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이나 아구라의 세일러류(이쪽 분야의 대표적 논객이죠. 요즘엔 뭐하는지 활동이 좀 뜸함.), 화폐전쟁의 쑹홍빙류의 주장은 겉보기로 보면 그럴듯해보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얼핏 우리가 노동시간만큼의 부가가치를 얻어내지 못하는 상황, 즉 지속적 화폐가치하락과 구매력하락의 원인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보이죠.
이들의 주장은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역사적인 수준에 미루어볼때 현재 화폐는 과다발행되어있고 또한 과다발행되고 있으며 그로인해 노동가치에 대한 보상의 지속적 하락이 불가피하며 우리는 인플레라는 또다른 보이지 않는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타당한 견해입니다. 이것은 경기과열을 수축해야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죠.)
문제는 이담부터 이들부류의 주장인데 단기적인 긴축의 필요성은 이미 기존의 공급론에서도 이미 전제한 바입니다. 헌데 어이없게도 이들은 중장기적으로 화폐공급의 축소를 이야기하면서 화폐공급기관인 연준을 위시하여 국가은행이 모든 악의 원흉이라고 하죠.
이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중앙정부은행은 애초에 우리 혹은 경제가 다 값을 수 없는 양의 화폐를 발행하여 그 이자만으로 여기에 인플레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까지 버무려서 민간경제를 조금씩 착취하고 있으며 이들의 운용에 관여하는 금융가문만이 이 게임의 승자라는 것이죠.
그리고는 로스차일드나 바르부르크, 페레르 등등등 별의 별 금융가문의 역사를 나열합니다.
결론은 이들이 흑막뒤의 실체이며 기존의 법정화폐체제는 이들만을 위한 게임으로 진정한 화폐인 금본위제 혹은 진보적인 탄소배출권본위제 등으로 갈아타여야 한다는 것이죠.
연방준비위원회 음모론 뒤에는 항상 이것도 따라 붙죠. 막대한 연방정부의 부채 말입니다. 대략 미국의 한해 GDP정도가 되는데 그 중 80프로정도가 FRB에 대한 부채이므로 FRB가 사실상 미국의 주인이라는 것 또한 꼭꼭 덧붙입니다.
대단한 이론이죠. 이건 꽤나 잘 맞춘 이론이라 저도 한동안 철썩같이 믿었더래죠. 헌데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요? 헌데 경제를 공부하면 할 수록 다른 논리가 세워지고 종국에는 이러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의 이론이야 말로 진정한 음모론 경제이며 국민강탈 경제라는 것을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란 말을 다르게 하면 알면 두렵다는 거겠죠.
이들의 이론은 알면 알수록 정말 두려운 이론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그동안 쌓아올린 국민경제를 통째로 금융거부들에게 갖다바치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환율이니 금리니 그런거 다 빼놓고 결국 상품은 노동으로 만들어지고 화폐가치는 노동시간이랑 등치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봅시다.
만약 화폐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30년전 혹은 100년전의 어떤 늙은 경제주체 혹은 죽은 경제주체의 100시간 노동분이 시간이 지난후의 신경제주체의 100시간 노동분이랑 같은 등가가치를 지니게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주 조금의 이자만 붙여도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서 금리 1프로로 치죠. 간단히 말해서 100년전 경제주체의 노동생산의 100시간분을 신경제주체는 130시간이상분으로 뱉어내야 합니다. 이 것이야 말로 명백한 강탈이죠. 만약에 화폐가치가 고정되어 있다면 이러한 식으로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기성 채권자는 신소비자를 그 새로운 세대의 몫뿐만 아니라 여기에 이자까지 쳐서 그들의 생산성 향상분까지 갈취할 수 있게 됩니다. 아주 작은 이율만으로도 말이죠.
다시말해서 원금의 가치하락이 있어야 이자라는 것과 맞물려서 세대가 지나가도 공정한 경제가 성립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약간의 화폐가치 하락을 통하여 구세대의 100시간분의 노동이 가만 있으면 신세대의 70시간 노동분에 불과하게 될것이라고 할때 경제는 여기에 이자라는 혜택을 통하여 그 30시간의 간극을 메꿔줄수 있다는 것이죠.
