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는 반항
원제 : Rebel Without a Cause
1955년 미국영화
감독 : 니콜라스 레이
출연: 제임스 딘, 나탈리 우드, 살 미네오
짐 배커스, 앤 도란, 코리 알렌
윌리암 호퍼, 데니스 호퍼
오늘은 최근 개봉한 영화 '라라랜드'에서 '영화속 영화'로 등장했던 제임스 딘 주연의 고전
'이유없는 반항'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오래전 이 영화가 TV에서 방영했을때는 중요한 장면이 뚝 잘려서(플라톤에 관련한 후반부
장면이지요) 이야기의 이해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과거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이 인기가
있던 시절 공중파에서는 참 많은 영화들이 방영되었는데 심한 가위질로 영화의 주요
내용이 크게 훼손되어서 명작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토니가 우발적 살인을 하는 장면이 잘려서 영화의
핵심적인 이해가 안될 수 밖에 없었고,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캣 피플'같은 영화는
영화의 내용상 도저히 공중파에서 방영할 수 없는 '외설, 근친상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무리하게 방영 되어서 엄청 난도질 되어 버렸지요. '다이하드'같은 영화도
공중파에서 심한 총격전 장면이 뚝뚝 잘리니 아주 평범한 영화가 되어 버렸고.
요즘은 시대가 좋아서 영화를 쉽게 구해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60년도 더
지난 영화 '이유없는 반항'같은 영화도 아무 때나 볼 수 있습니다. 공중파에서
더빙판으로 국내 성우의 음성으로 녹음된, 중요 내용이 뚝 잘린, 4:3 비율로 브라운관
TV에 맞춘 버전과, 원어 자막으로 듣는 2.35 : 1 시네마스코프 버전의 느낌은 완전히
다릅니다.
제목 '이유없는 반항'과는 달리 여기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모두 '이유있는 반항'을
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볼 때 참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이유없는 반항'이라는
제목은 꽤 그럴듯하고 멋진 제목이지만 영화의 내용과 부합시킬때는 그야말로
'무기력한 반항'이라고 느껴집니다.
어른들의 무관심, 이기심, 독단, 요란스러움, 권위 때문에 벌어지는 청소년들의
'이유있는 반항'을 다룬 영화입니다. 얼핏 보면 문제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문제있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힘겹게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가엾은 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현대 우리나라 세상을 보는 것 같지요.
신기하게도 과거 서구의 고전들을 보면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과 일치가 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참 많아요.
짐(제임스 딘)이 어느날 술에 만취해서 경찰서에 끌려오던 날, 우연히도 같은
학교 학생이자 이웃인 존(살 미네오), 주디(나탈리 우드)도 함께 경찰서에 오게
됩니다. 이 세 청소년들에게 과연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세 명의 탈선의
이유는 모두 비슷합니다. 대화와 소통이 막힌 부모의 무관심 때문이지요.
부모의 문제가 마치 아이들의 문제인 양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짐은 사고를 자주 쳐서 그 때마다 짐의 부모는 이사를 하고 짐은 학교를 옮겨야
했는데, 이사온 첫 날 짐은 경찰서에 끌려온 것입니다. 다음 날 전학온 학교에
첫 등교하는 짐은 전날 경찰서에서 본 주디가 이웃집 동창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디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짐의 모습을 본 학교의 불량배들,
버즈라는 소년을 위시한 그들 패거리들은 짐을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존과도 재회한 짐, 존은 일종의 외로운 왕따소년 같은 존재이며
플라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존은 짐에게 호감이 가고 둘은
친해지지만 버즈일행이 짐에게 시비를 걸고, 짐은 버즈에게 용감하게 맞서서
오히려 버즈에게 굴욕을 주고, 결국 그들과 위험한 게임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저녁 8시 '겁쟁이 경기'를 하게 된 것. 겁쟁이 경기란 절벽으로 차를 몰고
돌진하다가 뛰어내리는 것인데, 차에서 먼저 내리는 아이가 지는 것이지요.
경기는 벌어지고 그런 과정에서 오히려 짐에게 서서히 호감을 느끼는 버즈,
하지만 버즈의 옷이 걸려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버즈가 추락사를 하게 됩니다.
