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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 전진!
나는 움직이고 싶었다. 조용히 살다가 사라지는 삶은 원치 않았다. 흥분과 위험을 원했으며
사랑을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기를 바랐다. 조용한 삶에서는 분출할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느꼈다.
―― 레프 톨스토이, 『행복』(존 크라카우어, 『야생 속으로』에서 재인용)
▶ 산행일시 : 2020년 2월 23일(일), 흐림, 안개, 바람, 눈
▶ 산행인원 : 14명(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일보 한계령, 자유인산악회(수담, 향월초,
김옥신, 김명순), 새들, 신가이버, 해피, 대포, 무불, 메아리)
▶ 산행시간 : 7시간 45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11.7km(문암산 정상 왕복 0.7km 포함)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6 : 34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48 - 백성동(栢城洞), 만나산장, 산행시작
09 : 16 - 계류 건너 오른쪽 능선에 붙음
09 : 42 - 안부
10 : 03 - 문암산(門岩山, 1,149.0m)
10 : 14 - 다시 안부
11 : 04 ~ 11 : 36 - 문암동 위쪽 산자락, 점심
11 : 50 - 막다른 산골짝 농가
12 : 37 - ┳자 능선 1,060m봉
13 : 10 - △1,163.3m봉
13 : 50 - 1,128.5m봉
14 : 38 - 광원봉(廣院峰, 1,058.1m)
15 : 09 - 산죽봉(940m)
15 : 23 - 중봉(920m)
15 : 44 - △921.0m봉
16 : 11 - 740m봉, 임도
16 : 28 - 자운교(紫雲橋), 산행종료
17 : 44 ~ 19 : 56 - 홍천, 목욕, 저녁
21 : 1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1-2. 산행지도(문암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3. 산행지도(광원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 문암산(門岩山, 1,149.0m)
백성동 가는 길. 길이 멀어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바로 뒷좌석에 앉은 모닥불 님과 김
옥신 님 간에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대화가 재미있다. 오지산행팀에는 모닥불 님만
보인다느니 산꾼답게 주로 산을 주제로 한 대화다. 대화중에 김옥신 님이 들먹이는 용대장님
또는 용호대장님은 자유인산악회 대장인 수담 님(김용호)을 말하는 줄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오지산행팀에서는 용대장님이란 호칭이 익숙하지 않아 모닥불 님은 이따금씩 거두절
미하고 마대장님이 아주 멋진 분이시라고 하면, 김옥신 님은 마대장님이요? 누구인데요?
왜 마대장이라 하는데요? 하고 되묻는다. 모닥불 님도 수담 님을 왜 마대장이라 부르게 되었
는지 또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유래를 알려드리겠다.
종종 수담 님이 갓 맞이한 사위에게 자기가 오지산행팀에서 매우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어
이번 주말에도 산행에 빠질 수 없으니 가족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더라고 이해해 달라고 한다
기에 우리는 수담 님에게 ‘마대장님’이라는 호칭을 헌정하였다. ‘마대장’은 ‘마이가리대장’이
라는 호칭의 약칭이다. 마이가리는 원래 일본말 마에가리(前借り, まえがり)로 임금 등을 정
해진 날짜보다 앞당겨서 받는 것을 일컫는 말로 우선지급 또는 임시 지급, 가불 등을 뜻한다.
이 마에가리가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마이가리로 변하여 계급장을 미리 빌려서 단다는 의미
로 쓰인다. 군인(장교나 하사관이 아닌 병)들이 휴가 나올 때나 끗발 좋은 보안사에 근무하
는 병들이 자기 계급보다 위인 계급장을 다는 경우로 대개 부대 상급자가 그러도록 용인해준
다. 우리는 수담 님의 멸사봉산(滅私奉山)하는 장한 뜻을 기려 일단 마대장님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백성동(栢城洞). 산골 마을이름에 붙는 동(洞)은 지방 행정구역의 한 단위인 동이 아니라
‘골, 또는 골짜기’를 뜻한다. 백성동은 잣나무가 성을 이룬 골짜기일 듯하다. 홍천군 지명유래
에 따르면 “빼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어귀에 큰 잣나무가 서 있다.”고 한다. 지금도 그러한
지 미처 확인하지 못하였다. 56번 국도를 벗어나 백성동 어귀에 있는 만나산장 주차장에서
버스를 멈춘다.
