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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비느하스
생몰연대: 미상
주소: 벧엘.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신 성막
직업: 군인, 대제사장, 이스라엘의 지도자
가족관계: 할아버지 아론, 아버지 엘르아살
1. 비느하스의 행적
오늘 소개해 드릴 분은 너무나 멋지고, 훌륭하고, 그 이상 더 ‘님 좀 짱’일 수가 없는 분이다.
그 이름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비느하스’ 사마 되시겠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를 본딴 것인지 이름조차도 간드러진다.
(원래 비느하스의 이름 뜻은 '흑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느하스를 흑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뽀얀 피부의 꽃미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ㅎㅎㅎ)
정상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설교를 듣고 주일학교를 다녔다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는 인물인 비느하스의 하나님을 향한 의기와 열정은 더할 바가 없다.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의 것인양 함께 진노하며 우상숭배로 인한 징벌로 내려진 역병으로 이스라엘 자손 2만 4천명이 죽어자빠지는 와중에도 쎄쎄쎄에 여념이 없었던 두 연놈들 - 시므리와 고스비 - 을 긴 창으로 한 큐에 꼬치구이로 만들어 버린 일타 쌍피의 신화를 민수기 25장 8절에 화려하게 남기는 것으로 비느하스는 구약 성경에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한 방에 절단낸 안중근 장군처럼, 상해 홍구 공원을 한 방에 박살낸 윤봉길 의사처럼, 하나님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 드린 ‘비느하스 의사’(?)의 의거에 하나님께서도 극찬하셨고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주시는 것으로 치하하셨다.
이 잘난 청년 비느하스의 할아버지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형이자 대변인인 아론이요, 아버지는 당대의 제사장 엘르아살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당시 이스라엘에서 당 서열(?) 2, 3위의 거물이며 신앙적으로도 어느 하나 손색이 없는 로열패밀리이다. 신라시대로 치면 성골 귀족에 해당하고 상위 0.5%의 명문가이다.
(후일 사무엘을 키워낸 제사장 엘리에게도 똑같은 비느하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는 아들은 동명이요, 아버지들끼리도 이름이 비스무리한 조합인데 엘르아살의 경우 자식농사를 잘 하여 이후 수천년을 깃발 날리는 영웅을 만들어 낸 데 비해, 엘리의 경우 자식농사를 잘~하여 이후 수천년을 씹히는 건달을 만들어 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으로 인한 천벌. 그리고 비느하스의 부인이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짓는 것은 주일학교와 교회에서 반드시 설교 주제나, 교육 주제로 재탕, 삼탕, 곰탕으로 달여먹는 소재이다.)
각설!
아무튼 정리해 보자면 비느하스는 신앙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세상에서의 지위나 명망에 있어서도 톱을 달리는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신앙과 영적 자세를 물려받았으며 수많은 이들이 미디안의 만신무당 발람의 계략으로 인해 미디안 신당에서 제삿밥(?)을 얻어먹고 우상 앞에 넓죽 엎드려 절을 하고 2차로 신녀(?)들과 질펀한 검열삭제까지 벌이는 와중에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충성을 잊지 않았다.
그의 이름 앞에 반드시 따라붙는 ‘청년 제사장’이란 타이틀이 말해주듯 당시의 비느하스도 피 끓는 청년이었을 터이나 그는 우상과 성적인 유혹 앞에 끝내 넘어가지 않고 정신적, 육체적 순결을 지켜내었다.
그 본인만 깨끗하고 만 것도 아닌, 이스라엘 진중의 한복판까지 미디안 여자를 데려와 보란 듯이 관계를 하던 이를 그와 함께 여자까지 망설임없이 창으로 내리쳐 없애버리는 ‘실천하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비느하스가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 극찬을 받은 것은 단지 음행하는 남녀를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기분을 풀어드린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믿음’을 보신 것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내던지고 하나님의 진노에 공감한 믿음을.
