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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 칼럼] 586 운동권을 하루아침에 ‘꼰대’로 전락시킨 '젊은 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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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 칼럼] 586 운동권을 하루아침에 ‘꼰대’로 전락시킨 '젊은 피'의 힘
김용삼 최초승인 2021.06.10 09:47:38
이준석 돌풍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1993년 문민정권 등장 이래 단 한 번의 세대교체 없이 끼리끼리 편 갈라 해먹는 정치판을 혁신하라는 유권자들의 경고다.
#. 이준석 현상
1985년생 정치인의 행보가 연일 화제다.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든, 무슨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든 했든 그의 등장으로 인해 달라진 점은 '국민의 짐'으로 전락한 제1야당 대표 경선을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이준석의 공이다.
지금까지 '국민의 짐'당에서 정치인이 되려면 지역 토호세력이거나,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 음덕으로 호의호식하며 유학 다녀온 귀공자이거나, 고시 패스하여 판검사·변호사로 소일하다 입문하는 것이 기본 코스처럼 인식되어 왔다.
여당 정치인의 등용문은 몇 가지가 추가된다.
학창 시절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외치다 국보법으로 빵에 몇 차례 갔다온 훈장을 달거나 , 위안부 팔이나 시민운동으로 삥 뜯어 운동권 먹여살리거나, 운동권 인사들을 후원해온 기업인 출신 등이다.
올해 37세, 서울 상계동 오성빌라의 반지하에서 살았던 인물. 아버지 따라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1년씩 살다가 귀국, 서울과학고 학생회장,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입학, 하버드대학교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경제학·컴퓨터과학을 공부했다.
2011년 12월 박근혜의 발탁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정치인으로서는 특이한 이력의 신진기예다.
그렇다면 이준석 돌풍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사회적 함의는 무엇일까?
#. 김종필은 35세 때 목숨 걸고 혁명을 했다
1961년 박정희가 총 들고 5·16 거사에 성공했을 때 박정희 44세, 김종필 35세였다.
김종필이 박정희 의장 특사로 일본에 건너가 오히라 마시요시(大平正芳) 외상과 회담할 때의 일이다.
오히라 외상이 새파란 김종필을 보고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물었다. 김종필이 “36세”라고 답하자 오히라 외상, “료마의 환생을 보는 것 같소”라고 했단다.
1961년 5.16 거사 당시 박정희는 44세, 김종필은 35세였다.
오히라 일본 외상은 김종필과의 회담에서 "사카모토 료마의 환생을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오히라 외상의 별명은 둔우(鈍牛·둔한 소)였다. 굼떠보이지만 확실하며 저력 있는 인물이란 뜻이다.
노회한 정객과의 담판에서 “울지 않는 두견새를 어떻게 울릴 것인가”란 화두를 던지며 당차게 물고 늘어지는 김종필을 보며 오히라는 메이지 유신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혁명의 제단에 바친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떠올린 것이다.
5·16 이후 한국 정치판은 격변의 세대교체 회오리에 휘말렸다. 5·16 거사 나흘 후인 1961년 5월 20일,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발표한 혁명내각의 면면을 본다.
-장도영 내각수반 겸 국방부 장관 39세
-김홍일 외무부 장관 57세
-한신 내무부 장관 40세
-백선진 재무부 장관 40세
-고원증 법무부 장관 41세
-문희석 문교부 장관 40세
-박기석 건설부장관 34세
-장경순 농림부 장관 40세
-장덕승 보사부 장관 44세
-김광옥 교통부 장관 36세
-배덕진 체신부 장관 38세
-김병삼 국무원 사무처장 40세
-심흥선 공보부장 36세
내각 요원 14명 중 50대는 한 사람뿐이었다.
장면 정부 시절에 비해 20년가량 젊어진 30~40대의 청년 장교 그룹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 결과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던 노쇠 현상, 공자왈 맹자왈 하는 먹물 붓잡이들의 고담준론은 하루아침에 구시대의 유물로 밀려났다.
그 빈 자리를 저돌성과 효율과 목표 달성, 박력 있는 돌격정신으로 무장한 청년 신세대가 사회 주류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한 젊음의 에너지가 1960~70년대 한국의 대약진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
#. 제2의 유신, 신군부의 등장
권력이란 누가 시혜를 베풀 듯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쟁취하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존재가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다.
1980년 최규하를 강제 하야시키고 신군부가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을 때 전두환 49세, 노태우 48세, 권력의 중추를 이루었던 보안사 3인방 허화평 43세, 허삼수 44세, 권정달 44세였다.
5·16 당시 젊음·참신·개혁·혁명의 아이콘들은 18년 박정희 통치기간에 기득권 세력화하여 활력을 잃어갈 무렵, 신군부가 질풍노도처럼 등장하여 혁신의 돌풍을 일으켰다.
그 결과 한국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또다시 세대교체가 단행되어 20년쯤 젊어졌다.
