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이다. 믿는 건 촉 하나밖에 없는 인연의 허물을 지운다. 명분과 가치가 있으니, 수없이 자신을 소멸시키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지극한 인연인 지우개와 연필은 어디든 함께 한다. 지우기와 쓰기는 상생의 관계로 맺어졌다. 연하게 쓴 글은 쉽게 지워지지만, 힘을 주고 쓴 것일수록 지우기가 어렵다. 종이 속으로 파고든 흑연이 깊은 자국을 남긴다. 유년시절엔 글씨를 진하게 쓰려고 연필심에 침을 묻히기도 했다. 그러다 잘못 쓴 글자가 생기면 어떻게든 지우려 힘껏 문지르다 보니, 구멍이 나는 낭패가 생기곤 했다.
이런 지우개가 발명되기 전에는 푸석한 빵이 그 역할을 하였다. 가난한 학생들이 지우개용으로 쓰다가 남은 건 먹기도 했는데, 이를 소재로 오헨리의 <마녀의 빵>이란 소설이 쓰였다. 이후 지우개는 고무로 만들어졌고 요즘 쓰는 것들은 플라스틱 재질이 대부분이다. 놀잇감이 많지 않던 시절 지우개는 아이들 사이에서 책상 위에 놓고 손가락으로 튕기는 놀이기구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볼펜 같은 필기구에 익숙해져, 지우개를 찾는 일도 드물다. 지난 향수가 되었지만 연필화를 할 땐 필수 지참물이다. 가끔 작업할 일이 생기면 화실에 온다. 누군가 정리하지 못하고 간 이젤 홈에 쌓인 지우개 찌꺼기를 보며 오래전 시간을 읽는다. 수업을 마친 후 이것을 깡통에다 쓸어 담는 일은 초심자의 몫이었다. 미술용 지우개는 찌꺼기가 유난히 많이 생긴다. 점성으로 인해 엉겨붙은 입자들은 쉽게 나오지 않아 붓으로 쓸어내야 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것들을 치우고 나면 집으로 가는 막차 시간에 마음을 졸이며 시계를 보곤 했다.
연필심의 흑연은 경도에 따라 색감이 다르다. 수천 번 선을 긋고 지워야 석고 소묘 한 장이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실수한 선을 계속 고치는 일은 지우개가 전담해야 한다. 밝은 부분은 손목의 힘을 빼고 조심성 있게 표현하지만, 짙은 그림자는 너무 어둡게 채색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땐 온몸을 두드려 톤 차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 하이라이트 부분은 지우개의 몸을 칼로 잘라서, 모난 면으로 섬세하게 지운다.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이젤 홈에 떨어진 지우개 찌꺼기들. 이걸 흔히 지우개똥이라 부르지만, 지우개의 시초가 빵이었듯이 그건 똥이 아니다. 그림을 살려낸 밥이다.
아무리 잘 그은 선이라 해도 주변과 어우러지지 못하면 지워야 할 때가 있다. 그렇듯 살면서 잘해보려고 공들였던 일이 어깃장을 놓을 땐, 그 상황을 벗어나려 애를 쓰다 끝내 관계의 종이가 찢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돌아보면 지우고 싶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떠난 사람을 지우고, 일상의 오류도 지우려 문질러댄 가슴속 지우개. 새카맣게 타들어가던 마음까지 털어내려 했던 그 모든 조바심도 생각의 지우개밥에 덮여 있다.
우리는 쓰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배운다. 넘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듯 지워진 자리마다 겸손이 몸을 낮추게 했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졌다. 떨어진 지우개밥을 함부로 쓸어내거나 불어낼 일은 아니다. 그건 처음부터 쓸모없는 찌꺼기가 아니었다. 지금을 이끌어준 흔적이다. 나름 매순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시간의 상처이자 고해성사다.
지난 날 지우개는 힘으로만 지우는 도구로 알았다. 화실에서 배운 지우개의 사용법에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유연함으로 상대를 달래가며 틀어진 관계를 부드럽게 잇기도 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정면승부를 하는 배짱도 있다. 그 융통성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오랜만에 연필을 잡아본다. 글은 쓰지 않으면 생각이 죽고, 그림은 그리지 않으면 선이 죽는다. 굳은 선들이 조금씩 풀리기까지 긋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며칠을 몰입하다 보니 인물의 표정이 차츰 살아난다. 얼마 전 초상화를 그려 달라며 보내온 사진 한 장을 받고서 시작한 일이다. ‘내 기억의 지우개가 그의 모든 걸 지우기 전에 그려 달라’는 언니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녀의 절박함이 전해진 까닭일까, 여느 때보다 많은 지우개밥이 바닥에 쌓인다.
삶의 양면성은 사소한 지우개 하나에도 보인다. 지워지지 않는 옹이 앞에서 안달할 일은 아니다. 함부로 생각의 지우개를 들 일도 아닌 듯하다. 주변에서 시간이 우리의 기억을 백지로 만드는 경우를 가끔 전해 듣는다. 그땐 그토록 잊고 싶던 것들도 이젠 간절히 붙잡고 싶지 않을까.
제 몫의 소명을 다하는 건 좋은 업을 짓는 수행인지도 모른다. 자기 일상에 최선을 다한, 기억에서 멀어져가는 것들의 수고로운 한때를 돌아볼 일이다. 무심히 떨어진 지우개밥을 조용히 한켠에 치워둔다.
(우광미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