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 영 [金 洙 映]
고 김수영 시인의 시 ‘아침의 유혹’이 새로 발굴됐다. 이 시는 6·25전쟁 직전에 쓰인 것으로 후기의 현실참여적·사실적
경향과 달리 모더니즘 경향이 강했던 고인의 초기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영은 이 시를
포함, 총 176편을 남겼는데 6·25 이전의 시는 9편에 불과하다.
1981년 ‘김수영전집’(시·산문 2권)을 처음 발간했던 민음사는 최근 개정판 작업도중 ‘자유신문’ 49년 4월1일자 2면
좌층 중앙단에 게재된 ‘아침의 유혹’을 찾아냈다고 2일 밝혔다. 이 시는 전집발간에 참여했던 고인의 여동생 김수명씨의
작업노트에 있는 메모를 근거로 국회도서관·국사편찬위원회 등의 영인본과 마이크로필름을 통해 확인됐다.
오는 5일 발간 예정인 ‘김수영전집’ 개정판에는 ‘아침의 유혹’ 이외 지난해 발굴된 시 ‘판문점의 감성’과 산문
17편이 추가됐다.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아침의 유혹’-
나는 발가벗은 아내의 목을 끌어안았다
산림과 시간이 오는 것이다
서울역에는 화환이 처음 생기고
나는 추수하고 돌아오는 백부를 기다렸다
그래 도무지 모-두가 미칠 것만 같았다.
무지무지한 갱부는 나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것은 천자문이 되는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스푼과 성냥을 들고 여관에서 나는 나왔다
물 속 모래알처럼
소박한 습성은 나의 아내의 밑소리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교과서에도 질투의 ○○(판독불가능)은 무수하다
먼 시간을 두고 물 속을 흘러온 흰 모래처럼 그들은 온다
U·N위원단이 매일 오는 것이다
화환이 화환이 서울역에서 날아온다
모자 쓴 청년이여 유혹이여
아침의 유혹이여
40주기 고 김수영시인 미발표詩 공개
"정말 내 이름을 부르지 마시고/ 나를 찾지 마세요// 모-든 작의(作意)와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는 속에 나는 삽니다//
나의 허탈하고 황막한 생활에도 한 떨기 꽃이 있다면/어머니/나에게도 정말 꽃이 있습니까…."
'풀'의 시인 김수영(1921~68)이 1954년 11월27일에 쓴, 미 발표시 '꽃'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의 만 33세 생일날 쓴
우울한 일기의 끝부분에 실려 있는 이 시는 생계를 위한 신문사 취직과 어머니의 턱없는 기대 때문에 우울해진
시인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시에서 시인은 '꽃'으로 상징되는 자존심과 이를 부단히 훼손하는 '허탈하고 황막한 생활'
사이의 갈등을 풀어냈다.
'꽃'을 포함한 김수영 시인의 미 발표시 15편과 일기 30여편(오른쪽), 번역 원고와 번역을 위한 영시 필사본 등을 9일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서 공개, 그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까지 김수영의 시 한두 편이 발굴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많은 시가 한꺼번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일대
'문학적 사건'이다. 이 축복과 같은 사건은 김수영 추모사업회 준비위원회가 오는 6월16일 김수영 40주기를 맞아
김수영 문학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부인 김현경씨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택에 보관 중이던 무더기 원고를 발굴
하면서 이뤄졌다.
유고 더미는 시인의 첫 시집 '달나라 장난'(1959년)의 편집 원고 일체와 원고지에 청서된 여러 편의 시와 산문들, 각종
봉투와 광고지, 엽서, 심지어는 시멘트 포대 종이 등에 씌어진 시와 산문의 초고, 1954년 1월쯤에서 1961년 5월14일
사이에 작성된 메모장 및 국반판 정도 크기의 공책 10여권들이었다.