충격을 받은 짐은 경찰서에 가지만 귀찮아 하는 경찰때문에 다시 나오게 되고
버즈와 친하던 주디는 충격을 받았지만 짐의 진심을 알게 되고 둘은 존이 알려준
빈 집으로 함께 갑니다. 한 편 존은 불량학생들이 짐에게 복수할 것을 알고
그걸 막기 위해서 총을 들고 집을 나서게 되고.......
발표 뒤 굉장한 반응을 얻었던 영화입니다. 어른들에게 방치된 학생들이 벌이는
위험한 내용들, 이사와서 전학간 학교에 첫 등교하게 된 주인공 짐이 벌이는
단 하루동안의 긴 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하루에 그렇게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평생 쉽지 않은 경험, 이웃 동창인 주디와의 만남,
버즈 일행과의 만남, 존 과의 재회, 버즈와의 결투, 겁쟁이 게임, 경찰서 방문,
주디와의 데이트, 그리고 안타까운 결말...... 청소년기의 짐이 겪은 이 하루는
10년은 더 철들게 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짐, 주디, 존 이들 세 청소년들과 부모들이 등장하는데 각각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과의 소통이 막힌 답답한 부모들입니다. 늘 소심하고 대충 회피만
일삼는 짐의 아버지와 싸움만 걸고 요란스런 엄마, 아직 어리광부리고 싶어하는
딸에게 지나치게 권위적인 주디의 아버지, 그리고 부모가 이혼하고 집을 나가
버려서 하녀와 혼자 살며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존.... 이들 어린 청소년들에게
가정이란 따뜻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탈출하고픈 감옥이나 동물원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렇다고 집 밖의 학교에서 기다리는 것은 불량 학생들의 행패..... 영화의 오프닝은
마치 문제가 있어서 경찰서에 잡혀온 세 탈선 청소년들의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사실은 가정과 학교 안팎에서 사면초가에 몰려가는 가엾는 세 청소년의 아픔을
다루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경찰조차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만약 짐이
버즈의 사고이후 경찰서를 찾아갔을 때 약속한 대로 청소년담당 형사가 그를
만나주고 진지하게 고민들 들어주었다면 후반부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후반부에 경찰이 벌이는 황당한 행동도 그렇고.....
지금 시점에서 분석하면 꽤 답답하고 아픈 영화이며, 주요 등장인물인 짐, 존,
주디에게 동정이 가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했던 1958년 당시의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영화에 출연한
제임스 딘 이나 나탈리 우드의 모습은 국내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괴리감의
대상이었습니다. 교복에 빡빡깎는 머리의 남학생, 단발머리 여학생, 남학교,
여학교로 분리된 학교와 엄격한 규율, 콩나물교실이라는 당시 우리나라 청소년의
현실과 달리, 양복을 입고 올백머리를 하고 술도 먹고, 심지어 자동차까지 운전하고
다니는 제임스 딘의 모습, 립스틱을 바르고 파마 머리를 하고 자유롭게 옷을 입고
거리낌없이 동창과 키스도 하고 밤 늦게 돌아다니는 나탈리 우드의 모습, 그들이
보여준 고교생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마치 굉장한 별나라의 모습이었습니다.
신세계가 따로 없었겠지요. 그런데 그들은 뭐가 불만인지 삐딱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정서의 차이, 몇년전 방영한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에서의 이민호를 위시한
F4 청소년들의 모습에서야 비로소 '이유없는 반항'이 부럽지 않은 자유분방함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유없는 반항'과 '꽃보다 남자'는 수십년간의 간극이 있었지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임스 딘의 모습이 선망의 대상이고 열광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제임스 딘의 '에덴의 동쪽'과 '자이언트'가 먼저 57년 가을에 나란히 개봉이
되었고, 이어 몇달뒤인 58년초 '이유없는 반항'이 개봉되었습니다. 이미 '에덴의 동쪽'
개봉당시 제임스 딘은 저 세상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이미 사망한 배우의 영화가
개봉되어 그 배우에 대한 열광을 하게 만든 인물은 역사상 '제임스 딘'과 '이소룡'
이라는 걸출한, 하지만 안타깝게 일찍 요절한 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되었지요.
