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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래 비전 제시 못한 ‘네오마르크스주의’에 종말을 고하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보수 성향의 대니얼 벨은 신좌파의 네오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비판하며 미국 사회의 지적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공적 지식인이었다.
어떤 시대든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공적 지식인’이 있기 마련이다. 전후 ‘팍스 아메리카나’가 공고화된 시대에 미국 사회를 대표하던 공적 지식인은 대니얼 벨(Daniel Bell·1919~2011)과 노엄 촘스키였다. 공적 지식인은 전문적 지식인과 사뭇 다르다. 전문적 지식인이 지식사회 안에서 학술 연구로 주목받는 이들이라면, 공적 지식인은 많은 시민들에게 지적이고 정치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이들이다. 미셸 푸코가 프랑스 사회에, 위르겐 하버마스가 독일 사회에 미친 영향에 필적할 정도로 벨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공적 지식인이었다.
진보 성향의 촘스키, 푸코, 하버마스와 달리 벨은 보수 성향의 지식인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트로츠키주의자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실용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을 드러냈다. 벨을 대중들에게 헤게모니를 행사한 공적 지식인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그의 주저들로 꼽히는 세 저작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1960), <탈산업사회의 도래>(1973),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1976)은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학·정보사회학·문화사회학 분야에도 결코 작지 않게 학문적으로 기여했다.
벨은 저널리스트로서 지적 경력을 시작했다. 잡지 ‘뉴 리더’ ‘포천’ 등의 편집을 담당하다가 교수가 되어 컬럼비아대학, 하버드대학 등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벨에 대한 높은 대중적 호응은 그의 지적 이력에서 비롯됐다.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그는 분명한 논리를 설득력 있는 문체로 전달했다. 그를 단숨에 유명하게 만든 <이데올로기의 종언>에 실린 논문들은 ‘코멘터리’ ‘엔카운터’ 등의 잡지에 게재된 글들이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신좌파 비판
<이데올로기의 종언>의 부제는 ‘1950년대 미국 정치 이념의 고갈에 대하여’다. 이 책은 3부로 이뤄져 있다. 제1부가 ‘미국: 이론의 모호성’이라면, 제2부는 ‘미국: 생활의 복합성’이며, 제3부는 ‘유토피아의 고갈’이다. 제1부와 제2부는 1950년대 미국 사회 변동의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측면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3부는 미국 사회주의의 좌절부터 서구에서 이데올로기의 종언까지를 조명한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벨이 처음 쓴 개념이 아니다.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제시된 것은 195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문화적 자유를 위한 회의’에서였다. 이 콘퍼런스에서 벨, 마이클 폴라니, 에드워드 실즈, 한나 아렌트, 존 갈브레이스, 시드니 후크 등은 프랑스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이 제안한 이데올로기의 종언 현상에 대해 다각적인 토론을 벌였다.
벨의 핵심적 테제는 19세기에 등장한 이데올로기의 혁명적 에너지의 소진이다. 그에 따르면 1950년대 혼합경제의 도래, 다원주의 정치의 부상, 복지국가의 대두, 과학기술의 발전 등은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는 사회 변혁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가져왔다. 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에 대해 벨은 두 가지 단서를 달았다. 첫째,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급진적 이데올로기의 퇴장을 뜻하는 것이지 일반 이데올로기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비서구사회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선 근대화나 민족주의와 같은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벨이 겨냥한 것은 1950년대 서구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신좌파의 네오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신좌파가 정열과 에너지는 갖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이들이라고 비난했다.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특징지은 대중사회의 도래, 계급갈등의 완화, 대외적 봉쇄 정책의 등장 등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 현상들이며, 이러한 복합 현실에 대해 신좌파의 문제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론 구성과 정치적 실천이 요청된다는 게 벨의 결론이었다.