어제 내린 비가 이곳에서는 눈으로 왔다. 창촌 지나면서 바라본 차창 밖의 문암산이 설산이
기에 거기에 어서 오르고 싶은 조바심이 일어 버스에 내리자마자 서두르는데 노면이 여간 까
탈스럽지 않다. 너른 포장도로가 말갛게 얼음으로 코팅되었다. 도로 양쪽 가장자리의 성긴
풀포기나 잔설을 밟고 오른다. 그러다 풀포기 등이 끊겨 다른 쪽으로 건너려는데 이게 대단
한 험로다. 뒤로 주르륵 미끄러지곤 한다.
울창한 낙엽송 숲에 들어서야 포장도로 험로가 풀린다. 고개 들어 바라보는 문암산 연릉과
그 북사면이 만년설산이다. 백성골 주등로의 인적은 눈으로 푹 가렸고 우리가 새길 낸다. 가
늘어진 계류를 건너 오른쪽 가파른 사면에 붙는다. 굵은 고정밧줄이 달려 있다. 이내 벌목한
능선이다. 사방에 일목일초마다 눈꽃이 만발하였다. 숨만 크게 내쉬더라도 우수수 쏟아지는
여린 눈꽃이다. 화원이다.
안부. 세찬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이라 황량하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이 나더러 문암산 정상에
얼른 갔다 오시라 권한다. 대포 님이 앞서 갔단다. 그렇다면 나도 간다. 안부에서 문암산 정
상까지 0.35km다. 왕복 30분을 견적한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대포 님 발자국을 쫓는다.
능선마루는 바람이 눈을 쓸어 모아서 깊다. 절반쯤의 오르막은 완만하다가 고정밧줄 나오고
부터는 숫제 설벽이다.
고정밧줄이 설벽의 등로 유도선이다. 때때로 허벅지까지 차는 깊은 눈이지만, 켜켜이 쌓인
썩은 눈이 아니라 어제 내린 눈이라서 헤쳐 나가기 어렵지 않다. 주릉 갈림길에 올라서고
50m 더 가면 정상이다. 500m처럼 간다. 눈밭에 ‘석화산’이라 새긴 정상 표지석이 오도카니
서 있다. 그 옆의 ‘석화산(石花山)명 유래’ 판에 쓰인 소개 중 일부이다.
“석화산(문암산)은 옛날 바위에 석이버섯이 많이 자생하여 멀리서 바라본 바위가 마치 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
문암산 정상에서 조망하기로는 남쪽으로 5~6m쯤 내린 깊은 절벽 위의 테라스가 빼어난 경
점이다. 정면의 산 첩첩한 원경은 물론 가까운 문암산 동봉의 노송 비집은 암벽이 드문 가경
인데 오늘은 안개로 가렸거니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어 절벽 가장자리와 바위틈을 도저히 분
간할 수가 없기에 테라스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2. 창촌 지나면서 버스 창밖으로 바라본 문암산
3. 백성동에서 바라본 문암산 뒤쪽 1,133.2m봉
4. 백성골에서 바라본 문암산
5. 위쪽은 문암산
6. 백성골, 문암산 주등로다
7. 백성골
8. 문암산 북사면에 핀 눈꽃
9. 눈꽃
10. 이때까지는 문암산 주등로를 밟았다
11. 문암산 북쪽 주릉 눈꽃
12. 문암산 북쪽 주릉 눈꽃
13. 문암산 정상에서, 대포 님
▶ 광원봉(廣院峰, 1,058.1m)
문암산을 온길 뒤돌아 내린다. 밧줄 잡고 레펠하여 내린다. 바로 이 재미다. 마치 경찰특공대
가 고층빌딩 외벽을 외줄 타고 하강하듯이 내린다. 금방 더 내릴 데 없이 안부에 다다른 게
아쉽다. 일행들은 산죽지대 사면을 누비며 지나갔다. 그들이 잘못 간 길을 나 또한 그렇게 간
다. 그나마 사면 길게 돌아 붙잡은 지능선 자락에서는 그들의 흔적이 사라졌다. 뒤돌아 그들
의 흔적을 다시 찾느라 지체한다.