1980년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 하야시키고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그의 나이 49세, 노태우 48세, 허화평 43세였다. 신군부의 등장으로 또 다시 세대교체 바람이 불어 한국은 20년 정도 젊어졌다.
필자는 전두환 시대야말로 마땅히 재평가되어야 하는 한국사의 위대한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왜냐! 전두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박정희의 고도성장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박살 났을 것이 거의 분명했기 때문이다. 신군부의 거사가 아니었다면 ‘1980년 서울의 봄’이란 시대적 분위기로 볼 때 김영삼·김대중 둘 중의 하나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1980년은 이란의 회교혁명으로 전 세계가 제2차 석유위기의 충격파에 휩싸였던 암울한 시기였다.
이 해 한국의 경제성장율은 마이너스 5.7%로 1961년 산업화 추진 이후 최악이었다.
냉해로 인한 농작물 흉작으로 물가가 30%나 폭등하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엄습했고, 유가 폭등, 국제수지 적자 급증으로 미증유의 재앙이 한국을 덥쳤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선동과 무능, 급진적 좌익 이념, 국수주의적 내셔널리즘으로 범벅이 된 인물들이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면 대한민국 현대사는 어떻게 난도질 당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1980년 신군부의 등장은 제2의 유신이었다.
#. 민주화에 대한 환상
전두환과 그의 후임자 노태우는 한국의 4년제 정규 육사가 배출한 리더다.
4년제 정규 육사는 6‧25가 한창이던 1951년 진해에서 창설됐다.
그전까지 육사는 3개월, 6개월, 1년 속성 과정으로 장교를 양성해냈다.
11기생부터 4년제로 전환된 한국 육사는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커리큘럼을 그대로 도입하여 운영했다.
육사 교육을 비롯한 한국군의 모든 제도는 미군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군의 운용에 필요한 원칙과 교본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았기에 군대 내의 의사결정 구조는 민주적 사고방식과 절차의 결정판이었다.
때문에 군 지휘관에 오르면 확고부동한 민주주의 원칙이 몸에 배었다.
이승만이 조지워싱턴대(학사)·하버드대(석사)·프린스턴대(박사)를 통해 양성된 아이비리그형 리더라면, 전두환·노태우는 미국식 군사교육 시스템으로 육성된 웨스트포인트형 리더였다.
전두환의 후임 대통령 노태우는 군에서 전역한 후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그는 정당이나 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군에 있을 때보다 민주주의가 더 잘 작동되는 사례를 경험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군인이기 때문에 비민주적이고, 민간정치인이기 때문에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릇된 선입관”이라고 비판했다.
과연 군대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가 작동되는지,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교육한 적이 있는가?
군사문화와 민주주의와 관련한 노태우의 증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화가 만병통치약쯤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민주화에 대한 환각·환상에서 깨어나야 역사와 사물이 제대로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도 깨달을 때가 되었다.
#. 기득권에 오염되지 않은 ‘젊은 피’였기에 가능했던 일들
전두환은 타고난 건강에서 오는 근면성과 젊음의 에너지로 국가대사를 진두지휘했다.
전두환 시절, 대통령 사초(史草)를 담당했던 공보비서관 김성익은 전두환이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의 자세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고 증언한다. 전두환은 1980년 8월 최규하를 내쫓고 대통령에 오른 후 전임자인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경제에서 나온다”라는 점을 깊이 인식했다.
이 점에서 전두환은 박정희의 근대화 정책을 충실히 이어받은 후계자였다.
전두환은 대통령 취임 즉시 한국의 경제 상황을 분석한 결과 중화학공업은 박정희의 유산을 구조조정하면 되고,
그것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새로운 성장동력의 창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오명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에게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 전자산업 진흥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한다.
대통령의 명에 의해 청와대는 각계 전문가를 총동원하여 1980년 12월 ‘전자산업육성방안’을 수립했다. 전자교환기·반도체·컴퓨터를 3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여 5년 내에 전자부문 생산과 수출을 세 배 늘린다는 내용이었다.
이 계획에 의해 정부 주도하에 국내 기업 기술진이 총동원되어 민관 합동 방식으로 총력전을 벌여 TDX 전자교환기 및 4메가D램 국산화 개발에 성공한다. 이로써 한국은 ICT 산업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전 국민이 향유하고 있는 온라인, IT, 반도체 산업의 음덕은 전적으로 전두환의 결단 덕분이다.
이밖에도 전두환이 아니면 해낼 수 없었던 업적은 무수히 많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한다.
①일본을 ‘안보무임승차론’이란 독특한 논리로 밀어붙여 일본으로부터 40억 달러의 경협자금을 들여오는 데 성공.
②남덕우 국무총리 등 전 국무위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거국적으로 반대한 88 서울올림픽 유치 성공.
③관치경제 위주의 사회를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바탕으로 한 자율화·개방화의 길로 전환.
④물가를 한자리 수로 억제하여 한국의 고질병이었던 인플레를 잡고 탄탄한 중산층 형성.