이들 원고를 정리한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이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김수영 시와 사유가 날것 그대로
소용돌이치는 가히 김수영 문학의 진본이라고 해도 좋을 귀중한 문학사적 자료들"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너와 나 사이에 흐르는 역사를 그냥 두어라/너와 나만의 사이에 흐르는 물이라고 해서/그리 좁은 것은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시 '哀와 樂'은 가혹한 역사 속에서도 사랑과 내일을 기약하는 시인의 비극적 낙관을 드러내고,
'삶이 끝나는 곳에서 사는 나는/아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일에 습관이 된 나머지/이러한 짓을 하고 있는가/
탁구를 친다/생활이랑 모두 내가 용춤을 추고 있는 마루 바닥 밑으로나 가려무나'라는 시 '탁구'는 삶의 비극적
속도와 구원의 의미를 성찰하는 시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한편 일기에는 미발표 시, 미완성 습작 소설, 소설 구상 메모와 개요, 독서이력을 짐작게 하는 인용문과 독후감뿐
아니라 시인의 사유와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진술들이 실려 있다. 이날 공개된 일기는 이번 발굴분의 약 80%로
나머지 원고들은 출판사 측이 정리하고 있다. 미발표시 15편과 일기를 포함한 그의 미발표 원고는 곧 출간될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게재된다.
<문화일보 최현미기자>
꽃
정말 내 이름을 부르지 마시고 나를 찾지 마세요 모-든 작의(作意)와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는 속에 나는 삽니다 나의 허탈하고 황막한 생활에도 한 떨기 꽃이 있다면 어머니 나에게도 정말 꽃이 있습니까 손을 대어서는 아니되는 꽃 결코 아무나 손을 대어서는 아니되는 이 꽃 확실한 현실이여 내가 대결하고 있는 것은 나의 그림자 인생의 해탈을 하지 못하고도 맑게만 살려는 데에 나의 오해와 비극과 희극과 타락 이상의 질식이 있습니다 꽃 아닌 꽃이여 잔혹한 진행이여 벌써 나의 고장이 없어진 지 오래인 내가 다시 내 고장을 찾아야 할 때 나의 이성(理性)은 나의 피부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름을 버리고 몸을 떠난 지 오래인 나의 흔적을 다시는 찾지 마세요 이즈러진 진리여, 어머니시여.
(195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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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 5. 29>
공자의 생활난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1945>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라라의 장난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년전의 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1953>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사령(死靈)
…… 활자(活字)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郊外)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楕)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1957>
그 방을 생각하며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殘滓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1960. 10. 30>
거대한 뿌리
나는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南쪽 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팔·일오 후에 김병욱이란 詩人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사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일팔구삼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궁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는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입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삼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지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시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1964. 2. 3>
병풍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 등지고 있는 얼굴이여 주검에 취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 병풍은 무엇을 향(向)하여서도 무관심하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龍)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는 병풍은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 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詩人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 15>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1965. 11. 4>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1954. 10. 5>
사랑의 변주곡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삼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사·일구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면상이 아닐 거다
<1967. 2. 15>
꽃 잎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1967. 5. 2>
기 도 -사일구순국학도위령제에 부치는 노래
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革命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革命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괭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쟝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 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 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革命이 성취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罪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罪라는 罪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詩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革命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1960. 5. 18>
김수영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시대를 대면하며 실천할 수 있는 정직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그 정직으로 날카롭게 벼려진 시들의 아름다움이 진정 새로웠다는 점에서 그는 알짜 모더니스트였다.
김수영(金洙暎 1921 ~ 1968)
1. 출생 및 성장 1921.11.27 서울 관철동 출생. 선린상고 졸업.1941년 도쿄상대(東京商大) 전문부 입학. 1943년 학병징집을 피해 귀국. 1944년 가족과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 길림 제육고에서 교편생활. 광복후 귀국. 서울에서 통역 일을 하다, 연희대(延禧大) 영문과 4년에 편입(1945)했으나 중퇴. 1968. 6.16 교통사고로 사망.
