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11: 11. 세례 요한보다 큰 이 12. 침노하는 자는 빼았느니라
마 11: 11. 세례 요한보다 큰 이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
또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요한은 아직 구약교회에 속해 있었다. 본문의 ‘천국’은 신약교회를 가리킨다고 본다. 신약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의 모임이다.
신약교회 교인들은 세례 요한보다 메시아에 대해 더 나은 지식과 굳건한 믿음을 가질 것이다.
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마태에 의해 독특하게 기록된 이 권위에 찬 선언은 세례 요한의 지위와 역할이 예수가 가르치는 천국에 얼마나 지대(至大)한 공헌을 했는가를 단정적으로 보여준다.
이 메시아적 증언을 통해 세례 요한의 권위와 한계가 정확하게 규명되었다.
2]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직역하면 '여자들에 의해 태어난 자'이다.
이는 고난 받는 자(*, 엘루드 이솨) 욥에 의해 사용되었던 표현으로서 죽음과 고통아래 있는 모든 인류를 가리킨다.
* 욥 14: 1 -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이는 단수로 표현된 '한 여인에게서 나신 자'. 즉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과는 전혀 다른 표현이다.
* 창 3: 15-16 –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 갈 4: 4-5 –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세례 요한의 인격, 권능, 종교적 지위 등이 타(他) 선지자들보다 우수하다는 뜻이 아니다. 천국의 주체이신 예수와 관련해서 생각되어져야 한다.
구약의 기라성 같은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메시아 왕국을 멀리서 고대하고, 메시아의 선구자를 예언하는 정도에 그쳤다. 반면 요한은 그 나라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선구자, 예언의 대상이 되었다.
* 사 40: 3 -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광야에서 외쳐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며)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 말 3: 1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친히 메시야의 길을 준비했으며,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그를 만 백성에게 소개하였다는 점에서 구약 선지자 중 최고의 위치에 이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자였다.
4] 그러나 천국에서는
천국(Kingdom of heaven)은 메시아의 통치가 실현되는 모든 영역으로서 시간적, 지리적 제한을 받는 현존하는 이 땅의 나라들과는 다른 영원에서 영원까지의 모든 나라 사람들을 포함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나라이다.
천국은 현존하는 질서와 세계를 심판한 후 이와는 질(質)적으로 차원이 다른 영원한 새 세계의 실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 막 1: 15 –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 나라에 입참(入參)하는 자는 단순한 인간적 평가를 훨씬 초월하는 신적 영광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사역의 주(主) 내용은 바로 이 천국의 도래를 예비하고 선포하는 것이었다.
* 마 3: 2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5]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이러한 대조는 인간적 자질이나 윤리적 우수성과 연관되지 않고, 계시의 발전적 측면 및 천국의 전혀 새롭고도 신적(神的)인 측면과 연관된다.
본문의 '작은 자, 큰 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 예수의 메시아성을 의심한 것으로 인해 요한을 작은 자로 보는 견해(Weiss).
Ⓑ '작은 자'를 그리스도로 보아, 요한의 인기와 영광에 의해 그 영광이 침해받은 작은 자는 천국에서 더 큰 자가 될 것이라는 견해(Luther, Chrysostom, Origen).
Ⓒ '작은 자'는 예수 이후의 모든 신약 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큰 자'는 세례 요한으로 대표될 수 있는 구약의 성도들을 가리킨다(Alford, Bengel, Calvin, Plummer).
이 중 Ⓒ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게 평가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자라 하더라도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목격하거나 천국의 실체를 경험한 자들, 혹은 이 모든 것을 믿는 자들은 단지 예수의 길을 준비하는 데 그쳤던 세례 요한보다 더욱 크며, 더욱이 천국 계시의 종합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구약의 어떤 위대한 인물보다 탁월하다.
이 어구를 이상과 같이 이해하게 되면 예수의 선구자로서, 그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이 3절에서 '오실 그 이가 당신이냐'고 묻게 된 배경을 또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세례 요한은 구약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救贖史)의 감추어진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신약 시대의 성도는 세례 요한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있다.
