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 때는 무기나 농기구를 사용할 때 무엇을 많이 썼을까? 많은 이들은 청동기시대니까 청동을 많이 썼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청동은 매우 귀한 물품이자 무른 소재였다. 극히 소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데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니만큼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즉 당시에는 오히려 신석기보다는 잘 제련된 석기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마제석촉은 마제석검과 함께 한반도 청동기의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가 된다.
고고학자인 경주대학교 강봉원 교수님의 논문중 일부를 인용한다.
「중국의 각종 문헌에서는 위에서 제시한 읍루나 물길․말갈․숙신(肅愼) 등 족속들의 문화적
특성을 기술하면서 고시(楛矢)를 거론하고 그 주민들이 그것을 중국에 조공으로 바쳤다는 기록
이 보인다. 예를 들면,『魏書』와 『北史』에 물길이 북위(北魏)와 동위(東魏)에 조공한 기록이
보이는데 특히 북위시대 때 ‘勿吉貢楛矢’ 혹은 ‘勿吉獻楛矢’의 기사가 502, 507, 511, 512, 515년
조에 각각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고시(楛矢)가 이 지역의 특산물이었으며 중국 사람들이 애호하
였던 물품들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를 통해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물길과
같은 일부 족속들은 기원 후 6세기 까지도 석촉을 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생략).........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그리고 일본의 야요이 시대의 전반적인 고고학적 상황과 연계시켜 볼 때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돌화살촉도 무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독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청동기시대 주거지 혹은 지석묘와 석관묘에서 검출되는 화살촉에 아직도 독성분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향후 이 방면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혹시 발굴조사에서 검출되는 마제석촉에 잔존해 있는 독성분을 찾아낼 수 있다면 마제석촉의
기능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사회 및 문화 연구에 다소라도 기여하지 않을
까 생각된다. 」
청동기시대 이후의 기록이지만 문헌상에서도 읍루, 물길, 말갈, 숙신 등의 족속에 대한 기록에서 석촉을 사용하였고 심지어 독을 바른 석촉이 무기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自漢已來 夫餘責其租賦重 以黃初中叛之 夫餘數伐之 其人衆數少 所在山險 鄰國人畏其弓矢 卒
不能服也 (『三國志』「東夷傳」挹婁條).
(읍루는)한대 이래 부여에 복속되어 있었다. 부여가 세금과 부역을 무겁게 부과하자 황초
연간(A.D. 220-226)에 반란을 일으켰다. 부여가 수차례 이를 정벌하였으나 그 사람[읍루
인]들의 수가 비록 적지만 산이 험한 곳에 거주하며 이웃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활과 [독]화
살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삼국지』 동이전 읍루전
화살촉의 종류도 유경식, 무경식이 나눠져있다.
●무경식: 단면이 납작한 육각형이고 뿌리가 없고, 화살대와 부착하는 밑변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유경식: 단면이 마름모꼴로 뿌리와 촉신의 경계가 뚜렷하고 양쪽에 날개가 발달되어 있다.
대략 위와 같이 설명된다.
논문을 다시 보면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경주․포항 지역에서 발굴조사를 담당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대부분의 고고학 연구자들은 마제석촉과 석검들이 최소한 수렵용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한편, 경도(硬度)가 낮은 석재로 제작한 화살촉으로 두꺼운 가죽을 가지고 있는 호랑이, 멧돼지, 노루, 늑대, 사슴 등의 동물을 사냥하기가 용이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경도가 낮은 쉐일(shale) 등으로 제작된 석촉은 오히려 인명 살상용의 무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일본인 고고학 연구자도 경주부근에서 출토된 “마제석촉은 무기”(磨製石鏃は 武器)라고 규정하고 있다.32) 반면, 경도가 높은 석재로 제작한 화살촉
은 두꺼운 가죽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예를 들면, 호랑이, 멧돼지, 노루, 사슴 등)을 사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도가 낮은 석제로는 인명살상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것.
그리고 논문에서 해외 사례의 예시로 일본 야요이시대 인골과 미국 일리노이(Illinois)주 노리스 파-암(Norris Farm)에서 발견된 인골의 사례도 흥미로웠다.
인골에 석촉 등의 상해 흔적이 발견됨으로서 당시 인명살상으로도 쓰인 사례가 여럿 존재했다는 국외의 사례가 확인된다는것.
즉 여태 논문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정리하면
1. 초기 수렵, 농경, 무기제련 기술이 늘면서 화살은 수렵, 농경 이외에 전쟁에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2. 문헌적 기록에서는 한반도 주변의 읍루, 말갈 등의 족속들이 석촉을 사용한 기록이 확인된다.
3. 독시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높다.
4. 해외 유물에서도 석촉은 인명살상 무기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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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석촉은 약한게 장점이긴 합니다.
사람이 그 화살을 맞고 석촉이 부서졌을때 철촉이나 목재보다 빼내긴 어려우니까요.
언제나온 논문이져...
2013년 논문입니다. 관심가시나요?
@삼한일통 꽤 예전에 비슷한 내용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 최근에 나온건가 생각했습니다.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흑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