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사이에 우리는
오늘은 주일이다. 아침에 청명원에서 국민체조를 하며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D동에 가려 있던 해가 서서히 이동하면서 청명원에 햇살을 비추고 있다. 체조하는 주민들, 맑게 담겨 있는 물, 그리고 우람한 팽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니 문득 단테의 『신곡』이 떠올랐다.
『신곡』은 오래전에 읽은 작품이지만 지금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수많은 연으로 이루어진 이 대서사시는 서곡 1편과 지옥편 33편, 연옥편 33편, 천국편 33편 등 모두 10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과 연옥을 여행한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기에 천국까지는 동행할 수 없었다. 천국에서는 단테가 평생 사랑했던 베아트리체가 안내자가 되어 그를 신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 작품은 14세기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구원,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를 탐구한 문학의 걸작이다. 지옥편은 인간이 저지른 죄와 그에 따른 대가를 보여 주며, 연옥편은 영혼이 정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천국편은 신적 사랑을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는 영혼의 여정을 담고 있다.
청명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이곳 또한 또 하나의 『신곡』처럼 느껴졌다. 둥글게 원을 이루어 체조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지상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청명원은 다리를 경계로 아래와 위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문득 아래쪽은 지옥, 위쪽은 연옥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래쪽 공간은 비교적 좁고, 위쪽 공간은 한결 넓게 펼쳐져 있다.
좁은 아래쪽 공간을 보며 지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반면 넓은 위쪽 공간은 많은 이들이 천국에 이르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정화하는 연옥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 우뚝 서 있는 팽나무는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푸른 잎을 가득 품은 팽나무는 기쁨과 희망, 보람과 행복이 머무는 공간처럼 보였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하늘나라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늘나라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침 햇살 아래 청명원의 맑은 물가에서 체조를 하고, 팽나무의 생명력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순간이 곧 천국의 한 모습일 수 있다. 이곳의 삶이 불행한데 어찌 천국의 삶만 행복할 수 있겠는가. 행복과 불행이 동전의 양면과 같듯이 지옥과 천국 또한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테의 『신곡』이 말하듯 인간의 삶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율법에만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사랑과 자유를 실천하는 삶, 이웃과 정을 나누고 서로를 보듬는 삶이야말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삶은 하늘나라를 미리 옮겨 놓은 작은 천국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