6]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해서 특징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홀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그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 아니었고 열두 사도 가운데 드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 요한 만큼 큰 자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가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세례 요한과 천국이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잘 감당했다.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시기는 결코 평범한 시기가 아니었다. 그때는 사백년 동안이라는 긴 암흑기가 계속되던 때였고,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은 악할 대로 악해져 있었으며, 말씀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전지(剪枝) 작업이 필요한 때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보내셨고, 세례 요한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자신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2) 그는 악을 거부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가졌다.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지위가 높고 권세를 가진 자의 죄에 대하여 말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비범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즉 헤롯 왕의 부정한 결혼은 비난했고 세리와 군인들, 그리고 외식하는 신앙인들을 정죄했다.
이러한 선지자적 행동은 세례 요한 자신에게 위험과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그는 악을 거부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일을 수행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야말로 크리스찬들이 소유해야 할 참 모습이다. 크리스찬의 삶에서 이같은 일이 일어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신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세례 요한이 큰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악에 대항하는 그의 신앙적 정열과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신앙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런데 세레 요한을 격찬하시던 주님은 말머리를 돌려서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라고 말씀하셨다. 즉 세례 요한의 그 위대함도 천국에서는 절대적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천국의 의미는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 세상의 원하시는 것과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천국이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니고데모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주님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주님이 제시하신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거듭나는 것이며,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천국의 원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므로 시작되는 새로운 삶, 즉 중생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는 삶이다. 그러기에 천국에 사는 모든 자는 이 땅에서 위대한 그 누구보다도 훨씬 큰 자이다.
(4) '큰 자'의 의미
예수께서 말씀하신 '큰 자'란 세상에서 말하는 큰 자와는 다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의지하고 사랑하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의 표준대로 그의 가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즉 아무리 완벽하게 보이는 기준이라 할지라도 세상이 세운 기준은 시대마다 달라지고 나라와 도시마다 달라지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기준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이유 역시 이 불변의 기준(원리)을 믿는 자들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천국에서 '큰 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며 증언하는 자를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고 새로운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게 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의 삶은 새 생활이 시작되어서 사회와 국가 전 영역에 있어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들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악을 멀리함으로써 주님께 '큰 자'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있으나 그들은 이 세상의 기준을 따라 평가되는 '위대한 자'가 아니라 주님의 복음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 복음의 원리로 평가되는 우리 성도들이다.
우리는 이제 천국의 '큰 자'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복음의 빛 안에서 더 높은 삶의 의미를 누리는 자들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이 땅 위에서가 아닌 천국에서의 큰 자가 되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하겠다.
마 11: 12. 침노하는 자는 빼았느니라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회개하고 믿는 모든 이들이 담대히 천국으로 들어감으로 이것을 ‘침노’라고 표현하셨다.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시점부터 마태가 이 글을 기록한 때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Albright, Mann).
'세례 요한의 때부터'란 아람어적 표현 방법이다. 그 의미하는 바는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동안에 비록 예비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하늘나라가 시작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Jeremias)
2] 지금까지
'지금까지'란 표현은 한정된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 천국의 확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3]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를 당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비아제타이' (*)는 수동태와 중간태 둘 다 해석이 가능하다.
(1) 이를 수동태로 이해하면
이 어구는 본문과 같이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는 의미이다. 천국이 어떤 강력한 힘을 소유한 자에 의해 강탈당하거나 거칠게 다루어져 강점(强占)되는 것을 의미한다(Meyer, Lightfoot).
천국은 습격에 의해서 정복된 성과 같이 빼앗아진다는 뜻이다.
(2) 이를 중간태로 받아들이면
'힘으로 진격하다', '휘몰아쳐 오는 바람처럼 힘으로 떠밀려 제 갈 길을 가다', '격렬하게 빼앗다' 등의 뜻이다.
이는 NIV 성경에서처럼 '하늘나라가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the Kingdom is forcefully advancing)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은 중간태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실로 거룩한 능력과 막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땅에 기습적(奇襲的)으로 도래한 천국은 침략과 약탈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역동적(dynamic)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짐으로서 열정적 신앙인들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Ridderbos, Chilton, Hendriksen).
4]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침노하는 자'를 해석함에 있어서
(1) 앞 구절의 '침노당하다'란 동사를 수동형으로 보아
'강탈자'나 '난폭한 자'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자로 이해하려 한다.
따라서 이 어구를 '하늘나라는 맹렬한 공격을 당하고 있으며, 난폭한 자들은 그 나라를 강탈하고 있다'란 의미로 해석한다(Hill, Meier, Hobbs 등).
