려는 그들과 샘을 옛 집으로 데려가려는
에디의 마찰입니다. 샘 역시 에디만을 찾고..... 이런 내용이 전개되면서
이민자의 아들인 에디가 어린시절 강압적으로 자신과 어머니에게 군림하는
샘에 의해서 성장기의 자아의 영향을 받은 내용들이 수시로 삽입되고
있습니다.
영화는 에디의 내면과 혼란한 정신세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미건조한 아내와의 생활, 그웬과의 강렬한 육체적 결합, 일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상황, 상태가 안좋아진 아버지를 모시는 것에 대한 아내, 동생부부와의
갈등과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 등....과연 에디는 어떤 선택과 변화를 하는 것이
그의 나머지 삶에 대한 올바른 선택과 행복의 길일까요? 그웬과 헤어지고
아내와 정상적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 이혼하고 그웬과 결혼하는 것?
에디의 이러한 혼란 만큼이나 영화도 혼란스럽고 정리가 안되는 느낌입니다.
뭘 말하고자 하는 의도인지 영화가 상당히 진행되는 와중에도 정확하게 진단되지
않고 있는데 이건 사회물을 많이 만든 엘리아 카잔의 욕심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전달력이 녹슬었는지, 원작 자체의 한계인지, 어디에 문제점이 있는지
명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열망'은 심리적으로 불행하고 혼란스러운
현대 중년 남성의 삶과 심리를 전개하여 뭔가 주장하려고 한 영화지만 내용,
각본, 전달력 등에서 만족스러운 결합을 하지 못하여, 영화속 주인공 에디
만큼이나 영화도 혼란스럽습니다.
커크 더글러스, 페이 더너웨이, 데보라 커 등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고 특히
과감한 전라 노출까지 감행하며 연기한 이 고전시대 배우들의 열연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영화의 완성도나 연출이 거기 따라주지 못한 느낌입니다. 특히
연출 뿐 아니라, 원작, 각본까지 겸한 엘리아 카잔의 욕심과, 그 욕심에 받쳐
주지 못한 역량의 한계 때문에 더욱 아쉬운 영화가 되었습니다. 각본과 연출에
대한 아쉬움은 초반, 중반부에 여실히 보이는데 마치 영화의 본편이 아닌
예고편이나 편집판을 보는 듯한 짦고 짧은 씬들이 계속 지나가서 정리가
안되는 느낌입니다. 즉 긴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들이 별로 없고 뭔가 얘기가
진행될만 하면 씬이 바뀌어 버리는 연출입니다. 그나마도 요양원에 보내질
상항에 처한 에디가 플로렌스와 모처럼 진솔하게 긴 대화를 방안에서 나누는
후반부 장면 정도가 제대로 대사가 전달되는 장면입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베이비 돌' '에덴의 동쪽' 등 테네시 윌리암스나 존
스타인벡 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영화에서는 좋은 연출을 보였지만 자신이 원작,
시나리오, 연출을 도맡은 영화에서는 매우 좋은 배우들을 섭외하고도 한계를
보인 영화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솜씨가 녹슨 탓 혹은 너무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다가 이야기가 난해하게 되어버린 욕심 때문일수도 있고, 아무튼 '열망'은
감독, 배우들의 명성을 감안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영화입니다. 혹시 영화를
만들 당시 엘리아 카잔 감독의 심리상황이 영화속 에디와 같았던 것일까요?
나름 실험적인 영화지만 실험에 그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실험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ps1 : 페이 더너웨이의 개봉작 중 한 편인데 페이 더너웨이는 썩 좋은 대표작들
다수가 미개봉작인데, 오락물인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역시 오락성이
괜찮은 '오클라호마의 유전' 작품성이 높인 '차이나타운' '네트워크' 등의
작품은 개봉되지 않았고, 훨씬 흥행성이 떨어지는 '연인들의 장소'나
'열망'이 개봉되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열망'은 아마도 배우나 감독의
명성덕에 개봉된 것 같은데 70년 당시 개봉편수가 많이 줄어들어가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흥행성은 꽤 낮은 내용의 영화가 개봉된 셈입니다.
ps2 : 데보라 커의 뒷면 올 누드가 나오는 것이 이례적인데 돌아설 때 컷이
바뀌는 것을 감안하면 대역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주 잠깐 나오긴 하지만 커크 더글러스와 페이 더너웨이가 보여준
전라 노출장면은 60년대 후반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특히 이름있는
헐리웃 배우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파격적 장면입니다.
ps3 : 에디의 아버지로 출연한 리처드 분은 실제 커크 더글러스보다 1살 아래
입니다. 커크 더글러스는 '바이킹'에서도 1살 아래 배우인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아들로 출연한 바 있지요.
[출처] 열망(The Arrangement 69년) 위기의 중년남자?|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