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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요리는 오랫동안 선택사항이었다. 더 정확히는 "예술" 같은 거였다. 어느 날 갑자기 에너지가 넘쳐서 뭔가를 만들고 싶은데 종이접기나 '색칠'처럼 아기자기한 것은 무용한 것 아니라 실용적인 것을 만들고 싶고, 그렇다고 거창한 목공 같은 건 엄두가 안 날 때 요리는 딱 적당히 나의 예술혼을 불태워줬다. 나의 예술은 대중성을 외면한 순수 예술, 독립 예술이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아닌 다양한 맛의 스펙트럼을 용인할 수 있는 나의 혀만 대충 만족시켜 주면 되었다. 맛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행위 예술에도 가까웠다.
자취를 3년씩이나 했지만, 나의 요리는 항상 대중성과는 꽤 먼 거리를 유지했다. 대부분 나의 끼니는 가성비가 좋은 한식뷔페, 어쩌다가 선심 쓰듯 나에게 주는 선물인 수제 버거, 나를 위로해 준 국밥 또는 족발에 소주 등이 해결해 주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소득은 지금보다 적었지만, 가처분 소득이 지금보다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생활이었다. 끼니가 해결되었으니, 요리는 가끔, 열정이 불타오를 때만 하는 행위가 되었다. 나의 요리 실력은 경험치가 쌓이지 않았고, 내가 한 음식은 버리기 아까운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 가끔가다 운이 좋게 다시다가 황금비율로 녹아들었을 때는 꽤 맛있게 되기도 했다. 그때 만들었던 떡볶이와 된장찌개는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맛있었다. 그 정도에도 만족했다.
그런데, 나의 순수 예술은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대중 예술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바로, 결혼. 결혼하니 적어진 용돈에 바짝 졸라맨 생활비는 나를 요리로 내몰았다. 나의 요리를 맛본 아내는 실망했다. 이것이 정녕 3년을 자취한 사람이 만든 음식인가라는 듯. 실망은 슬금슬금 몸집을 키워 분노가 되었다.
언제였던가 내가 한강 라면(한강에서 먹는 라면이 아니라 라면 물이 한강….)을 두 번째로 끓였던 날이었던가. 지금은 1인분에 물 500ml씩만 넣으면 된다는 걸 아는데, 예전에는 1인분 라면만 끓이다가 2인분 라면을 끓이니 물 조절이 어려웠다. 아무튼, 어느 시점에 아내는 나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분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쏟아졌다. "다 먹어, 오빠가 한 거잖아"
내가 군대에 복무할 시절에는 아직 부조리가 잔재했다. 그것 중의 하나가 식고문이다. 식고문은 신병에게 PX(군대 매점)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계속 고르라고 시킨 뒤, 고른 음식을 사주는 대신 배가 터지도록 먹게 하는 행위다. 운 좋게 식고문을 당하진 않았고, 누군가의 식고문을 본 적만 있다. 그런 식고문을 이제서야 당하다니, 심지어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으로.
난 미움 받을 용기가 웬만한 사람보다 많다. 그러나, 아내에게 미움받을 용기만은 없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대중 예술의 길을 걷기로.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잘할 자신이 없으므로 일단 한 가지 요리부터 마스터하기로 했다. 아내의 조언을 들어 파스타 중에 가장 간단한 '알리오 올리오'로 정했다.
하나의 음식을 마스터하는 과정은 뭉툭한 새 연필을 뾰족하게 깎는 것과 같다. 한 번 요리할 때마다 연필을 칼로 한번 쓱 깎아내리는 것이다. 시행착오가 계속되고 바닥에는 연필밥이 쌓인다. 반복에 반복을 거쳐서 꾸중과 혹평을 듣고 나의 '알리오 올리오'는 꽤 날카로운 연필처럼 쓸만한 상태가 되었다. 아내로부터 합격점을 맞았다.
그러나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그래봤자 고작 두 사람을 만족시킬 음식에 불과했다. 대중성을 시험해 봐야 했다. 그리 머지않아 기회가 왔다. 신혼부부인 우리는 집들이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음식은 배달 음식으로 조달했고, 알리오 올리오만 내가 직접 만들어 손님께 제공했다. 반응은 로맨틱하진 않지만 성공적이었다. 손님 중 한 분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극찬했으며, 나중에 듣기로 또 다른 손님은 알리오 올리오에 맛을 들여 가족들에게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방심할 수 없다. 예의상 한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집들이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만나거나 독서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확실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사내 놈(친구)들과의 집들이에서 동일한 작전으로 접근했다. 이번에도 대부분의 음식은 배달 음식, 알리오 올리오만 내가 요리했다. 녀석들은 집에 오기 전부터 야지를 주었다. "잘 만들고 있냐, 나 입맛 까다로운 거 알지" "오기나 해라, 본때를 보여주마!" 이윽고 녀석들은 도착했고, 자리에 앉자, 잔뜩 욕할 생각에 신난 표정으로 알리오 올리오를 퍼갔다. 나는 숨죽이며, 녀석들이 한입 먹는 순간을 지켜봤다. 녀석들은 실망하고, 만족했다. 욕을 할 수 없어 실망했고, 의외의 맛에 입이 만족했다. 욕하고 싶지만, 욕할 수가 없는 맛이라고 평했다. 오히려 내가 녀석들의 기를 죽여줬다. "봤냐(see that)" 사내 놈들 입맛까지 사로잡았다면 나의 알리오 올리오는 진정한 대중 예술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첫 집들이 손님 중 한 분이 비법을 물었다. 어떻게 요리 실력이 늘 수 있었느냐고. 나의 대답은 이랬다. "이소룡이 말했습니다. 천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사람은 두렵지 않지만,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또는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두렵다고요. 제 알리오 올리오는 천 번 차 본 발차기입니다"
이제 새로운 발차기를 연습할 때이다. 마침, 작년에 담근 김장김치가 많이 남아서 김치찌개를 연마하려고 한다. 며칠 전에 김치찌개를 했는데, 한강 김치찌개가 되었다. 순수 예술이었다.
고맙게도 아내가 A/S를 해주었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식고문은 없었다. 성장한 나를 보더니 많이 너그러워진 모양이다. 언젠가 나의 김치찌개도 대중예술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발차기를 해야 한다.
https://blog.naver.com/findependencekim/224396504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