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붙인 주석
이호석
아직 정리되지 못한 이삿짐을 바라보며
당분간은 이곳에서 냄새를 피우고
아이들의 서툰 수저질을 바라보리라
장마철이면 벽을 타고 오르던 곰팡이꽃과
하수구에서 역류하던 빗물에 신발들이
난파선처럼 둥둥 떠다니던 망월동 월세방
원망 같던, 애원 같은 눈물의 빗소리
그 반지하에 누워 아버지의 무덤을 곧잘 생각했지
고향 뒷산 너르고 양지바른 곳
지관마저 탄복하던 아버지 무덤은
집안의, 외아들의 미래였지만
희망을 담보로 얻은 비루함이라니
서울 생활에 지친 나를 두고 어머니는
이제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
아버지 유골을 화장하고 돌아오며
한 서린 눈물을 꾹꾹 찍어 내셨다
나는 이제 내게서 영영 떠나가 버린
그때의 빗소리에 대해 주석을 달아야만 한다
주) 이사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무덤이 아니라 근사한 집을 마련해 주고 싶었음을. 평생토록 자기 집 한 번 가져 보지 못한 아버지에게 죽어서나마 자신의 땅에 편안하게 잠들게 하고 싶었음을. 그래서 그토록 환하고 너른 땅에 짙푸르고 무성한 잔디가 자랄 수 있었음을, 하지만 혼기가 지난 아들이 신접살림 차릴 돈이 없어 결혼을 미루고 있는 사실을 알고, 저미는 가슴을 안고 죽은 아버지 집을 팔기로 했음을. 땅값을 더 받기 위해 아버지 유골을 화장해야만 했었다는 것을. 이 모든 슬픔은 우리의 구불구불한 생에 주석으로 달랠 수 밖에 없음을,
☞이호석 시인은 ... 문예바다 신인상, 김만중문학상 수상, 시집 -'여름에게 부친 여름' , 천년의 시작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