이건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화폐의 가치하락이 없는 경제를 생각해봅시다. 이러한 경제라면 소비라는 것은 절대적인 악이 되어 버립니다. 왜냐면 가만이 있어도 점차점차 불어나는 실질부가가치시스템에서 현재를 위해 쓴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화폐의 가치하락이 있는 체제는 어떠한가요? 이런한 체제에서만이 각 경제주체의 현명한 판단을 구분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떨어질 가치만큼을 감당하지 않고 현재에 소비하는 것이고 하나는 이자 혹은 금융수익이 보정해주는 것을 믿고 저축을 하는 것이죠.(비록 그렇다해도 거시적으로는 금융수익을 포함해도 구시대의 노동은 현시대에는 약간 낮게 평가되는 것이 타당하겠죠.)
수학으로 표기해보죠.
화폐가치하락이 없는 경제에서
100*(1.01)^30 > 100 초과이므로 신경제주체는 그 차익만큼 뱉어내야함.
화폐가치하락이 담보된 경제에서
100*(X=화폐가치하락분)*1.01^30 == 100
다시 말하면 {100*(1.01)^30}*(화폐가치하락 factor) == 100 으로 화폐가치하락을 '반드시' 곱해줘야 함.
즉 이자소득만큼 적절하게 통화가치를 하락시켜야 기성경제주체와 신경제주체간 공정한 가치교환이 가능해짐.
진정한 거짓은 90프로의 진실에 10프로의 거짓을 섞는 것이라 그러죠. 세일러류나 시대정신류가 왜 무서운가하면 이러한 점에 있어서 교묘하게 팩트를 꼬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쑹홍빙역시 지적했지만 연준설립이전 화폐가치는 무려 300년동안 거의 일정했거나 심지어 상승하는 국면조차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크롬웰의 청교도혁명기의 1펜스와 빅토리아여왕기의 1펜스의 구매력이 똑같았다는 겁니다.
그럼 청교도 혁명당시 전재산 10만냥인 한 가문이 빅토리아대에 들어서 전재산이 1억파운드이다. 이러면 이건 뭘로 설명할까요? 한마디로 이 뭐 병 소리가 안나오면 안되겠죠. 헌데 이때는 실제로 그랬단 겁니다.
각 금융가문 음모론이 이래서 우스운건데,(이부분에 주목해 주세요. 이 부분이 바로 그 10프로의 거짓부분입니다.)
바로 그들 금융가문은 현재의 가치하락시스템하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가치고정시대에 그러한 규모의 거부로써 거듭났다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화폐가치하락의 시대가 아니라 화폐가치고정의 시대야 말로 그들의 시대였다는겁니다.
이건 아주 실증적 논증으로도 쉽게 증명되는 것입니다. 간단히 보불전쟁당시 프러시아군대의 총알한발까지 그들로부터 조달한 돈으로 전쟁을 치렀다고 하잖습니까? 헌데 지금은 어떤가요? 아시다시피 이라크전쟁당시 '악명높은'부시가 FRB에 영수증 하나끊어주고 모든 전비를 재무부로부터 조달했습니다.
그 로스차일드가의 귀부인이 말했듯이 울 아들들만 아니면 전쟁이 없을거라고 말할 정도의 그러한 시대가 화폐가치고정의 시대였습니다. 거부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대했다는 것이죠.
헌데 지금 전쟁은 누가획책하나요? 프레지던트 부시가 맘만 먹으면 전쟁일으킵니다. 금융권은 여기에 재미를 보긴 커녕 부시가 과다 발행한 신용땜시 일시적인 금융프로세스마비를 겪기조차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시는 좀 마음에 안들지만) 국민경제의 중요한 결정권이 적어도 선출권력에 의해서 행세되게 되었고, 금융기관은 여기에 밥숟갈을 올려서 약간 재미를 볼 수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국가전비 혹은 전쟁배상금을 통째로 놓고 쳐먹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모든 변화는 금본위제의 폐지와 중앙은행의 설립과 법정화폐의 탄생이후에 일어난 변화란 것입니다.
고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야 말로 구금융가문의 리턴을 주장하는 바와같죠.
아님 (이후 체제에서 재미를 본 이들의)신금융가문의 소망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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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찍어야만 돌아가는 경제의 당위성은 글로 쓸려구요.
출처가 어디고 언제 쓴 글인가요?
맞는 말인거 같습니다. 물량이 점점 많아지는데, 화폐가치가 100년전과 현재가 같다면, 오히려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맞는 말이죠. 그리고 중앙 은행이 생긴 이유가 생겨야 할 이유가 있어서 생긴 역사적인 산물인데, 그걸 까는것이 모순이란 이야기죠?
