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으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린다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유다교의 옛 관습에 주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루카 5,37-38).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낡은 가르침으로 나를 판단하려 드는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신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율법에 따라 단식하지만,
당신의 제자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요한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단식만이 아니라 믿음의 ‘모든 것’에서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행동입니다.
낡은 부대는 새 포도주의 ‘가스’를 견디지 못해 터져 버립니다.
삶이 바뀌지 않으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늘 ‘새로운 포도주’입니다.
언제까지 낡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지요?
예수님께서는 단식보다 단식의 ‘동기’를 중히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단식은 절제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어찌 단식뿐이겠습니까?
모든 것에서 원인을 알면 행동은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절제하면 어떤 것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절제는 힘입니다. 자신을 붙잡아 주는 힘입니다.
과도한 분노에서, 탐욕에서, 이기심에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힘입니다.
단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들어 봅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을 늘 새로운 마음으로 맞아야 합니다.
늘 뻔한 강론, 늘 뻔한 미사,
늘 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사실 교만한 자세입니다.
아무리 똑같은 것을 반복하여 경험한다고 해도,
어제 경험한 것과는 또 다른 것을 오늘 새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늘 새롭게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