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제목을 보면 보통 어떤 이야기가 담길 것인지 짐작이 된다. 그러다 예상하지 않았던 내용의 시를 만나면 뜻밖의 설렘과 감동이 밀려온다. 유강희 시인의 〈묵찌빠〉도 그러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놀이 ‘묵찌빠’를 어린 나무가 겪는 계절의 변화와 연결하여 배치하니 완전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여름의 무성한 잎은 ‘묵’, 가을과 겨울에 잎을 털어내고 가지만 남은 모습은 ‘빠’, 그리고 다시 봄에 새순을 뾰족하게 내민 모습은 ‘찌’로 변주된다. 시상의 흐름이 여름→가을겨울→봄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러운 순환을 이룬다. 봄날 가지 끝에서 돋아난 뽀족한 찌가 다음 계절에 다시 묵직한 잎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기분 좋은 기대감을 안겨준다.
아침에 이 시를 읽고 필사하면서 눈에 들어온 구절은 “저 어린나무”였다. ‘묵찌빠’의 이미지는 큰 나무가 더 분명할텐데, 왜 시인은 어린나무를 택했을까? 시에서 말하는 ‘어린나무’는 자연의 나무이면서 동시에 ‘어린이’를 투영하는 대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계절을 거치며 키가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은 매일매일 자라는 어린이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미 완성된 큰 나무가 아니라, 계절의 순환을 거치며 계속해서 새로운 ‘찌’를 내놓고 성장해 나갈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동시를 읽고 공부한 지 어느 덧 6년째, 그러니 나도 아직은 ‘어린나무’다. 나에게도 묵찌빠의 계절이 찾아오길 바라고 또 바래본다.
첫댓글 묵찌빠 놀이가 그냥 있는게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