미국 민중사에서도 좀 언급 되였있뜸 (가난한 민중은 필연적으로 빛을 져야 하는데 화폐가치는 고정되거나 올라가니 이자율 부담은 업되어서 2중의 고통을 느낀다.... 라고 언급됨)
잘 읽었습니다
생각을 넓혀주는 글이네요. 이슈게시판 말고 토론쪽으로 가서 다른분들 견해도 들어보고 싶네요.
그럼 로스차일드 가문같은 거부들의 영향력이 조금씩줄고 있다는건가요?
150년 전 유럽에서 로스차일드가의 영향력과 지금의 영향력, 100년 전 미국에서 모건가의 영향력과 지금의 영향력을 단순히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 같네요.
이 말 대로라면 인플레가 없던 수천년동안 신세대 사람들이 착취당하고 살았겠군요.
경제공황이 왔을때 미국인구의 태반이 말그래로 무일푼이었습니다. 이 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다같이 무일푼이라 집이나 차등을 저당잡힐래야 저당잡힐수조차 없어서 경제공황이 끝났을때 무일푼이던 사람들이 노숙자는 안된 것이었는뎁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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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자들의 힘을 과대 평가하다뇨? 금융업자들의 힘을 과대평가한 시대정신이나 아구리언류를 성토하고 있고 현대의 시스템에 들어서 금융업자들의 힘은 약해졌다는 게 금융업자들의 힘을 과대평가하는거로군요? 잘못이해하신거임? 아님 곡해임?
화폐가치가 노동시간과 등치한다는 설명이 잘 이해가 안가네요.. 노동시간과 노동시간에 따른 생산물의 가치가 등치한다는 소리인가요? 화폐가치라 하면 보통 화폐 한단위가 구매할 수 있는 실물의 양을 나타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보자면 화폐가치와 노동시간이 등치한다는 건 뭔가 이해가 잘.. 화폐가치는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고 노동시간과 그에 따른 소득화폐가 비례하게 증가해서 노동시간과 소득구매력이 등치한다는 소리인 건가요?
유물론적 해석이죠. 맑시즘 'ㅅ'
노동가치설에 따른다면..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라는 것은 그 특정 시대의 평균적인 노동시간당 생산가치(실물측면)를 나타내는 것 아닌가요? 이거를 시대 구분 없이 옛날 현재 똑같이 적용할 순 없을거같은데요. 따라서 노동시간당 생산가치는 시대마다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근데 위의 글에서는 어느 시대든 동일하게 적용했네요. 예를 들어 옛날 노동자가 100시간을 일하고 사과 10개를 생산했다고 합시다. 그때 사과 10개의 가격이 만원이라면 노동시간당 생산가치에 따라 보수를 받아야 하므로 사과 10개에 해당하는 임금, 즉 만원을 받겠죠. 만약 30년 후 노동자가 100시간을 일하고 생산성 증가에 따라 사과 20개를 생산했다고
칩시다. 노동시간당 생산가치가 과거나 지금이나 동일하다고 위의 글처럼 가정하면 역시임금으로 만원을 받겠죠. 왜냐 노동시간당 생산가치가 시대구분없이 동일하므로 아무리 생산성이 높아졌어도 (뭔가 모순적이죠) 100시간 일한 노동시간은 일정하니 실질임금도 변해선 안되니깐요. 그들은 그임금으로 사과 10개를 구매할 수 있죠. 만약 그들이 30년 전에 100시간동안 사과 10개를 생산하던 사람들한테 만원의 빚을 졌다고가정해봅시다. 사과 10개 생산하던 노동력만큼의 해당하는 돈을 빌려놓고는 갚을때는 사과20개 생산하는 노동력에 해당하는 돈으로 갚아야한다는 소리입니다. (둘다노동시간은 100시간으로 동일 노동시점만 30년 차이가
있음) 억울하죠. 그래서 나온게 중화루님 말씀대로 화폐가치를 1/2로 하락시키면 30년 전에 사과 10개에 만원하던게 30년후에 2만원으로 비싸지니깐 그렇게 해서 만원에 사과 5개를 살 수 있도록 물가를 조정하자는 얘기죠. 그렇다면 실질임금을 동일하게 하기 위해 명목임금도 2배로 뜁니다. (아까 실질임금도 변해선 안되니깐요라고 한건 물가, 즉 화폐가치가 고정되었을때를 가정하고 한소리) 즉, 100시간에 따른 임금이 2만원 됐죠. 