자세히 보면 비느하스가 죽인 시므리는 시므온 지파의 한 지휘관이었고 고스비는 미디안의 다섯 왕 중 하나인 수르의 딸, 즉 미디안의 공주였다. 시므온 지파의 지휘관, 그리고 미디안의 공주. 과연 이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창을 내리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그 당시에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책임으로 각 지파의 주요 지휘관들을 교수형에 처하는(!!!) 살벌한 와중이기는 했으나 시므온 지파의 부하들에게 보복을 당할 수도 있었고 미디안의 보복 침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어찌 되었든 결코 무사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비느하스는 자신의 안위 따위는 생각지도 않은 채 오로지 하나님의 진노에 공감하여 담대하게 복수의 창을 내리꽂았다.
우리는 약간은 쉽게 ‘비느하스와 같이’ 청년들이 일어날 것을 외치지만 실제 그 상황에서 비느하스는 자신의 목숨을 건 한판, 하얼빈 역에서의 안중근 장군, 홍구 공원에서의 윤봉길 의사와 같은 마음으로 일어났다. 결코 낭만적이고 멋지기만 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이후 행적은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모세가 미디안을 토벌하러 출정할 때 비느하스는 각 지파에서 1천명씩 선정된 1만 2천명의 돌격대를 지휘하여 마침내 미디안을 멸망시키고 자신이 죽인 고스비의 아버지 수르와 무당 발람까지 죽이는 승리를 거두었다.
모세 사후에는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으로 활동하였고 7년 전쟁 후 가나안 땅을 분양할 때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자신들만의 제사용 단을 쌓아 타 지파들과 분쟁이 일어났을 때도 여호수아에 의해 특별 사절로 임명되어 이스라엘 전 지파의 대표단을 인솔해 가서 한 순간에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되찾는 공로를 세우게 된다.
진노로 창을 내리꽂던 용사는 이렇게 평화의 사절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호수아 사후에도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직무를 계속했고 그의 집안은 주후 70년, 이스라엘이 로마의 침공으로 멸망하는 그날까지 제사장의 직분을 이어 갔다. 그리하여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는 그를 ‘청년 제사장’으로 기억한다.
2. 청년의 영광, 만년의 그림자
여기까지 본 비느하스는 완벽한 인물이다.
비꼬는 것이 아닌 진짜 완벽한 사람이다.
신앙적으로, 인간적으로, 그가 이루어 낸 공로들과 얻어낸 명예와 지위. 어느 것 하나 완벽하고 멋지지 않은 것이 없는 우리 나라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과 같이 그 이름이 비단에 수놓인 꽃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영웅이다.
에벨과 같이 지워지고, 묻혀지고 가려져 온 일그러진 영웅도 아닌, 하나님과 사람에게 모두 인정받고 극찬을 받는 샤이닝 스타이다.
성경에서는 여호수아서 이후로 그 행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에 우리는 흔히 ‘그 후에도 비느하스는 청년 제사장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완벽하고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마치 동화책들이 항상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것처럼.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사사기에 보면 줄기차게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배도와 하나님에 대한 배신.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없애버려야 할 가나안 민족들과 쿵짝이 되는 육체적, 영적 음행들. 그리하여 사사 시대 400년을 한결같이 쥐어터지는 악순환.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의기의 영웅 ‘청년 제사장’ 비느하스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째서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라는 것이다.
비느하스의 마지막 행적은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데 기브아 성에서 벌어진 베냐민 지파의 참혹한 범죄 - 레위인의 첩을 윤간, 살해하는 - 를 징벌하기 위한 이스라엘 군대가 출전했다가 참패하여 쫓겨 온 후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올릴 때 비느하스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셨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미심장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범죄가 벌어졌을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가 비느하스였다는 것이다. (언약궤는 제사장 또는 사사만이 모실 수 있었고 언약궤를 모신 이가 곧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베냐민 지파들이 기브아에서 저지른 죄악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흔히 간과하기 쉽지만 기브아에서 첩을 잃은 레위인도 마찬가지이다.
레위인, 즉 제사장은 철저한 일부일처로 결코 ‘첩’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었다. 그런데도 그 레위인은 ‘첩’을 두고 있다.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첩을 두고 있는 것이 자랑인양 죽은 첩의 시체를 찢어 각 지파로 전달하고 베냐민 지파에게 복수해 달라고 떼를 쓰는 저 뻔뻔함은 2인조 여성 듀오 다비치의 노래 한 소절처럼 ‘어디서 나온 그런 자신감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베냐민 지파를 징벌한답시고 모인 이스라엘 지파 중 어느 누구도 레위인의 축첩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
그 뿐인가?
