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3: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개역개정판)
어린 시절
맛있는 음식의 사진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어머니들이 자주 보시는 여성잡지의 부록으로
도시락 사진이 많이 나온 요리책이었는데,
어머님은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잘 먹이시려고 그 요리책과 씨름하셨고
이 못난 아들놈은 다른 책도 많은데
굳이 그 일본풍의 도시락 요리책을 들고 씨름했다.
자식이 떡을 달라 하지는 않았지만
도시락 책들고 그렇게 앉아 있으면
어떤 부모가 그걸 챙겨주지 않을지...
(요즘 젊은 부모들은... 잘 모르겠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셨지만
사진과 같은 비주얼의 도시락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기는 했다.
그리고 덕분에
안그래도 힘들었던 어머니를
더욱 힘들게 했다.
어찌되었건 간에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도시락 문화는 수준급이다.
맛보다는 멋이 더 있다고 해야할까?
그들말로 벤또(弁当)라 일컫는 도시락...
일식 도시락 자판기까지 있으니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철도 문화에 어울리게
도시락 문화도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면서도, 문화적 컨텐츠이다.
따끈한 도시락이 주는 것은
맛을 넘어서는 사랑과 정성이다.
일본의 도시락은 그 사랑과 정성을 넘어서는
무슨 장인의 혼 같은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도, 우리 주변에도 널려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음식에 대한 욕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먼 이야기다.
맛집에 줄을 서있는 것 자체가 흥미가 없는 일이었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던 적은 없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니 따라 가는 것에 불과했고
담백하고 흰 음식이 그나마 속이 편하니 두부류, 뭐 이런 것들 위주로 먹었다.
고기보다는 생선을 좋아하고
야식보다는 간식이 편했다.
술은 한 모금도 마신 적이 없다.
(욕은 바가지로 먹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자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바리새인의 긍지 같은 그런 율법주의...
술 마시는 사람들을 정죄할 위치에 있다는 것
뭐 그런 맛으로 살아온 사실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독주보다 더 심하게 갉아먹었을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하루 한 잔 커피를 무조건 마셔야된다는 뭐 그런 것도 없이
음식에 중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군 부대에 있으면서도
술담배에 물들지 않은 것은 감사한 일이다.
다른 이들처럼 김치를 찾은 적도 없다.
그렇다고 타코, 스테이크, 피자를 먹기 위해(또는 먹이기 위해) 무리한 적도 거의 없다.
그러나
단 것을 싫어해도 짠 것을 좋아하니 속이 늘 더부룩하고
과자는 안먹어도 과일을 많이 먹으니 살이 빠진 적은 별로 없다.
술은 안마셔도 음료수는 달고 사니 기가 찰 노릇이다.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 커피는 안마셔도 믹스커피 주는대로 받아마시는 건 2,3잔 넘게 마실 때도 있다.
건강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었으니
음식(량..)조절과 운동만 하면 되겠네...
많이 듣던 말이다.
도시락이 필요한 이유는
밖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나온 장르가 아니란 말이다.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일본인의 솜씨가 대단할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회식이 중요한(아니, 중요했던) 이유도
일이 고되기 때문이며
술로 그것을 잊으려 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일의 연장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사실은
먹고 사는게 제일 중요했겠지...
떡, 그놈의 떡
유대인들 말고도
떡이 제일 중요한 사람들은
극동에도 널려 있다.
음식은 재물의 연장이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생존과 연관되어 있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부요함과 관련되어 있다.
프랑스 왕실 인사들이
허구헌날 소화불량과 같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백성들 앞에서 먹방과 같은 공개식사를 해야했던 이유도
그렇게 함으로써 왕실의 부요함과 클래스를 드러내고자 함이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과도한 빚으로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재정 형편이었음에도 그러하다.
그리고 그 식단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전세계에 퍼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반면, 영국 왕실이 비교적 검소한 식단을 유지하면서도
비대할만큼이나 왕실 재정이 튼튼했던 것은
끼니를 굶는 아이들이 많았던 빅토리아 시대나 지금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 내가 먹는 음식은
맛있는 한끼가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높은 사람과의 식사 자리가 주는 상징적 의미와
그 식사 이후 우리가 얻어내야할 영업적 가치와
식사 전후로 모두가 고려해야 할 영양적 가치는
오병이어 사건 이후 떡만 바라보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수준 이상일까?
사순절이니까 고기도 안 먹고 (그전에 카니발로 많이 먹고)
금요일에는 고기 안 먹고 생선만 먹는 영적 전통은
금식을 밥먹듯 하여도 좀처럼 성장하지 않는 우리네 신앙 수준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는 말씀은 지켜야 하며,
내가 먹는 음식이 나의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또는 해가 될지)에 대한 고민은
성전된 우리 몸에 대한 마땅한 고민일지니...
오늘 저녁
먹고 싶은 음식 대신
먹어야할 것이 무엇인지
피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음식을 놓고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고민만 하면 속이 쓰릴테니
평강을 놓쳐서도 안될 일이다.
아, 참...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때 그 도시락 잡지...
도시락이나 음식보다는
뭔가 따뜻해 보이는 그 따스함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울을 녹이는 저 봄날의 햇살 같은 빛은
한낱 도시락에 불과한 그 음식들도 따뜻하게 비춰주니까...
그리고 그 빛은 주님으로부터 발광(發光)되지만
우리가 반사해야될 빛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