(2) 이 어구는 앞의 동사 '비아제타이'를 중간태로 해석함과 연결하여
'용기 있는 자' 또는 '강한 자'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본문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용기 있는 자들 또는 강렬한 집념을 지닌 강한 자들이 그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 그러므로 소심하거나 쉽게 낙담하는 자는 그 나라를 얻을 수 없다'(Pamment, Kummel)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실로 '침노하는 자'는 목적한 바를 쟁취하기 위해 결사적인 노력과 지혜를 아끼지 않는 강하고 용기 있는 자이다.
'빼앗느니라'(*, 하르파주신 아우텐)는 말은 야수나 거친 도적들처럼 무엇을 취하기 위해 자신의 사력(死力)을 다해 움켜잡는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는 순전히 선한 의미로서, 구원을 얻고 천국의 유업(遺業)을 얻기 위해 온 정열로써 애쓰며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본문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단정지으며 멸시했던 세리나, 창녀, 각종 범죄자들 및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간절히 갈구(craving)하는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눅 7: 28-30 –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그들은 의와 평화 그리고 기쁨의 나라를 얻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죄와 악한 동료들과의 단절(斷絶)이라는 수동적 변화와 더불어 난폭할 만큼 격렬한 신념과 용기가 있어야 했다. 이러한 영혼들의 순수한 열정을 통해 천국은 더욱 역동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5] 침노 당하는 천국
본문은 침노하는 자의 천국에 대한 기록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침노하는 자의 특징을 알아보고 이들과 천국과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천국은 자기를 부인하는 자의 것이다.
①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나 목적, 그리고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으로 향하던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돌려야 하며 육적인 것, 자기중심주의의 사고에서 영적인 것과 그리스도 중심의 사고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이 없고서는 결코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 것을 사랑함은 하나님과 원수됨이요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서는 결단코 천국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② 자기를 포기해야 한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추구하던 삶의 목표와 소망하던 모든 것들의 포기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향한 줄을 끊어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나 스스로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짓는 주인이었고 내 자신을 위해 세상을 필요로 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만 일관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셔야 하며 나는 더 이상 주인이 아닌 종으로서 그의 뜻을 청종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의 곁에 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세상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기 부정이 있어야만 천국은 우리의 것이 된다.
(2) 자기 부정은 큰 고통을 수반한다.
①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 시민으로서 합당치 않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 영생을 얻는 길을 여쭈었던 한 젊은 청년은 그의 재산을 포기하기보다는 주님을 포기했다.
* 마 19: 16-22 –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는 주님을 따르고 천국을 소유하는데 수반되는 고통을 거부함으로 천국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미 우리 손에 쥐어진 모든 것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없이는 결코 생명을 소유할 수 없다. 야곱같이 욕심 많은 사람도 생명을 위해서는 얍복 강 나루턱에 혼자 남기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②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세상에 익숙해져 있고 또한 그것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이 든 후에 그것을 끊기는 매우 힘들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더욱 힘이 든다. 이것이 우리가 자기를 부인할 때 많은 고통을 느끼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미 거짓과 탐욕, 그리고 사악함에 깊이 물들어 있어서 그것을 끊기에는 매우 힘들며 그만큼 많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잘못된 습관과 성품, 죄악을 고치는 일이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셔야 했던 주님을 기억합시다.
그분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것이었으나 기꺼이 감당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죄악 된 성품과 모든 악한 습관을 끊는 데서 오는 고통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3) 천국은 힘쓰고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세상일은 하찮은 것일지라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지칠 줄 모르는 열심과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며 보석은 찾고 또 찾는 자에게만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고의 노력과 피나는 훈련이 없으면 승리의 면류관도 없다.
이처럼 구하고 두드리며 찾는 수고 없이 천국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만나주시고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신다.
우리는 천국의 비밀을 알 때까지 주님을 만나기 위한 강한 열정을 가지고 힘쓰고 애쓰는 자가 되어 결국은 천국을 소유하는 자가 됩시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누구나 천국을 소유할 수 있으며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침노하는 자에게만'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침노하는 자에게만 천국은 개방되어 있고 구하지 않고 찾지 않는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침노하는 자', 즉 자신을 부인하며 이로 인한 고통을 인내하고 감수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열심히 천국을 찾자. 그리고 구합시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자기 부정'의 결단과 희생의 삶 뒤에는 밝고 환한 천국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자. 그리하여 우리 모두 천국을 소유하는 천국의 주인이 됩시다.
|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천국은 힘쓰고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천국은 힘쓰고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설교 감사합니다.
천국은 힘쓰고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