베냐민 지파가 거덜이 나서 폐문이 될 위기에 처하자 기껏 생각한다는 방책이 동포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빼앗아 나눠주고 (야베스 길르앗), 춤추러 나온 실로 여자들을 납치하여 아내로 삼도록 베냐민의 패잔병들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놈의 시츄에이션인가?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청년 제사장’ 비느하스가 다스리던 시기의 이스라엘에서 벌어져 성경에도 시퍼렇게 기록된 사실이다.
더 쇼킹한 것을 알려주자면 첩을 들인 그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 에브라임 산지는 7년 전쟁 후 비느하스에게 영토로 주어진 땅이었다.
비느하스의 아버지 엘르아살도 그곳에 묻혔고 훗날 사무엘도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서 태어났으니 대대로 제사장의 성지인 곳이었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벌이는 영적, 육적 타락과 죄악을 제어하고 통제하기는 고사하고 당장 자신이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지역에서 벌어진, 그것도 자신의 동족이자 제사장 동료인 레위인의 축첩 행위조차도 제대로 징벌하지 못하였다.
세월이 흘러 제사장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올리는 제물들을 착복하고 성막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놀아나는 악행을 저지르다 마침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참패하여 3만명의 병사들과 함께 죽고 하나님의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그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을 때 막 출산한 아내는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의미의 ‘이가봇’이란 이름을 태어난 아이에게 지어주었다.
의로운 분노로 일어섰던 영웅, ‘청년 제사장’ 비느하스.
시대를 역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일어섰던 그는 그의 만년에 결국 죄악으로 흘러가는 시대를 가로막지 못했다.
죄악의 방치와 침묵, 그것은 결국 영광을 이스라엘에서 떠나게 했고 마침내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청년 제사장 비느하스의 타락과 최후로써 끝을 맺었다.
3. 총평
비느하스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믿음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며 공감했으며 목숨을 건 의거로써 그 믿음을 실천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인물이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단 열 명의 의로운 자가 없어 모조리 멸망당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비느하스 한 사람의 의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고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청년의 시기에 정욕과 유혹을 이겨내고 육체적인 순결과 영적인 정절을 지켜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계승하여 마침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우뚝 선 청년 제사장 비느하스.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그 이름이 길이 빛나는 그는 세월이 흐르고 노쇠한 때문인지, 가르치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는지,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나 타락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깨우치지 않았고 그들을 향해 호통을 치지 않았고 시므리와 고스비를 꿰뚫었던 그 서릿발 같았던 창날을 두 번 다시 꺼내어 휘두르지 않았다.
훗날 패역한 이스라엘 민족들을 질타하여 미스바에서 거대한 부흥운동을 일으켜 다시금 신앙을 회복시킨 사무엘을 생각해 볼 때 비느하스의 행동은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모세와 여호수아와는 달리 비느하스의 행적이 민수기 이후로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러한 그의 만년의 행실을 가려주고 빛나는 청년의 시기만이 기억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의 행실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은 훗날 엘리의 아들이자 또 하나의 청년 제사장 비느하스를 통하여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나는 징벌을 내리셨다.
우리는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하신 말씀을 안다. 그러나 ‘시작은 창대하나 나중은 미약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믿음은 결코 왕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청년’ 비느하스를 우리의 모토로 삼고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만년’ 비느하스도 우리의 반면교사로 삼아 어느 순간이라도 뒤를 돌아보며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집필자 : 계시탐정
첫댓글 아멘
비느하스에 대해서 자세하게 연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사기 시대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악하였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비느하스가 막지 못해서 그렇다고 그 분께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까? 싶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사사기 시대 못지 않습니다.
