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9년 Kumi Ueki의 블로그에 실린 깔리또스 뻬레스와의 서면 인터뷰를 제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한국어 번역과 공유를 흔쾌히 허락해주신 Kumi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원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s://inheritingthetango.blogspot.com/2009/12/interview-four-carlos-and-rosa-perez.html?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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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CARLOS PEREZ:
저는 1952년에 춤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보다 10~15세 많은, 유명한 밀롱게로들과 함께 연습하며 주로 배웠습니다. 이후,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수많은 오래된 동네 클럽에서 춤을 추곤 했습니다. 그곳은 땅고 음악이 중심이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땅고를 선택하던 시대였습니다.
로사는 몇 년 후에 집에서 오빠들과 연습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오빠들이 그녀를 토요일 밤 춤을 추러 데리고 나갔습니다. 우리는 1964년경 결혼하면서 춤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땅고를 직업으로 삼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게 보이지 않았기에, 가정을 이루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기로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춤을 출 만한 장소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만이 찾는 곳들이었습니다. 젊은 층은 주로 재즈, 아메리칸 부기(스윙댄스)를 추거나 탭댄스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스윙댄스 스타일이 등장했는데, 그렇게 인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록앤롤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 록앤롤은 아르헨티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열풍을 일으켰고, 오늘날에도 아르헨티나에서 여전히 춤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1994년에 다시 전문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가족 모임 같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춤을 추며 이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게 땅고 첫걸음을 가르쳐 준 호세 "람빠소" 바스케스(Jose "Lampazo" Vazquez)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훌륭한 댄서이자 스승이었으며, 제 어린 시절의 이웃이었기에 저희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 만남을 계기로 "신 룸보(Sin Rumbo)" 클럽이 탄생했고, 저와 그 스승과의 관계는 언제나 따뜻했습니다.
그 후 그의 제안으로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호세가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우리에게 그의 수업을 대신 맡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땅고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저희는 훌륭한 댄서이자 친구였던 호세 "람빠소"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클럽의 이사회 요청으로 "비샤 우르끼사(Villa Urquiza)"의 "순더랜드(Sunderland)"에서 그가 맡고 있던 수업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땅고 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땅고의 전통적인 뿌리를 유지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30년 가까이 춤을 추지 않았던 덕에, 그 기간 동안 밀롱가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동작은 1950년대 스타일에 충실했으며, 이는 젊은이들, 그리고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매력을 주어 열정적으로 더 많은 수업을 요청받았습니다.
-로사와 함께 춤을 춘 지 얼마나 되었나요?
우리 인생 전체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함께 인생과 땅고를 공유해 왔습니다. 우리는 1950년대 땅고와 함께하며, 그 시절의 열정과 행복을 우리의 젊음과 함께 경험했습니다.
옛날 밀롱게로들은 땅고에서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땅고로 여행을 다니는 일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사랑해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서로를 연결하기 위해 땅고를 추었습니다. 춤은 여성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잘 추기 위해 노력하고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땅고 덕분에 처음으로 여행을 간 곳은 파리였습니다. 두 달 동안 수업을 진행했으며, 이후 수많은 여행과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파리의 샬리오 극장, 로마의 파르코 델라 무지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 도쿄의 극장 등에서 공연했습니다. 또한, 몇 편의 영화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습니다.
저의 선배들에게 들은 바로는 땅고의 전성기는 1940년대와 50년대였다고 합니다. 1940년대에는 당시 위대한 밀롱게로였던 페트롤레오와 엘 네그로 만시니가 턴(회전) 동작을 만들어 냈으며, 이 시기는 "깐젠게" 시대라고도 불립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땅고는 점점 더 섬세하고 우아하게 발전했습니다. 살론 스타일 땅고에서는 우아함에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우리는 주로 집에서 파티를 열거나 동네 클럽에서 춤을 추었습니다(꼬르떼나 께브라다 없이 아주 예의 바르게 췄습니다). 클럽은 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열렸으며, 동네 소녀들은 항상 어머니나 오빠와 동행해야 했습니다. 혼자 오는 것은 좋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반면, 다른 종류의 춤장도 있었는데, 그곳에는 밤의 남녀와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모이곤 했습니다.
