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찾은 보약⑳
“색다른 꽃과 향이 강한 당귀, 혈액순환에 좋아요”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제철에 맞는 음식을 한의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텃밭에서 찾은 보약’을 소개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권해진 원장은 텃밭에서 가꾼 식재료를 중심으로 한의약과의 연관성 및 건강관리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당연히 돌아온다는 ‘당귀’처럼 봄과 우리 일상도 돌아왔어요.
겨울은 지나가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혼란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3년 만에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올해는 더 희망에 부풉니다.
“올해는 뭐 새로운 거 좀 심어볼까?” 어머니가 매해 농사짓던 밭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당귀 심을까? 전에 한번 심었죠? 강의 준비하면서요. 그때 씨를 뿌렸는데.” “뿌리 먹으려고? 잎 먹으려고? 잎 먹을 거면 씨로 심어도 좋지.”
“전에 심었을 때 당귀꽃 사진도 못 찍어서 어떻게 자라는지 한 해 좀 지켜볼까 싶기도 해.”
“꽃 보려고 키운다고? 나쁘지 않다. 그래! 한 귀퉁이에 심자.”
◇ 꽃 모양이 우산 같은 산형과 작물, 당귀
먹을 것만 심는 텃밭은 재미가 없습니다. 민들레, 딸기꽃, 냉이꽃, 배추꽃, 무꽃, 도라지꽃 등 줄줄이 꽃이 피겠지만 올해는 좀 색다르게 생긴 꽃구경을 해볼 생각입니다. 당귀는 산형과(繖形科)식물입니다. ‘산(繖)’은 ‘우산 산’자를 씁니다. 비가 올 때 쓰는 우산(雨傘)의 한자 산(傘)과 산형과의 산(繖)자는 같은 의미로 쓰이지요.
학명으로 ‘Umbelliferae’와 ‘Apiaceae’ 두 가지가 모두 쓰이는데 꽃차례가 우산과 같다(umbrella-shaped)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 ‘Umbelliferae’입니다. 동서양인 모두의 눈에 당귀꽃 모양이 우산 모양으로 보이나 봅니다. 산형과는 꽃을 보면 식물의 소속과를 찾을 수 있습니다.
5년 전이었습니다. 보리출판사의 『개똥이네집』에 연재할 즈음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 책 잔치가 열렸습니다. 출판사 주최로 ‘오감만족 한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와 아이들이 한의학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치자로 손수건에 염색을 하고, 박하 약재 향을 코로 맡아보고 박하차도 마셨지요. 아이들이 집에 가서도 한의학에 대해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 당귀 모종을 화분에 하나씩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강의를 준비하면서 당귀 씨앗을 작은 화분에 심어서 키웠지요. 그리고 남은 씨앗은 밭에 뿌렸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아이들은 양손 가득 치자물이 든 손수건과 당귀 화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강의 반응이 좋아 매해 진행하기로 했었는데 어린이 책 잔치 행사 규모가 축소되고 그 다음 해에는 코로나로 행사가 취소되었지요.
◇ “한약이 왜 이리 맛있나요?”
쌍화탕에 들어간 당귀 때문이에요.
2021년에 『우리 동네 한의사』 책이 나오고 도서관과 교육지원청에서 강의 의뢰가 많이 들어 왔습니다. 기존 한의학 강의와는 다르게 하고 싶어 고민하다가 ‘쌍화탕’ 한약재를 만지면서 하는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쌍화탕(雙和湯) 이름처럼 서로서로 조화롭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마스크를 써야 했고, 인원 제한으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손으로 약재를 만지고 마스크 밖으로 향을 맡으려고 애쓰면서 수업을 들어주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마스크를 벗고 마실 수 없어서 ‘쌍화탕’ 관련 설명을 해드린 뒤 수업 시간에 달인 쌍화탕을 가실 때 머그컵에 담아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급한 수강생이 건물 밖에서 쌍화탕 맛을 보고는 교실로 다시 와서 “한약이 왜 이리 맛있나요?” 하시더군요. 탕약에 들어가는 약재에 대해 설명을 듣고 마셔서 그리 느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당귀는 쌍화탕 군약으로 착각할 정도로 향이 강해요.
쌍화탕에서 가장 중요한 약재(군(君)약 : 나라의 임금처럼 탕약에서 가장 중요한 약재를 뜻합니다)는 작약입니다. 그런데 강의를 할 때는 작약 약재에서 어떤 향도 나지 않아 수강자들은 그냥 꽃이 화려한 약재의 뿌리로만 여깁니다. 하지만 당귀향을 맡아보고 나면 모두 “아~~~ 한의원에서 나는 향이 이거군요.”라고 합니다.
산형과 약재에는 향이 강한 식물이 많습니다. 당귀는 잎도 씹으면 향이 강하지요. 뿌리에는 향을 내는 기름 성분이 많이 있어서 바짝 말린 당귀에도 그 특유의 향이 사라지지 않고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쌍화탕 군약이 당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당귀, 차로 마셔도 좋아요.
당귀는 혈(血) 생성을 돕고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많이 유통되는 당귀는 토당귀(참당귀)와 일당귀 두 가지로 한의원에서 모두 사용합니다. 보혈만을 생각할 때는 일당귀를 쓰고 순환이나 어혈 효과를 위해서는 토당귀를 사용합니다.
일당귀가 토당귀보다는 맛이 순해서 아이들 약에는 일당귀를 쓰는 편입니다. 쌍화탕에도 일당귀를 쓰면 맛이 달달하게 느껴집니다. 당귀를 차로 만들 때도 조금 더 맛이 좋은 일당귀가 토당귀보다 좋습니다.
◇ 토당귀 재배 성공을 기원하며 기쁨으로 봄을 맞이해요.
텃밭에서는 일당귀만 키워보았습니다. 일당귀는 씨앗으로 쉽게 구할 수 있고 발아도 꽤 잘되는 편입니다. 일당귀를 시중에서 잎당귀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마트에서 파는 쌈 채소 당귀잎은 일당귀의 잎이기 때문입니다.
토당귀는 중남부지방에서도 산지로 둘러싸인 곳에서 재배가 잘된다고 합니다. 산지에서 약재를 구해서 유통하시는 분에게 토당귀 모종을 부탁드렸는데 올해 텃밭에서 재배에 성공하면 꼭 그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지난 주 강의를 했습니다. 마스크를 벗어도 되어 약재 향기도 재대로 맡을 수 있었고, 박하차도 나누어 마시고 쌍화탕도 맛보며 이름 뜻처럼 서로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모두 코로나 이전이 그리웠고 이제 마땅히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번 봄은 당연히 오는 봄이 아닌 오래 기다려서 맞이하는 더 기쁜 봄입니다. 마땅히 돌아온다는 당귀(當歸) 이름처럼 코로나가 지나가고 봄이 왔으니 당귀를 심고 기뻐하는 한해 농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권해진 래소한의원장, <우리동네한의사>저자
출처 한의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