토막살인, 축첩, 인육을 먹는 것, 오히려 사사기 보다 더 악하고 음란한 시대요,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악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우리 역시 이 악한 세상의 흐름에 거슬러 싸운다고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적어도 이 시대에 비느하스 같은 저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계시탐정님이 ID에서 처럼 탐정과 같이 깊이 생각하는 좋은 은사가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은사가 표현하는 방식 때문에 상당히 감점 요소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다른 분들이 재미있게 읽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윗 댓글에 원체 말장난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젊으신 분들은 이런 글을 좋아하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는 관점은 너무 재이있게 쓰시려 하다보니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표현을 쓰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글이 너무 가볍다는 느낌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너무 이해하기 힘든 표현은 좀 자제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선 직접 들리는 음성으로, 내적 음성으로, 성경을 통해서, 주의 종들을 통해, 성도들을 통해, 불신자를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등등
우리가 들을 귀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써서 말씀하셔도 듣지 않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야고보 사도도 말하기 보다 듣기를 속히하라고 하셨습니다.
님도 댓글로 논쟁하기 보다 댓글로 님에게 조언하는 다른 분들을 댓글을 잘 경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언에는 경청하겠으나 악플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군요. 누구든 막말을 하려면 막말을 들을 각오도 해야하는 법이고.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범절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님의 어느 글에서가 님께서 전도사님이시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의 종의 길을 가시는 님께서 경청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른 목회자 밑에서 동역을 하시든 단독 목회를 하시든
그렇지 않고 일반 사회 생활을 하시거나 가정 생활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저나 여기 카페 모든 회원들이 마찬가지이고 주님 오실때까지 힘써 애써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댓글로 인해 님께서 마음이 몹시 불편해져서 무슨 댓글을 쓰실까? 상당히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 쓴소리를 적습니다.
부디 명심하여 받으시고 님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해가 있으시군요. 경청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윗 댓글처럼 저속하다느니, 가짜라느니 하는 저런 악플에 대해서는 경청할 필요도 이유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집필코드가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다듬겠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이곳에서 느낀 바는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가혹한 분들이 참 많더라는 겁니다. 남의 글에 대해 막말과 악플을 아무렇지도 않게 달면서 그 상대방이 반박을 하면 은혜가 안 된다느니, 덕이 안 된다느니 하며 도리어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고 내가 하면 충고요, 직언이면서 상대방이 하면 악플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더군요.(누굴 찍어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댓글이든 무엇이든 "내가 이렇게 적으면 저 사람 기분이 어떨까?" 한번쯤만 더 생각을 하고 쓴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만 모두가 제 마음 같지가 않은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적잖은 파란은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분명 약속드리는 것은 누구에게든 어느 분에게든 제가 먼저 시비를 걸어 논쟁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구요. 그러나... 예의를 잃고 직언을 빙자한 막말을 여과없이 제게 던지는 분이 있으시다면 그 분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약간의 피드백은 드릴 것입니다.
(그래야 그 분이 다른 곳에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죠?)
@계시탐정 제가 오해를 했다면 죄송합니다.
사람이 글 몇개 댓글 몇개로 사람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죠.
같이 몇 십년을 한 집에서 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오죽 하겠습니다.
저도 이 카페에서 제법 글을 많은 올리는 편입니다.
직접 쓰는 글은 별로 안되지만요.
대부분 무난한 글들, 그리고 가급적 논쟁의 여지가 없는 글들을 올리고자 노력을 합니다.
올리면서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다음에는 카페 회원들에게 유익한 것일까?
이 두가지 점에 대해서는 늘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는 비난을 각오하더라도 정말 진실이 알려져야 하겠다 싶으면
악플이 올라올 것을 생각하고서라도 올립니다.
@고다니엘 정말로 그런 글들은 악플이 올라오더군요.
그런데 그 글들을 단순히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올리는 댓글과
그냥 자신의 의견이 100% 맞고 상대방의 것은 무조건 틀리다는 생각으로 올리는 댓글이 있더군요.
그래서 그런 분들께는 늘 이렇게 댓글을 드립니다.
*
이 글이 성경에 어긋나면 카페 운영자께서 삭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님께서 받아들이기 힘드시면 그냥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주십시오.