제가 춤추던 시절인 1950년대에는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디 살리, 다리엔소, 뿌글리에세, 까나로, 뜨로일로, 깔로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있었습니다. 땅고가 가장 활발하던 동네는 사베드라, 우르끼사, 비샤 푸에이레돈, 비샤 데보토, 비샤 레알, 빠테르날, 비샤 미트레 등이 있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지역에서는훨씬 더 빠르고 경쾌한 스타일로 춤을 추었는데, 이를 "땅고 오리제로(Tango Orillero)"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댄스홀들과 "50년대 스타일"로 춤추던 댄서들입니다. (혹시 누군가를 빠뜨렸다면 용서해 주세요.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 몇 가지가 기억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 살론 아구스테오, 오로와 산타페에 위치한 엘 빨레르모, 라 아르헨티나, 우르끼사의 알룸니, 신 룸보, 비엔또 노르떼, 비샤 데보토의 에스뚜디안떼스, 모란, 글로리아스 아르헨티나스, 플로레스타 주니어, 라 에밀리아나, 미트레, 순더랜드, 피노초, 17 데 악뚜브레, 칼리포니아, 뻬나초 아술, 후벤뚜 데 벨그라노, 엑스꾸르시오니스타, 차까리타 주니어스, 비샤 사오레스 등등.
: 꼭 언급해야 하는 밀롱게로들은 호세 바스케스 "람빠소", 오스발도 모시 "엘 네네", 밍고 카노니고, 헤라르도 뽀르딸레아, 에두아르도 빠레하, 마이타, 가셰고 비샤라소, 프라스키토, 페트롤레오, 엘 호로바도 빅토르, 네그로 루이스, 토마스 루이스, 루이스 레모스 "밀롱기따", 후안 까를로스 꼬페스, 로헬리오 "엘 티오" 등등 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네 최고의 댄서들과 맞먹는 훌륭한 댄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1950년대 땅고는 청춘의 즐거움 중 하나였고, 여성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춤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노래 가사는 우리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었고, 가로등, 자갈길, 어머니에 대한 사랑, 여성에 대한 사랑, 시간 속에 잊혀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표현했습니다.
그 당시 땅고 춤은 모두 땅고의 코드를 존중했습니다. 위대한 밀롱게로들이 아니더라도 모두 춤의 흐름(Line of dance)을 따랐습니다. 동시에 대부분이 음악을 비슷한 비판적 시각으로 들었고, 플로어가 꽉 차 있어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서로 부딪히는 커플은 거의 없었으며, 이는 실제로 매우 좋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땅고가 가장 침체되었던 시기는 1960년대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춤을 출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장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현재의 땅고는 제가 보기에는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대중적인 춤의 영향을 받아 현대적인 발레 동작이나 다른 춤에서 온 요소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중에 어떤 것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것은 땅고의 본질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이 변한다는 것과 젊은이들이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하겠죠. 그것은 괜찮은 일입니다.
땅고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땅고는 아프리카 계통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으며, 깐돔베, 밀롱곤, 밀롱가, 땅고 오리제로, 깐젠게, 살론 스타일을 거쳐 1950년대의 판타지아 땅고까지 왔으며, 이는 스테이지 땅고의 시작이었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땅고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땅고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서로를 포옹하며, 과거로 돌아가 멜로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땅고를 통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만나고, 전통 땅고를 젊은 세대와 나눌 수 있으며,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땅고는 우리를 활기차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학생들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고, 그들이 땅고와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춤에는 우리 가르침이 조금씩 담겨 있고, 이는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누군가 땅고 춤을 잘 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면, 저는 그 뿌리를 배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댄서일 수는 있지만 좋은 땅고 댄서는 되지 못합니다. 땅고 음악 위에서 다른 춤을 추는 것에 불과해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땅고 댄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음악과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꾸준함, 헌신, 그리고 땅고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에게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속담을 기억해야 합니다. "Lo que natura no da, Salamanca no presta." 이는 "자연이 주지 않은 것은, 살라만카도 빌려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재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이는 인생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Carlos y Rosa Per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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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리또스 뻬레스 헌정 밀롱가
✔ 2025년 1월 24일 금요일 8시~익일 1시
✔ 라벤따나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48 2층)
✔ Live DJing from Buenos Aires🇦🇷
: 🎧 DJ Luis Paillalef
✔ 스페셜 공연 : 태양 & 쏠 (Tony & Sol)
✔ 친구들과 함께 테이블을 예약하세요!
📌 조금 더 많은 분들이 깔리또스를 만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장료는 평소와 같은 13000원입니다. 행사가 열릴 수 있도록 뜻을 함께해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여러분들을 기다립니다!
📲 테이블 예약은 페이스북 메세지 Suri Bae 또는 010-4129-1718로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