⑤국내 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하여 우리 기업들의 국제경쟁력 향상.
⑥500억 달러에 달했던 외채를 전액 상환하고 순채권국을 후임자에게 물려주다.
전두환은 자신의 인기를 희생할 수 있는 용기와, 사물을 편견 없이 단순화시킬 수 있는 포용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위에 열거한 업적들은 누가 뭐래도 그가 기득권에 물들지 않은 ‘젊은 피’였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 합의형 리더십이냐, 민심 우선형 리더십이냐
전두환 시대의 국가 주요정책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민주화 지도자 시대에 비해 훨씬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군 출신 지도자는 국가대사의 결정 과정에서 각종 대안을 검토하고 전문가 의견을 중시하는 합의형 리더십의 전형을 보였다.
혁명이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지도자들은 기득권에 때묻지 않은 젊은 피 세대였기에 국가의 백년대계에 필요한 정책의 경우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일을 추진해냈다.
물론, 반대 의견을 제압하고 국가대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적(政敵)을 양산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시절 추진한 한일 국교 정상화, 고속도로와 제철소 건설, 중화학공업 추진 과정이나 전두환 시절 물가 안정정책, 국내 시장 개방 사례에서 보듯 국가 효율을 높이는 정책과 인기 위주의 정책은 대척점에 서 있다.
만약 박정희가 민심우선형 리더였다면 경부고속도로, 종합제철소 건설, 국군 월남파병이 가능했을까?
정부가 인기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월등한 업적을 쌓은 이유는 그들이 독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능률적인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민간 정치인들은 특정 목표를 설정하고 정치력을 동원하여 이를 해결하려는 민심 우선형 리더십이었다. 그들은 국민들이 좋아할 만한 인기 위주의 정책들만 골라서 시행했고,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 고통을 요구하는 정책이나 개혁 어젠다는 철저히 회피했다. 그 결과 정권의 인기가 높아졌을지는 모르나, 국가와 사회의 효율성·생산성·경쟁력은 현저히 퇴보했다.
국민들은 1993년 등장한 민주화 정권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포용하여 국가 에너지를 결집시켜 선진국 도약의 과제를 성취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 정권은 자신들이 ‘권위주의의 화신’이라고 비판했던 박정희식 1인 지배체제를 그대로 답습했다.
민간 지도자들이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권의 구조가 1인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결과 국가의 주요 정책이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나 전문가의 판단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선호에 의해 좌우됐다.
대통령과 국회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구성되었지만, 권력이 행사되고 정책이 입안·결정·집행되는 과정은 권위주의 체제를 그대로 답습했다.
그 결과 법치가 아닌 인치(人治)가 만연하여 김영삼·김대중은 ‘문민 독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 국민의 명령
국민의 힘 당 대표 경선으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특정인에 대한 지지 현상이 아니라, 바꾸라는 것이다.
보다 젊고 혈기왕성하고, 외국에 가서 혼밥 하지말고, 멀뚱멀뚱하며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은 짓 하지 말고, 외국 지도자들과 자신의 능력으로 대화하고, 국민이 싫어하는 일이라도 몸 사리지 말고 설득하고 대화하여 국가적 목표를 향해 선두에 서서 뛰라는 뜻이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 살펴 국제적 미아 신세 되지 않도록 엉뚱한 짓 그만하라는 뜻이다.
유권자 눈에 비친 현재의 정치판 주역들은 대부분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대에 탯줄을 대고 있던 사람들이다.
여당의 주류를 형성한 586 운동권 세력은 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추진한 소위 ‘민주화’, 혹은 주체사상이나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의 신민주주의 혁명론에 질긴 뿌리를 대고 있다.
이준석 돌풍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문민정권 등장 이래 단 한 번의 세대교체 없이 끼리끼리 편갈라 온갖 못된 짓만 골라서 해댐으로써 나라를 망쳐놓고 있는 정치판을 혁신하라는 유권자들의 준엄한 경고다.
좋든 싫든 세대교체는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다가오고 있다.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목숨 걸고 판을 쓸어 권력을 차지할 배포 있는 군인도 씨가 말랐다. 혁명적 정변을 통해 인위적 세대교체가 중단되었으니 이제 유권자, 국민이 나선 것이다.
기억하시기 바란다. 젊은 피 돌풍의 결과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은 운동권 586들이 하루아침에 ‘꼰대 세대’로 몰리고 있는 현상을….
그것은 문민과 운동권으로 위장한 위선적 정치인의 국민 눈치 살피기, 상대방 뒷통수 까기, 권력의 단물만 확실하게 빨며 자기희생은 눈꼽만큼도 안 하기, 포퓰리즘으로 표 구걸하기의 대가들,
1980년대의 운동권 추억이 기득권이 되어버린 구역질 나는 정치인들을 퇴출시켜 고여 있는 늪으로 변한 한국의 정치판을 바다로 흘러가는 강줄기로 바꾸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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