2. 활동 및 작품경향 1945년 [예술부락]에 시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 1949년 김경린(金璟麟), 박인환(朴寅煥) 등과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
모더니스트로 각광 받음. 1950년 6.25 발발 후 피난을 못한채 북한군에 징집, 포로가 되었다, 1952년 거제도 수용소에서 석방 됨. 1954년 주간 태평양, 평화신문에서 근무, 1955년 이후 자택서 양계(養鷄)업을 하며 시작(詩作), 번역, 평론에 전념. 1950년대 : 소시민적 비애와 슬픔을 모더니즘적인 감각으로 노래. 대표작 : <헬리콥터>, <폭포>, <눈>등. 1959년
그간의 발표작을 모은 시집 <달나라의 장난> 간행 및 제1회 시협(詩協)상 수상
4.19혁명 : 시의 전환점을 이루는 시기. 현실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표현한 참여시를 쓰기 시작. 대표작 :
<하……그림자가 없다>, <육법전서(六法全書)와 혁명>, <푸른 하늘을> 등. 혁명과 사회변화,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열망을 드러냄. 그는 지속적으로 사랑과 자유를 주제로 하는데, 자유는 그의 시적, 정치적 이상이고,
사랑은 그 자유의 실현을 억압하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인식론적인 사랑이다.
5.16 이후 : 군사정권 득세 이후, 자유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적(敵)'에 대한 증오와 그 적을 수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연민, 탄식, 풍자 등을 작품화. 대표작 : <그 방을 생각하며>, <적> 등. 이후 그는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노래한 <거대한 뿌리>, <현대식 교량>, <사랑의 변주곡>등을 썼고, <풀>은 1970년대 민중시의 길을
열어놓은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 그 외 <시여, 침을 뱉어라>등의 평론을 통해 참여시와 시의 현대성을 주장.
사후 <거대한 뿌리>(1974), <시여, 침을 뱉어라>(1975)를 비롯, 몇 권의 시선집과 산문집 발행. 1981년 민음사에서
두 권의 <김수영전집>이 간행 됨.
[작가 이야기]
현실의 장벽을 향해 던지는 칼빛 언어, 자유의지
김수영은 '자유'의 시인이다.
그는 돌에서 피를 뽑아 낼 정도의 치열한 자유의지로 우리 근대사의 뼈아픈 역사와 삶의 생채기를 온몸으로 껴안은
시인이다. 따라서 자유란 테마는 그의 시세계 전체를 관통하며 끈질긴 탐구의 대상을 이룬다. 이런 자유의 정신으로
벼려진 칼빛 언어에는 시적 진정성을 구현하기 위한 김수영의 혹독한 자기 수련(修鍊)이 아로새겨져 있다.
결코 현실의 장벽에 굴복하지 않는 도저한 자유의지는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로 그려지곤 한다.
"물 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아슬아슬하게/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바뀌어진 지평선'). 삶의 자유로운
비상을 억압하는 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돌, 무엇을 치어 받으려고 그토록 가열하게 날아가는가. 세상에
배를 밀착하고 날아가는 강인한 정신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듯, 그가 말하는 자유란 현실의 한계를 단박에 뛰어넘어는
'초월(超越)'의 희열이 아니다. 현실의 아픔과 상처, 갈등과 고통 위를 온몸으로 밀며 나가는 기어넘기,
즉 '포월(匍越)'이자 그 생채기를 안고넘는 '포월(抱越)'의 산고일 따름이다.
그러기에 자유, 그 반역의 정신은 좌절의 쓴맛과 직결된다.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자유//
―비애"('헬리콥터'). 헬리콥터는 곤고한 지상과 결별하며 이륙할 수 있는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이나,
종래에는 어딘가 착륙할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비애가 병존한다. 이런 시적 모반의 정신이 극단에 이르면 그의
시는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며 혁명을 꿈꾼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반항의 정신이 돛을 올리는 순간이다. 4·19 혁명 직전에 발표한 '하……그림자가 없다'와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가 그 대표적인 시라 하겠다. 그의 이러한 문학 정신은 소위 말하는 '반시론(反詩論)'
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전복을 꿈꾸는 모든 전위 문학은 긍정이 아닌 부정의 정신을
근간으로 해야만 한다는 그의 헌걸찬 주장은 '지금 여기'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이여! 일상의 안일과
나태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그대들이여! 지금 어떤 모반의 전략을 꿈꾸고 있는가? 도대체 꿈꿀 수 있기는 한가?
(류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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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들이 다시 쓴 김수영론 <살아있는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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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필(geulter)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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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에서 김수영의 존재는 무엇일까? 우리의 곁에 실존했던 '김수영'이란 한 인물의 활발한 창작기는 1960년대였다. 그가 살아있던 시대는 분명 1960년대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그가 세상을 등진 지도 30여 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시대는 '살아있는 김수영'의 시대다.