하지만 임금이 2배가 되도 사과값도 2배가 됐으므로 실질임금은 사과 10개로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30년 전 100시간 노동의 댓가인 사과 10개에 해당하는 만원을 갚기 위해 30년 후 50시간 노동의 댓가인 사과 10개에 해당하는 돈을 지출하니 실물 면에서 사과 10개를 빌려서 사과 10개를 갚는 꼴이니 생산성 차이에 따른 착취구조가 해결된다는 논리죠. (채권자가 대출로 인해 감수하는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은 배제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이 안되는게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가 어떻게 시대가 변했는데(다시 말해 생산성이 변했는데도) 고정될 수 있냐 하는 겁니다. 30년 전의 노동시간당 생산가치와 30년 후의 노동시간당 생산가치는 다르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30년 전 100시간을 노동해서 사과 10개를 만들고 사과 10개의 값인 만원을 벌었다면, 30년 후에는 100시간 노동해서 사과 20개를 만들고 사과 20개의 값인 2만원을 벌어야합니다. (화폐가치는 고정되어 있다 가정합니다) 그렇다면 만원을 갚을때 그 만원은 사과 10개의 가치니 화폐가치가 고정된 상태에서도 착취문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결론은 노동가치설이 맞다 틀리다에 관해선 접어두고 노동가치설 자체로만 따져도 노동시간에 따른 가치는 사회적 평균 개념이라는 점. 따라서 시대에 따라 그 사회적 평균이 변화할 수 있다는 걸 간과하신 게 아니실까 싶습니다..... 저는 인플레이션이 올바른 교환을 위해 어떤 경제체제에서나 필수불가결하게 존재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no,, no 잘못해석하신 겁니다. 노동생산성이 증가했으면 평균은 당연히 변하는거죠. 30년후 100시간에 사과 20개 생산이면 30년후의 화폐가치는 만원에 사과 20개입니다. 100시간=만냥 이게 노동가치설이에요. 사과가격에 맞춰서 임금이 2만원이 되었다. 이게 일반의 화폐수요공급이론입니다. 더욱이 사과가격에 맞춰 임금이 2만원이 된다. 이말은 곧 생산성 증가만큼 통화량이 증가함을 얘기하는건데, 이것또한 인플레죠.
30년전에 빌린 사과 10개 생산하던 노동력만큼의 해당하는 돈, 그러니까 만원을 갚아줬음니다. 근데 이 만원이 이제는 사과 20개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후세대들의 생산성 향상분을 갈취했다는 것이고 이게 가만이 있어도 실질부가가치가 늘어나는 잘못된 시스템이란겁니다. 사과 10개투자해서 20개(이자를 고려하면 20개 플러스 알파가 되죠.)되면 막말로 어떤 계층은 일할 필요가 하나도 없어지는거죠. 그래서 그때가 거부들의 시대였다는거구요. 그럼 30년전에 만원에 사과 10개였는데 이제 20개되었으니 그건 또 뭐죠? 라고 말씀하신다면 테크놀러지 향상에 따른 당연한 경제주체의 삶의 질의 향상입니다.
화폐의 가치가 근 300년동안 그대로이거나 심지어 약간 오를때조차 있었다는 말이 그말이죠. 10개에서 20개는 좀 극단적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같은 화폐의 구매력이 되려 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의 노력의 댓가인데 화폐가치가 그대로이면 여기에 금융귀족들이 밥숫갈을 올릴수 있죠. 인플레는 그러니까 신세대에 있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평균을 적용하자는 겁니다. 즉 100시간가치를 2만원으로 바꿔주고 사과 20개에 2만원으로 하면 10개에 만원 여기까지가 생산성향상분을 상쇄(혹은 대응)하는 수준의 인플레이고 100시간가치를 3만원으로 바꾸고 사과 20개에 3만원으로 하면 10개는 6만 7천원,
즉 신세대와 구세대의 동등한 교환과 구세대들의 혹은 신세대들에 있어서 현명한 경제생활의 이유가 생기는거죠. 당대에 사과 10개를 얻냐 아니면 후대에 15개를 얻지만(기실 15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바꼈을때이죠.) 가치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세대들보다 덜한 대우를 받는 것을 감수하느냐 이런 문제죠. 헌데 사람은 죽고 결혼이나 양육의 대사는 젊었을때의 일이니 애 학교안보내고 돈 아끼는 것을 통념상 투자라고 하지는 않으니 그런면에서 밸런스 조정이 중요한거라는거죠.