고개 들자 골짜기 건너편 능선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환청처럼 들린다. 연호하여
우릴 일행임을 확인한다. 골로 갔다 산죽 움켜쥐며 가파른 사면 치고 오른다. 나를 보자마자
그들은 휴식 즐기기를 마치고 출발한다. 맥이 빠진다. 메대장님, 신가이버 님 붙들고 주저앉
아 탁주로 목 추긴다. 다시 산죽지대 사면을 길게 돌아 지능선을 갈아타고 내린다. 944.4m봉
서릉이다.
예전에 더덕 가두리 양식장이었는데 지금은 폐장한(?) 자작나무 숲이다. 너 본 지 오래다 하
고 연장 들고 덤볐으나 흙이 돌처럼 땅땅 얼어 불꽃만 튀길 뿐이다. 근처 양광 가득한 무덤가
눈밭에서 점심자리 편다. 셰프 신가이버 님의 많은 작품 중 하나인 불닭짜파구리도 기생충의
짜파구리 못지않게 청와대에 납품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라며 저마다 젓가락 들고 덤
빈다.
수마담이 조심스레 끓인 커피에 연태 얹어 입가심하고 일어난다. 산자락 도는 임도와 만나고
임도 따라 내린다. 막다른 산골짝 외딴 농가가 나온다. 그 앞뜰을 지나 뒤쪽 도드라진 능선을
오른다. 점심 먹을 때, 눈발이 날리는 건가, 이미 내린 눈이 바람에 날리는 건가, 의견이 갈렸
는데 확실히 가루눈 눈발이 날린다. 고도를 높일수록 눈발은 점점 심해진다. 눈보라다.
┳자 능선 1,060m봉에 오른다. 선두그룹은 왼쪽으로 잘못 갔다. 소리쳐 불러주고 내가 잠시
선두가 된다.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친다. 눈보라에 지척도 어둑하다. 눈보라에 맞서기라도
하면 숨이 턱 막힌다. 암릉은 선두가 내는 발자국 쫓아 좌우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이래야 겨
울산행 맛이 난다. 다행인 것은 날이 그다지 춥지 않아 모자챙에 고드름이 맺히지 않는다. 그
래도 여름 홑바지를 입고 온 신가이버 님과 대간거사 총대장님은 얼굴부터 얼얼하기 보인다.
△1,163.3m봉. 일행 모두 거의 동시에 올랐다. 겨울산행에서는 무엇보다 이게 중요하다. 흔
히 정상에 먼저 오른 선두는 달달 떨어 녹아나고, 후미는 지쳐 녹아난다. 눈 속 삼각점은 ╋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홍천 문암산 1,165M, 산친구 홍성목’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홍성
목 님이 자기 멋대로 정한 문암산이다. 단체 기념사진 찍는다. 보시라, 적어도 이때만큼은 의
기양양한 표정들이다.
14. 문암산 북사면
15. 문암산 북사면 눈꽃
16. 문암동 맞은편 뭇 산들
17. 문암동 맞은편 964.8m봉
18. △1,163.3m봉 오르는 길
19. △1,163.3m봉 정상에서
20.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친다
21. 눈보라 속 전진, 1,128.5m봉 가는 길
22. 눈보라 속 전진
23. 눈보라 속 전진
24. 눈보라 속 전진
25. 눈보라 속 전진
북진! 눈보라를 뚫고 나아간다. 능선 마루금에는 무릎 넘게 눈이 몰려 있어 자주 사면으로 비
켜간다. 눈길 내리막에서는 넘어지고 오르막에는 엎어진다. 눈보라는 왼쪽(서쪽)에서 오른
쪽(동쪽)으로 몰아친다. 왼쪽 사면은 살벌한 동토인데 오른쪽 사면은 눈꽃이 만발한 설국이
다. 걷기에는 눈이 얕은 동토가 낫고 휴식할 때는 바람 비킨 설국이 낫다.