제임스 딘은 처음에는 비호감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였지만 영화가 흐르면서 점차
진짜 남자 같은 (요즘 말로 상남자) 이미지로 바뀌어 갑니다. 그의 처절한 절규를
보며 결국 소심했던 그의 아버지도 정신을 차리려고 하고. 그가 입고 나온 붉은색
점퍼가 주는 강렬함도 한 몫했고. 상대 여배우인 나탈리 우드는 오랜 아역배우
출신인데 이 영화에서부터 비로소 '성인 배우'의 길을 본격 걷게 되면서 위상도
주인공급으로 올라가게 되었지요. 불과 1년전에 출연한 '은배'라는 영화에서도
아직 뽀송뽀송한 예쁜 아역배우 티를 벗지 못했는데 1년만에 엄청 성숙해진
모습으로 기존 '성인 나탈리 우드'의 전형적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짙은
립스틱 화장에 파마머리가 좀 더 성숙하게 보이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이후 '끝없는 결투' '풋사랑' '밤이 울고 있다' '잊을 수 없는 모정' '초원의 빛'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행복에 젖은 아가씨'등이 연달이 개봉되면서 아역배우를
탈피하고 60년대의 대표적인 청춘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됩니다.
플라톤 역으로 출연한 살 미네오는 전형적인 '아역배우'라는 이미지로 기억에
남겨진 배우로 '영광의 탈출'의 유태인 테러범역과 '상처뿐인 영광'에서 폴 뉴만의
친구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유없는 반항' 출연 당시는 불과 16세였습니다.
이 배우도 아역으로 반짝 활동하다가 37세의 나이로 일찍 요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안타깝게도 '이유없는 반항'에 출연한 핵심 3명이 모두 일찍 요절했네요.
24세로 사망한 제임스 딘, 37세로 사망한 살 마네요. 그리고 43세로 의문사한
나탈리 우드....
이들 세 배우들이 가장 반짝 빛나기 시작한 청춘시절에 함께 출연한 영화가
'이유없는 반항'이고 당시 억압되고 짓눌리던 한국 청소년들의 눈에는 부유하고
자유분방한 별세계의 부러운 존재같던 그들의 연기....세상이 달리진 21세기
대한민국의 눈으로 다시 이 영화를 볼 때 이들의 일탈과 탈선, 반항은 '상당히 이유가
있는 것'으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남녀공학에 자동차를 몰고, 멋을 내고 화장을
하고 콩나물 교실을 벗어나고 교복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청소년이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요. 겉으로 보이는 부유함과 자유로움이 아닌 청소년들이
진정 행복해지고 우리나라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려면 어른들이 좀 더 올바르고
정작하세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대화가 안되는 부모들은
상당히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어른과 아이들이 대화가 막히는 것은 전적으로
더 나이가 든 어른들의 책임이 훨씬 크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유없는 반항'은 제발 제대로 된 부모노릇, 어른노릇들좀 하라고
일침을 놓는 작품같습니다.. 혹여 요즘 머리 물들이고 짧은 치마의 교복입고,
말 안듣고, 자유분방한 아이들에게 '왕년에 나는 어땠고....옛날엔 어땠고...'라는
과거에 묶여있고 집착하는 어른들의 꼰대마인드 부터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청소년들의 '이유있는 방항'에 귀 기울여주는게 먼저일 것입니다. 며칠전
인터넷에 올라온 '어느 유치원생의 하루 일과'를 보면서 정말 무임금 노동력착취를
당하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억압된 삶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도대체
언제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개인적으로 제임스 딘은 오래 살았으면 일찍 내리막을 탔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는 삐딱한 청년역에 최적화된 배우 같으니까요. 헐리웃 배우
치고는 키도 작은 편이고.
ps2 : 미국에서는 도대체 몇 살 부터 운전면허가 가능한 것일까요?
ps3 :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역대급 영화이기도 한데, 그가 몇년 뒤에 '왕중왕'
'북경의 55일'의 연이은 실패로 결국 퇴출될줄은 당시에는 몰랐겠죠.
드라마 장르로 성공한 감독이 대작에 손을 대다가 망하는 경우가 뭐
특별한 일은 아니죠.
[출처]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55년) 청소년기의 아픔|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