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 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시문학』 창간호, 1930.3)
♣어휘풀이
-오매 : ‘어머나’의 전라도 방언
-장광 : ‘장독대’의 전라도 방언
-기둘리니 : ‘기다리니’의 전라도 방언
-자지어서 : ‘잦아서’의 전라도 방언
♣작품해설
구수한 전라도 방언이 듬뿍 배어 있는 이 시의 감상 초점은 ‘골 붉은 감잎’을 바라보는 ‘누이’와 시적 화자의 태도에 있다. 즉 ‘오매, 단풍 들것네’라며 소리치는 두 사람의 탄성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 어떻게 다른지에 관심을 두고 작품을 파악해야 한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일상사에만 매달렸던 ‘누이’는 어느 날 장독대에 오르다 바람결에 날아온 ‘붉은 감잎’을 보고는 가울이 왔음에 깜짝 놀라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소리 지른다. 그 놀아움이 누이의 얼굴을 묽히고 마음까지 붉힌다. 그러므로 ‘단풍 들것네’란 감탄은 ‘감잎’에 단풍이 드는 것이 아니라 누이의 마음에 단풍이 든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가을을 발견한 놀아움과 기쁨도 잠시일 뿐, 누이는 성큼 다가온 추석과 겨울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추석상도 차려야 하고 월동 둔비도 해야 하는 누이로서는 단풍과 함께 찾아온 가을이 조금도 즐겁지 않다.
누이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화자는 누이가 왜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소리쳤는지, 누이의 얼굴과 마음이 왜 붉어졌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둘째 연의 1.2행은 누이의 걱정을 헤아린 화자가 누이를 대신해서 누이가 외치는 탄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며 소리 지른다. 호칭의 대상이 ‘누이’가 아닌 ‘누이의 마음’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첫 연의 ‘오매, 단풍 들것네’의 주체가 감잎이 아니라 누이의 마음임을 알게 해 준다. ㄸ라서 화자가 소리친 ‘오매, 단풍 들것네’의 주체도 화자 자신의 마음이 된다. 다시 말해, 누이의 마음이 화자에게 전이됨으로써 누이의 걱정이 화자의 걱정과 하나가 되는 일체화를 이루게 된다.
결국 ‘누이’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한 것은 ‘감잎’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누이’가 되는 것이다. 첫째 연이 누이가 자연을 통해서 느끼는 생활인의 마음을 표현했다면, 둘째 연은 화자는 누이에 대해 느끼는 인간적인 감동의 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또한 ‘오매, 단풍 들것네’라는 감탄은 첫 번째 것이 누이가 가을이 왔음을 알고 반가워하는 의미이라면, 두 번째 것은 누이가 가을로 인해 갖게 된 걱정스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며, 세 번째 것은 화자인 동생이 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작가소개]
김영랑(金永郞)
본명 : 김윤식(金允植)
1903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
1915년 강진보통학교 졸업
1917년 휘문의숙 입학
1919년 3.1운동 직후 6개월간 옥고
1920년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 입학
1922년 아오야마학원 영문과 진학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49년 공부처 출판국장
1950년 사망
시집 : 『영랑시집』(1935), 『영랑시선』(1949), 『영랑시선』(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