그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후 세상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 그의 전집과 평전이 간행되었고 1980년대에는 그의 이름을 내건 '김수영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후 한 차례 진지한 반성을 통해 그의 문학은 제자리를 찾았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많은 연구자들과 평론가들이 30여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그에 관한 논문과 평론들을 썼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은 살아있는, 그리고 도전받는 시인이다.
한 문학평론가가 "우리에게 본격적인 김수영학(學)이 시작될 필요가 있지는 않은가?"하고 반문한 것처럼 <살아있는 김수영>이란 책은 김수영학의 작은 출발을 의미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집필한 것은 아니나 이 책에 실린 열 다섯 편의 글들은 '1990년대 이후 김수영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하는 주제에 대한 현장 비평의 증거다.
총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김수영에 관한 4개의 작품론들로 엮어졌다. 정남영 교수의 <바꾸는 일, 바뀌는 일 그리고 김수영의 시>를 통해 김수영의 시를 새로움의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강연호 교수의 <'위대한 소재'와 사랑의 발견>은 김수영 시에서의 산문정신의 확대에 주목하고 김수영 시를 사랑의 발견과 확인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박수연 교수의 <국가, 개인, 설움, 속도>는 1950년대 김수영 시를 개인-국가라는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임홍배 교수의 <자유의 이행을 위한 시적 여행>은 4·19 이후의 김수영의 시를 자유, 역사, 사랑 등 몇몇 개념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의 산물이다.
2부는 '김수영의 시론과 산문'으로 엮어졌다. 황현산 교수의 <시의 몫, 몸의 몫>은 김수영의 시와 산문에 대한 꼼꼼한 분석을 통해 '경험과 육체를 통한 사물의 양태와 그 추이의 확인'이 김수영의 진정한 독창성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유성호 교수의 <김수영의 문학비평>은 김수영이 비평이 언어를 매개로 하는 현실과 현대성의 결합을 추구한 점에 주목한다. 김명인 문학평론가의 <급진적 자유주의의 산문적 실천>은 김수영의 산문을, 시적 실천에 견고한 삶의 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파악한다. 또, 김수영의 창작을 1960년대의 후진성에 대한 비판과 급진적 자유주의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3부는 '문학사적 의의'에 대한 다섯 편의 논의다. 김재용 교수의 <김수영 문학과 분단극복의 현재성>은 김수영이 민족문제 인식과 세계적 차원에서의 근대성 인식을 통일적으로 지니고 있었다고 본다. 남진우 교수의 <김수영 시의 시간의식>은 미래의 궁극적 순간을 향한 쉼없는 운동 속에 자리잡은 김수영의 시의 시간의식에 대한 탐구이다.
최하림 시인의 <김수영의 개인사의 문제들과 검토>는 일본 유학시절에서 포로수용소 시절까지 김수영 생의 단절과 서구시의 영향 등 전기적인 검토이다. 김규동 시인의 <소설 김수영>은 해방직후에서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김수영 시인의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들을 복원해내고 있다.
4부는 '김수영과 그 영향관계'로 엮어졌다. 한기 교수의 <박인환과 김수영, 문학사적 짝패의 초기 동행여정>은 김수영에게서 박인환이란 인물에 대한 대타자의식이 어떠한 시적 성취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해명이다. 조현일 교수의 <김수영의 모더니티관과 파르티잔 리뷰>는 김수영의 영미 혹은 일본 모더니즘시단으로부터의 영향의 급진적 현대성의 추구라는 김수영 시의 핵심을 형성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평론가 박지영의 <번역과 김수영의 문학>은 김수영에게 번역이 현대성의 전범으로 설정된 서구이론을 받아들이는 창구이자 시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형성하고 정당화해주는 거울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유중하 교수의 <하나에서 둘로>는 신동엽 시인과 황동규 시인을 김수영의 문학적 적자로 파악하고 이들 각각의 성취와 한계에서 김수영 시인의 문학사적 지위를 파악한다.
부조리와 모순의 시대였던 1960년대 순수 참여논쟁의 정점에 서서 김수영 시인은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직도 우리의 '몸'을 둘러싼 사회는 우리를 갈증나게 한다. 그의 '언어'가 그립다, 그의 '몸'이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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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7 오후 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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