1,128.5m봉. 잠깐 서성이다 내린다. 북동진한다. 봉봉을 오르내린다. 1,000m가 넘는 고원이
다. 눈보라를 뚫고 설원을 누비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 눈꽃보다 더 아름답다. 1,058.1m봉.
‘광원봉’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내면에서 만들었지 않았을까 싶다. ‘광원봉’이라는 이름
은 아마 이곳의 행정구역인 광원리에서 따왔을 것. 조선조 때 원집이 있었다 하여 늘원이 또
는 광원(廣院)이라고 하였다.
이정표에 광원봉에서 1,300m 가면 ‘산죽봉’이다. 광원봉을 내릴 때는 눈보라도 지쳤는지 잠
시 쉰다. 그 요동하던 천지가 갑자기 조용하다. 산죽봉은 산죽보다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한 경치한다. 이런 소나무 숲을 지날 때면 우리도 덩달아 늠름해진다. 이정표에 산죽봉에서
400m 가면 중봉이다. 완만한 능선이다. 완만한 등로가 오히려 까다롭다. 경계하기 느슨해져
자주 자빠지거나 넘어진다.
중봉 넘고 눈보라는 다시 기세를 회복한다. 눈보라는 가루눈이었다가 싸락눈이었다가 함박
눈으로 변한다. △921.0m봉의 삼각점은 눈밭 헤쳐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제는 더 오
를 데 없이 쭉쭉 내린다. 넙데데한 설원이 나오고 지도 읽어 오른쪽 낙엽송 숲 사면을 내린
다. 곧 임도다. 임도 따라 내린다. 마침내 대하로 흐르는 내린천에 다다르고 산자락 돌아 자
운교다.
함박눈이 내린다.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이 ‘우연히 쓴(偶題)’ 그런 풍경이다.
葉落龍蛇骨立多 잎 떨어져 산의 모양은 뼈만 앙상하여라
天陰雨浥勢槎牙 흐리고 비 오고 형세는 들쭉날쭉 울툭불툭
更敎風雪相攻擊 게다가 다시 눈보라가 서로 쳐대지만
未必春來不放花 봄이 오면 반드시 꽃 못 피우지는 않으리
26. 눈보라 속 전진, 1,128.5m봉 가는 길
27. 눈보라 속 전진, 1,128.5m봉 가는 길
28. 1,128.5m봉 가는 길
29. 능선 마루에는 눈이 엄청 몰려 있다, 일보 한계령 님
30. 이런 눈꽃 사이를 간다
31. 광원봉(1,058.1m) 주변
32. 중봉(920m) 주변
33. △921.0m봉 넘어 산죽 숲을 지난다
34. 자운교 건너 개인산 남동쪽 자락
첫댓글 와~~ ~산행기 너무 잘 쓰시고~~사진과 설명.하나~~하나가 가슴에 꼿히네요^^~~참 글 잘쓰시는분 보면 부러워요
산행기와 사진을 보니 지금까지도 생생하고 힐링되고 좋아요~~언제나 저에게 오지산행은 힘이들지만 오지에 멋진분들과
뇌리에 저장되고..아름다운 추억이 됩니다...주무셔야 되는데 모닥불님과 오랫만에 만나 떠들어 죄송합니다..
봄이 낼모렌데,,,가는 겨울이 아쉬워 시샘하는 듯한 하루였습니다...그래도 지나보면 다 추억으로 남아서 좋군요,,,수고하셨습니당
멋진 추억산행이었어요
마대장 유래가 탄로났네요
ㅠㅠㅠ
눈보라가 휘날리고, 바람이 차니, 제대로 겨울 맛을 보여줬네요. 이리 엮고 저리 엮어 겨울산행 합니다.
신마담님 겨울산행복장보니 웬지 낯서네요~ 이날 바람불어 추벘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