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 이원석과 ‘독종’ 한동훈
“먼저 승리를 확보하고 전쟁에 임하라.”
손자병법에 나오고 이순신 장군이 자주 인용했던 ‘선승구전(先勝求戰)’의 뜻이다. 평소 이원석 검찰총장이 수사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말이라고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에 대해 이 총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목소리를 냈다. 영장 청구 당일 “천문학적 개발이익을 부동산 개발업자와 브로커들이 나눠 가지도록 만든 지역 토착 비리로 극히 중대한 사안으로 본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는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이 총장의 자신감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대검 관계자는 “총장이 미진하다고 생각하는 건 법원에서 기각되고, 발부된다고 생각하는 건 다 영장이 발부되더라. 그래서 내부에선 총장이 ‘족집게’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2016∼2017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장 시절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구속시켰다. 당시 특수1부에서 영장을 청구한 21명 중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 1명을 제외하곤 기각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증거와 법리를 신중하고 꼼꼼히 따져 ‘이기는 싸움만 했다’는 의미다.
이 총장의 결재를 거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이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공이 넘어갔다. 한 장관은 지난해 12월 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며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돼 있다”는 등 공개되지 않았던 증거를 밝혔다. 27일 국회 본회의장에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예정되면서 이날 등판하는 한 장관에게 다시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검찰 안팎에선 현직 의원 구속과 관련된 한 장관 관련 일화도 다시 회자된다. 그는 2004년 1월 대검 중앙수사부 평검사 시절 김승연 한화 회장으로부터 10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서청원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구속시켰다. 그런데 10여 일 만에 한나라당 주도로 국회에서 석방요구결의안이 통과됐다. 한 달 뒤 국회 회기가 끝나자 검찰은 서 전 의원을 다시 재수감시키며 반격에 나섰다. 한 장관이 헌법 규정이 ‘회기 동안에만 석방’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찾아 재구속을 관철시킨 것이다. ‘독종’ 별명을 얻은 계기 중 하나다.
사법연수원 27기 동기인 한 장관과 이 총장은 1996년 입소 후 같은 반, 조에 배치돼 6반 A조에서 2년간 동고동락했다. 한 조는 17∼20명에 불과했다. 두 사람을 가르쳤던 연수원 교수는 “그 시절부터 둘 다 총명하고 눈에 띄었다. 단 1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명박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이 구속될 때 이들을 향해 박수쳤던 민주당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이 대표 구속영장 청구서가 공개되자 민주당에선 “용두사미” “옹색한 범죄사실”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속영장 청구서에 나온 이름이 이 대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더라도 민주당이 같은 반응을 보였을지 의문이다.
무혐의라는 자신이 있다면 당당히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응하면 된다. 불체포특권 뒤에 숨는 것은 옹색할 뿐이다. 사정·사법정국에 지친 국민들은 재판 전 법원의 1차 판단을 궁금해하고 있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