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33)사내는 좁쌀만한 은혜도 크게 갚아야 한다 (군자와 소인배의 차이)
이날 밤 고성에서는 등불을 낮같이 밝히고 연락을 크게 베풀었다.
장비는 관우에게 유비가 기주의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두 형수를 이렇게 위로했다.
"여기서 산 하나 넘으면 여남 땅입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기주가 있으니,
이제는 형님을 쉽게 뵐 수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유비의 두 부인, 감 부인과 미 부인은 장비를 만나게 된 것도 반가웠지만,
지척에 부군(夫君)이 있다는 말에 더욱 기뻐하였다. 그러면서 운장이 할수없이
조조에게 투항했던 사실과 허창에서 체류하는 동안에 충성스럽던 사실들을 낱낱이 설명하니,
장비는 관우에게 얼굴을 못 들도록 부끄러워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날 유,관,조(자룡) 삼 인이 원술 정벌을 위해 서주성을 비울때,
자신이 남아 서주성을 지키면서, 여포의 공격을 받아 도망을 칠 때에는 관우와 다르게,
형수님들을 성에 그대로 남겨둔 채로 자신만 빠져나오지 않았었던가 ?
장비는 그런 자신에 비해, 끝까지 형수님들을 지켜낸, 둘째 형 관우에게 새삼 고개를 숙여보였다.
"형님 ! 잘 하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
장비는 평소와 다르게 관우에게 살가운 소리를 연실 해댔다. 그러자 관우는,
"이제 우리 두 사람은 날이 밝는대로, 형수님들은 이곳에 계시도록하고, 형님을 찾아가기로 하세 !"
하고, 말하였다."아무렴요 ! 그래야지요 !"장비가 손뼉을 치며 찬성했다.
한편, 기주에서는 허유가 원소를 찾아 뵙고 아뢴다.
"주공 !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유비의 아우 관운장이 조조를 떠났으며,
오는 길목마다 조조의 파관장(把關將) 들을 잇달아 죽이고 천리 길을 달려와,
여남군의 고성에서 장익덕과 만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원소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긴다.
"잘됐군 ! 여남은 여기서 이백리 길이니, 사나흘이면 도착하겠군 !"
그러자 허유는 다소간 염려스런 어조로,
"주공 ! 허나 두 형제가 만난 후, 고성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커다란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어째서인가 ?"
"글쎄올습니다 ...생사를 같이 한 유비를 불러, 물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만..."
허유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원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비를 내전으로 불러라 !"하고, 명하였다.
잠시후 유비가 들어와 인사한다."현덕이 원공을 뵈옵니다."
원소는 다소간 실망한 어조로 유비에게 말한다.
"현덕 ! 자네 아우 관우가 조조를 떠나, 자네를 찾아 오는 중이라고 하던데,
기주에 도착하는 대로 놈의 목을 베어서, 안량과 문추의 분풀이를 해야겠네 !"
원소는 이렇게 말하며, 말미에는 손으로 탁자까지 쳐가면서 분한 속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자 유비가 침착한 어조로,""원공 ! 안량, 문추가 두 마리 사슴이라면, 관우는 한 마리 범인데,
사슴 둘을 잃고 범을 얻는데 분풀이라뇨 ?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갑자기 웃어보이며,
"허허허헛 ! ..농으로 해본 소리라네. 이를 테면 자네 마음을 한번 떠본 거지.
사실 관우가 아주 맘에 들어. 소식 들었나 ? 관우가 여남까지 왔고, 장비도 거기 있다는군."
원소는 조금 전에 유비에게 화낸 것을 얼버무리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었다.
그러자 유비는 새삼스럽게 아우들의 소식을 듣고,
"여남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 며칠 후면 아우들을 만날 수가 있겠군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또 다시 실망스런 어조로 묻는다.
"허나...관우가 기주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 지 고성에서 마냥 시간만 끌고 있다는데,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그러자 유비는 원소를 향하여 허리를 한번 굽히며 말한다.
"모르옵니다.""난 관우의 속 뜻을 아네 !"
원소는 유비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말하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비에게로 다가가며 말한다.
"틀림없이 관우는 안량,문추를 죽여 내가 죄를 물을까봐, 고성에 그냥 눌러 앉은 걸세."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
유비는 원소의 예측이 정확했다는 듯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하였다.그리고 이어서,
"관우의 충의는 금석과도 같으니, 안량과 문추의 일로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이 모든 것의 해결책은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듯이,
"여남은 이백리 길도 안되니, 자네가 직접 여남으로 가서 관우를 위로하고
장비도 함께 데려오지. 두 아우 모두 중용하겠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원소의 말 중간에 흠칫 놀라며, 나서려 하였으나
주공의 말을 중간에서 붙잡을 수가 없어 난감해 하였다. 그러나 유비는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를 들은 지라, 즉석에서 두 손을 올려 허리를 굽히며 명을 정중히 받는 모습을 보이면서,
"네 ! 곧장 준비해서 여남으로 가, 나흘 내에, 두 아우를 데려오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속히 다녀오게, 내 기다림세."유비는 원소에게 예를 표하고 물러갔다.
그러자 유비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허유가 원소 앞으로 나아가 아뢴다.