■이념과 탈이념의 공존
이데올로기의 종언 테제는 곧바로 비판과 반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진보적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스는 이 테제가 현실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반면 보수적 정치학자 시모어 립셋은 정치사회 안에서 좌파와 우파 간 합의의 발전이 전통적 이데올로기를 쇠퇴시키고 있다고 주장해 벨의 견해를 지지했다. 서구뿐만 아니라 동구에서도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관찰된다는 벨의 주장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점차 유사해져 간다는 ‘수렴 이론’의 출발점을 제공하기도 했다.
문제는 현실의 변화였다.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발표한 후 역설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베트남전쟁으로 촉발된 반전운동에서 68혁명으로 시작된 신사회운동들에 이르기까지 서구사회에서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다. 서구 이념 구도는 좌파 대 우파의 기존 구도에 구좌파 대 신좌파, 구우파 대 신우파의 대립이 더해지면서 한층 복잡해졌다. 적어도 1970년대 후반까지는 이데올로기의 종언보다 내적 분화가 서구 현실에 가까운 진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후 70년을 통틀어 볼 때 이데올로기는 부침을 거듭해왔다. 벨이 주목한 195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두드러졌지만, 1960년대부터 이데올로기는 분화하면서 경쟁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를 경제 이념으로 전면에 내세운 신보수주의의 전성시대가 열렸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런 신보수주의에 맞서 신사회민주주의 기획인 ‘제3의 길’이 등장했다. 최근 주목할 현상은 이데올로기의 통섭이다. 보수가 진보 정책을 차용하고 진보가 보수 정책을 활용하는 탈이념의 경향이 21세기 현재 정치사회의 풍경을 이룬다. 정치 본래의 특징 중 하나가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있다면, 이념의 시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 서로 다른 대안들을 조정하고 합의하는 과정이라면, 기성 이념의 쇠퇴 역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판 저작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삼성문화재단, 범조사, 범우사에서 우리말로 옮겨져 나왔다. 이 책들은 원본의 일부 논문들을 빼고 번역한 것이다. 완역본은 아니지만 벨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참고로 벨의 또 다른 주저들인 <탈산업사회의 도래>와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역시 우리말로 옮겨져 있다.
대니얼 벨과 한국사회
벨의 사회이론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적어도 최근까지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탈산업사회의 도래가 선진국의 현상이었지 우리 사회 현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벨의 저작들이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 전후 서구 사회변동을 이해하는 필독서의 하나로 소개됐다. 1989년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직후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잠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더 큰 관심을 모은 것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테제였다. 1960년에 발표된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오래전의 분석이었던 반면, 후쿠야마의 테제는 1980년대 후반이라는 시점에서 사회주의의 몰락을 직접적으로 다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왼쪽)와 <역사의 종언>.
벨은 국내 인문사회과학자들이 관심을 두기엔 매력이 적은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 사회학자이자 보수적 성향의 지식인이었다. 게다가 대중적 지식인이어서 그의 저작들이 아카데미 사회과학 안에서 호응을 얻기 어려웠다. 벨이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사회이론은 환영받지 못했다. 예를 들어, 김우창·유종호·도정일 등이 편집한 <103인의 현대사상: 20세기를 움직인 사상의 모험가들>(1996)에서 앨빈 토플러와 같은 미래학자는 소개됐지만 벨은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벨이 국내 학자들의 관심 영역의 밖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였다.
21세기에 들어와 벨이 새롭게 주목받은 것은 그의 탈산업사회론 때문이었다. 벨의 <탈산업사회의 도래>는 정보사회의 등장을 예견한 저작이었다. 정보사회론을 대표하는 토플러의 <제3의 물결>과 마누엘 카스텔의 <정보 시대> 3부작도 탈산업사회의 대두라는 벨의 문제의식으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이론적 지식, 전문적 연구자, 서비스 부문의 부상으로 특징지어지는 탈산업사회에서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진다는 벨의 선구적인 미래 예측은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탈산업사회의 도래>가 출간된 지 30여년이 지난 2006년에 뒤늦게 우리말로 옮겨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