한편 이건 발달하는 경제에서 구경제주체가 왜 보수화되고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가에 대한 분석도 됩니다. 상대적인 면에서보면 그네들은 중산층에서 차상위계층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인데(20개가 평균인 세상에서 15개라면 당연히 그만큼 떨어진거죠.) 소싯적을 기준으로 자신의 과거소득에 대한 실질구매력이 향상하니까 5개만큼 자신은 얻었다고 착각하는 꼴이란거죠. 정작 20개가 기본인 신세대들 입장에서는 얘네들은 늙다리가 되는거구요.(신혼부부 홈씨어터 깔고 시작하는데 자신은 티비만 평면으로 바꾸고 수혜계층이라 착각하는 꼴)
그냥 본문과 관계없이 덧붙이는데, 아담 스미스의 경우에는 초기를 제외하고는 노동가치론을 포기했습니다. 개개의 사람 특성 차이를 무시한다 쳐도 애초에 기계와 기술이라는 존재가 있는 한, 생산성의 변화라는 게 엄밀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후 리카도를 거쳐 마르크스가 되살려내었긴 합니다만 그 마르크스도 스미스가 봉착한 문제에 도달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그가 시도한 것이 기술과 기계를 과거 노동의 결과로 간주하여 변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근데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이후 엥겔스가 노동가치론의 적용은 미개한 사회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사실 의미가 없게 됩니다.
//charment lhsz 그러한 같은 방식의 해석을 이데올로기적해석이라고 그러죠. 이것은 공산주의적이다, 자본주의적이다. 노동가치설이니 아니니 하는식으로 하는 것말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러한 방식으로 태클거는 것만 극성으로 연마한 부류들도 있습니다. 뉴라이트류의 부류죠. 본디 어떤 논지를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 것이 나름 어떤 구조를 갖췄는가를 보고 그 틀을 치는 것이 정석이지, 어떤 아이디어가 어떤 부분의 컨셉을 조금 차용했다고 해서 이건 마르시즘이다. 이건 아담 스미스이다. 이러면 전형적인 노친네들의 화술이죠.
그런 방식의 비난은 기업이라든가 학계같은 제도권에서조차 건설적인 제의니 참신한 아이디어니해서 사실상 엠바고쳐서 막는 그런 것인데, 그 방식을 답습한다는 것에 대해선 나름 온라인커뮤니티인 이곳이 의외로 보수적이다. 전 그렇게밖에 안 느껴지는군요. 생각해 볼 문제라 생각지 않으시나요? 이게 조금만 심화되면 아구리언의 길을 걷는 것이겠죠.
노동가치설 나와서 덧붙입니다. 맑스가 말하는 가치는 사회적 가치입니다. 시장가격은 변동이 심해서 지표로 안 보고, 시장가치만 지표로 보는데, 시장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관계만 증명하면 됩니다. 마르크스의 가치는 가격과 아무런 양적 상관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가격을 계산하는데 아무 필요도 없습니다.
1차대전 전에는 가치와 가격을 혼동한 잘못된 가설로 논란이 일었던 것이고요. 그후에 1970년대에 루빈의 가치이론이 나와서(신해석)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카아도적 해석은 '추상노동=지출된 노동', 루빈의 해석은 '추상노동=표현된 노동'이죠. 즉, 교환가치에 의해 표현되는 동질노동이 추상노동이라는 것입니다.
노동생산성과 노동임금이 같이 증가해야 노동자의 삶이 좋아지므로 화폐공급의 축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이 부분에선 중화루님의 주장이 맞습니다. 화폐가치 하락이 금융기관에 불리하다는 것도 맞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중화루님의 금융기관 음모론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자본주의 역사 수백년 동안의 데이터에선 노동생산성과 노동임금이 꾸준히 증가했거든요.