"주공 유비를 저렇게 보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원소는 불쾌한 눈으로 허유를 쏘아보며 말한다.
"유비는 군자라네, 내게 약조를 했으니 분명히 지킬 것이야.
소인배의 눈으로 군자의 뜻을 함부로 곡해하지 말게."
허유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허리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소인의 착각인듯 합니다."
이렇게 말한 허유의 입맛은 씁쓸하기만 하였다.
잠시후 유비는 자신의 최측근 호위병사를 앞세우고 기주성 성문 앞으로 말을 달려 나왔다.
성문 앞에는 허유가 뒷짐을 지고 나와 서있다가 다가오는 유비를 불러세운다.
"유비 ! 유현덕. 어서 말에서 내리게."유비가 말을 멈추자, 허유는 다소 쌀살한 어조로 말한다.
"한참을 기다렸네 !"유비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에서 내려 허유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간략한 예를 표하며,"무슨 분부가 계십니까 ?"하고,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대꾸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이미 유비의 속을 간파 했다는 듯이,
"현덕 ! 하나 묻겠네. 이제 여남에 가면 다신 돌아오지 않겠지 ? 안 그런가 ?"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비가 대답을 하지 아니하고 우물거리자, 허유는 이어서,
"주공께 자네를 붙들라고 했었네, 그런데 주공이 나를 나무라더군."하고, 허탈한 심정을 말하자,
유비는 허유가 이미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을 거론하는 데 불만을 갖고 대꾸하였다.
"그래서 길을 막고 곤란하게 하시는 겁니까 ?"
"뻔한 일이 아닌가 ? 자네가 여기 있으면 수족같은 자네의 두 아우, 관우, 장비가
투항하러 오겠지만, 자네가 떠나가서 세 형제가 만난다면 여기로 돌아올 이유가 없잖나 ?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나의 충심어린 말을 주공께선 듣기는 커녕,
소인배가 군자의 뜻을 곡해한다고 꾸짖더군. 이 얼마나 황당한가 ?
이 허유는 소인배요. 자네는 군자가 되었으니까, 우리 주공처럼 나를 이해하지 못 하겠지 ?"
허유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주공을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유비가 허유를 나지막히 불렀다.
"허 형 ! 내가 기주에서 반 년을 머물며, 원소는 큰 인물이 아님을 느꼈소,
내가 여기 계속 남아 있어 본들 이루는 것 없이 목숨만 위태로울 터이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오. 그래야 천자의 명을 받들어 조조를 없앨 수가 있겠소."
그러자 허유가 코웃음으로 화답한다."조조를 없애시겠다 ? 유현덕 !
당신이 지금 이런 지푸라기 같은 꼴로 감히 역적 조조와 대적이나 할 수 있겠나 ?"
허유는 유비의 위 아래를 훝어보며 조소를 섞어 대꾸했다. 그러자 유비는 결연한 어조로,
"할거요 !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역적 조조를 멸하는 분투는 계속될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얼굴을 펴면서,
"좋소 ! 좋아 !? 그럼 한가지 제의를 드리겠소. 받아들인다면 예서 보내주지 !"
하고, 유비의 말을 반신반의하는 태도로 나왔다. 유비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말씀하시오."
"현덕 ! 지금 천하가 통일되진 않았지만, 진정 역적 조조와 대적할 사람은 몇 안 되오.
형주 유표는 형양 9군을 차지하고 있으니, 세력이나 군사력도 넉넉한 편이오.
진정한 조조의 적수가 될 수있지, 다만 우리 주공과 유표는 화합을 못해,
서로 협력하는 것은 있을 수없지. 그러나 현덕 자네는 유표와 황실의 연이 닿지 않는가말야,
바라건데 형제들과 만나거든 , 형주 유표와 협력하여 조조를 토벌하도록 하게. "
"이보시오 허 형 !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지만 원소가 막을까봐 말을 못했소.
유경승 역시 황족의 후손이니, 내가 권한다면 분명히 출병할 것이오."
"그렇게만 된다면, 나 허유가 기쁜 마음으로 황숙을 배웅해 드리겠소."
허유는 유비의 속마음을 듣고서 예를 표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자 ! 말에 오르시오."하고, 말하니, 유비도 예를 표하며 말한다."고맙소, 허 형."
그리고 돌아서다 말고 허유에게 말한다.
"허 형 ! 원소가 명군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찌...그냥 나와 함께 이 길로 떠납시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아니오. 모름지기 사내란, 좁쌀만한 은혜도 크게 갚아야 하는 법,
나의 주공께서는 우매하긴 해도 날 등용해 주셨소. 하물며 십 년 넘게 주공을 모셨으니,
도저히 버리고 갈 수는 없소."유비가 그 말을 듣고, 허유를 향하여 존경스런 예를 표하며 말한다.
"부디 몸조심 하십시오."
그러자 허유는 고개를 흔들며, 유비에게 어서 떠나라는 손짓을 해보이며 말한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세 !"
그리고 마상의 유비를 향하여 두 손을 모아 올려 존경의 뜻을 표하였으니,
도대체 군자와 소인배의 차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 허유는 곰곰히 생각치 않을 수가 없었다.
(허허 ! ... 군자와 소인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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