**
이렇게 댓글을 남기고 더이상 논쟁을 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을 참지 못하시고 도에 지나친 댓글을 쓰시는 분들이 있으셨습니다.
@고다니엘 그런 분들은 스스로 분에 못이겨 탈퇴를 하거나 카페 운영자님께서 적절한 조치를 하시더군요.
영심 집사님이 웬만하면 활동중지 같은 중징계는 하지 않으시는데
그 분들의 댓글은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이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지나친 댓글이었습니다.
님께서 위에 댓글에 다른 분들이 먼저 시비를 걸고 논쟁을 일으키는 경우라고 하셨는데
제 솔찍한 바램은 그것까지도 그냥 넘겨주시는 것이 님께도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댓글 몇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 두 마디 권면을 해도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 맡겨두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다니엘 헌데 그것도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서 제 의견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이가 있고 "그딴 헛소리 당장 집어쳐라. 너 완전 이상한 인간이네?"하는 이가 있지요. 첫번째는 그나마 봐줄만합니다. 그러나 두번째는 엄연한 악플이고 인격모독이지요. 어떠한 경우에도 글에 대한 평을 넘어 글쓴이에 대한 모독은 있어서도 안될뿐더러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고다니엘 지금까지 경험상 그런 걸 그냥 내버려 두면 다른 데 가서 또다시 그런 짓들을 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제가 조용히 숙여준다면 마치 자신이 옳고 제가 틀려서 그런 양 기고만장한 모습들을 보이기에 그냥 넘겨주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님 얘기를 듣고 나니 한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겠군요.
@고다니엘 그러니 혹시 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댓글(악플)이 있더라도 운영자님께 중재를 요청하시고
그러려니, 하고 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
전에도 카페에 목사님들, 선교사님들, 전도사님들, 나름 성경도 많이 알고, 은사도 많고,
영적 세계도 잘 꿰뚫는 그런 분들이 열심히 활동을 하셨는데
정말 사소한 댓글 논쟁을 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아 떠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님께도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님의 좋은 은사를 좋은 그릇에 잘 담아 많은 분들에게 유익을 끼치시는 귀한 지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계시탐정 조언을 겸손히 잘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연단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조언은 듣지 않고 튕길수 있는데 하나님께 걸리니 이건 오도가도 못하게
훈련을 하시더군요.
그러니 님께서는 한 두마디만 좋게 조언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
하나님! 이 분 손 좀 봐주세요!
*
하고 하나님께서 직접 만져주시도록 놔두시면 좋겠습니다. 샬롬.
@고다니엘 ^-------------^ 고다니엘님 감사합니다.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권면해 주심에...
또한 계시탐정님께서도 이에 대한 권면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주셔서 이제 제 마음이 편안합니다.두분의 대화에 왠지 ^----^ 계시탐정님께서 권면의 말씀을 참고하셔서 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마라나타
계시탐정님께 사과 드립니다.
올리신 답글을보고 내가 올린 글이 악플인것을 알았습니다.
분명 님께 상처가 되었음을 저도 인정합니다. 죄송합니다. 깊이 사죄 드립니다.
^-----------^ 실은 저는 회원님들의 모든 댓글들을 거의 확인한답니다.올리신 댓글 읽으면서 제 마음이 좀 불편하였지만 그냥 침묵하였었는데 ...지금 다시 올리신 댓글 읽으면서 제 마음이 훈훈하네요.잘 하셨습니다.^^*이렇게 하시면 본인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또한 댓글을 읽는 우리님들께도 마음이 편하게 되는것입니다.감사드리며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마라나타<화해 하세요~화해 하세요~ㅎㅎ>
깊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앞서 올린댓글은 삭제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성경이야기 시리즈네요..잘 읽었습니다..
젊어 크게 쓰임 받는이들은 많은데..정말 중요한건 마지막이네요..
끝까지 초심을 잘 지켜 잘 쓰임 받아야하는데...
다들 그게 쉽지않은가 봅니다.
글 읽으면서 씁쓸하네요.
한국교회의 부흥세대였던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비스하스와 오버랩이 됩니다 ㅠㅠ
그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장한 한국교회는 없었겠죠;;; 거기까지는 딱 좋았는데 지금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