금융으로 인한 착취가 있다면 위의 글보다는 금융 특혜를 힘입어 경쟁 배제를 통해 절대적 잉여가치를 높인 점이겠죠. 우리가 노동시간만큼의 부가가치를 얻어내지 못하는 상황은 산업자본이 금융 특혜를 통해 환율 차익을 얻고, 자금을 내부거래해서 가격과 품질경쟁을 배제하면서도 고수익을 보장받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른바 선진국은 노동강도의 증가, 개도국들은 노동시간의 증가를 통해 착취를 할 수 있는 것이죠. 노동강도의 증가는 노동시간이 물리적인 시간 그대로가 아니라 상대화시켜 노동시간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절대적 잉여가치의 착취를 하면서도 물리적 의미의 장시간 노동을 연결 안 시키는 눈속임이 가능하죠.
중화루 // 이게 무슨 소린지요. 제가 무슨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이니 헛소리라고 하기라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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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지면 사과나무에서 사과도 중력가속도공식대로 떨어지진 않는뎁쇼. ㅋ
뉴턴의 사과얘기죠. 그건 좀더 미시적인 수준의 논의, 이를테면 사과가 떨어질때 공기저항력도 따져야 한다는 수준의 말은 되도, 가설자체를 뒤집지는 못하는걸요. 그말은 인플레의 불가함이 아니라 인플레를 불러일으킴에 있어 민간경제주체가 그에 대응하는 이자율상승으로 따라붙으면 사실상 무효화된다는 것 아닙니까. 이거야 말로 20년대 이전에나 있던 얘기입니다. 바로 그 문제때문에 중앙은행만들고 중앙은행과 시중은행간 수신구조의 금융체계를 만든건데요. 그런 이론은 공급적인 통화정책을 펼려하는 정부재정정책에 대한 지네들 밥그릇지키기의 회의적견해로써 금본위제하의 금융자본이 하던 말에 불과치 않습니다.
최초의 정부신용공급정책이라 볼수 있는 나치의 메포어음발행때나 반대파들이 부르짓던 얘기죠. 메포어음이 당시 독일의 전시산업과 연관이 있었다면 지금은 채권발행형태로 중앙은행이 상시적으로 찍어냅니다. 그리고 그 금리에 대해서는 시중은행은 독자적인 금리정책을 펼 수 없게 해놨어요. 시중은행이 운영비명목의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아예 다른 수준의 금리정책을 이를테면 중앙은행으부터 싸게 화폐불하받아서 터무늬 없게 비싸게 대출했다가는 바로 담날부로 그 채권경매판에서 퇴출 아니 애초에 별의별 규제장치로 그럴래야 그럴수 없게 해놨다거든요.
뭔 소린지 이해를 못하겠군요. 명목이자율이 거기서 왜 튀어나옵니까? 더욱이 명목이자율로 가설을 뒤엎을 수준은 아닌데 뭔 소리를 하시는지. 가설을 뒤엎으려면 화폐공급론의 반대이론 그러니까 화폐가치절상(금본위제하의 금절상)과 같은 것으로 총통화량이 너무 느는 것을 막아야 된다는 이론을 들고 나와야지 기껏 기술적인 문제로 뭘 어쩌자구요. 아님 제가 잘 못 알아들은건지. 그리고 저 그래프상에서 실질이자율은 명목이자율보다 대부분의 시기에서 낮게 형성되는데 특히 2차대전이후 따로 노는 현상이 자명한데 그게 인플레가 아니면 뭐죠?
그 점이 이전 전제를 직접적으로 뒤엎지는 않는다는거죠. OTL님의 그 것이야 말로 신용공급운용에 있어서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것이 20년대 이전식의 경제운용을 정당화시켜주진 못합니다. 시대정신에 나오는 그 화폐량증가곡선을 보시죠. 어쨌든간에 전후체제에서 화폐량증가는 너무 명백하단 말입니다. 화폐량이야 말로 보다 이자율보다 더 직접적인 양적완화의 증거죠. 미국국채발행량, 즉 미국가채무의 지속적인 증가역시 그러한 거구요. OTL님의 그 그래프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공급을 너무하게 되면 자산가치상승등으로 되려 구경제주체들에게 이로운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다시말하면 우리나라나 일본의 부동산정책실패와 같은 현상을 내재한 공급 혹은 양적완화의 양날의 검이라는 속성을 묘사하는 것이지 그 것역시 크게 봐서 화폐총량을 경제수준에 맞춰서 제어한다는 금본위제의 이데아와 같이 전적으로 뿌리가 다른 이론이라기 보다는 케인지언의 기술적오류를 프리드만등이 가다듬으면서 수용한 운용택틱의 일종의 재난발생시오리(theory)에 불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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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무슨말인지 모르겠는데......
풀어서 설명하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