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22장
이사야서는 “...에 대한 경고라(aC;m' 맛사4853 노래, 종말, 욕망)” 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는 장들이 보이며, 70인 역 헬라어 성경에서는 이 경고라는 말씀을 경고(o{rasi" - 사13:1,19:1), 경고(o{rama-사21:1), 경고(rJh'ma-사15:1, 17:1,22:1)이라고 달리 기록하고 있습니다.
o{rama나 o{rasi"는 “보여진 것, 광경, 환상”이라는 뜻으로서 해당 내용에 대하여 환상 등으로 보았다는 말이며, rJh'ma는 “말해진 것, 선언, 예언, 명령”을 말함인바 이는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명령하였다는 뜻입니다.
사22:1에서는 경고(aC;m' 맛사4853 노래, 종말, 욕망)라는 말을 rJh'ma로 변역함은 지금 이사야가 환상을 보고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하심을 듣고 기록하였다는 말씀입니다.
1. 이상의 골짜기에 대한 경고
이상(@/yW:ji 힛자욘2384 묵시, 꿈, 이상) 골짜기는 어디인지 살펴봅니다.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이상의 골짜기를 예루살렘이라고 말합니다. 이 예루살렘은 동쪽의 기드론 계곡, 서쪽과 남쪽의 힌놈의 계곡으로 둘러싸인 도시이며, 하나님은 이처럼 골짜기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을 하나님께 경배하려고 오는 만민의 영적인 수도로 삼으려하셨다(2:1~4; 66:20~24). 말합니다.
70인 역 번역자의 의견도 다르지 않으니 번역자들은 이상의 골짜기를 시온의 골짜기(th'" favraggo" Siwn)라고 표현합니다.
아마 많은 선지자들이 이곳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묵시를 보았거나, 명령을 들었기에 이처럼 이상 골짜기라 명명된 것 같습니다.
1). 선지자들마저 지붕에 올라감을 질문합니다.
사22:1 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지붕에 올라간다 함은 두 개의 시사점이 있습니다.
마24: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두 번째로는 나라의 위급함이나, 왕 같은 자들의 사망소식 등을 알리기 위해 지붕(성전의 지붕 등)에 올라가 훤화 혹은 나팔 등을 불기 위해 올라가는 행위입니다.
①. 열매 없는 자들로 채워진 예루살렘성입니다.
사22:2 훤화하며(mavtaia“게으른, 열매 없는, 목적이 없는” ejneplhvsqh“채운다, 만족시킨다.”) 떠들던 성, 이라고 말씀하며, 히브리어 성경은 “훤화하며(ha;lem 멜레아4395 풍요함, 완성된, 열매) 떠들던(ha;vuT] 테슈아8663 요란한 소리, 소란) 성”이었다 합니다.
이 둘을 함께 살피면 예루살렘은 제사하려는 자들이 가지고 오는 제물로 항상 풍요로웠고 떠들썩하였으나 사실은 예루살렘성은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그런 성이 되었다는 뜻이라 봅니다.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넘쳤으나 그 속은 열매를 찾기가 힘들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②. 이성은 상처를 받지 않았는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성이었습니다.
“즐거워하던 고을이여”란 자신은 즐겁고 유쾌한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자(bowvntwn oiJ traumativai sou ouj traumativai)라는 말입니다.
자신은 상처(traumativai)입은 것이 전혀 없는데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자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③. 도망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타인에게 위로되지 못하고 상처만 안기던 자들이, 신앙의 열매를 찾아 볼 수 없었던 자들이 전쟁의 소문을 들은 제사장이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부는 대신에 제일먼저 짐을 싸 도망 길에 오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④. 추측컨대 이들 중에는 도망하다 죽은 자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22:2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며
전쟁의 소문을 듣고 도망하고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전쟁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하심은 도망하던 중에 일부 사람들이 압사 등의 사건으로 죽었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2. 모든 통치자들이 도망하기에 바빴습니다.
사22:3“너의 관원들(@yxiq; 카친7101 지도자, 행정장관, 통치자, 우두머리)”이란 당시는 신정통치시대였으므로 모든 종교지도자와 정치적 지도자 및 행적지도자들을 말합니다.
1). 이들은 활을 버렸습니다.
활(tv,q, 케쉐트7198 활, 화살)을 버렸다 함은 야곱의 활을 버렸다는 말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창48:22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이것으로 아모리 땅을 그들의 손에서 빼앗았다고 주장합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창49:22~23)
이스라엘이 활과 검으로 아모리를 점령하지 않았으며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활로학대하지 않았고 요셉이 활로 형제들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활로 상대를 학대하기도 정복하기도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①. 활은 언약을 말씀합니다.
유대족속이 활을 가졌고, 이것을 가지고 수 염소를 벌하며(슥10:13), 원수는 멸하고(시45:4-5), 순종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살(합3:8-9 왕하13:14-15)이 되니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함을 말씀합니다.
계6:2에 기록되어진 활인 toxuvn은 “언약, 계약”을 뜻하는 말이며 어원이 틱토(5088)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뜻은 “생산하다, 낳다, 태어나다, 돋다, 산고를 겪다, 산출하다, 싹트게하다.” 이며 창세기의 오토와 오탐의 창조(바라)라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증표로 주신 무지개(히 “케셰트”, 헬(활-i\ri"))는 원래 “활”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헬라어 성경 창9:13에는 무지개를 활(활-tovxon)로 기록하였으며, 이활을 계6:2에서는 백마탄자가 소유한 활(tovxon)을 말하기도 합니다.
무지개를 “케셰트, 아이리스, 톡손”-활 - 로 말하는 것은 대기 중에 떠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태양과 반대쪽 하늘에 나타나는 일곱 가지 색(바깥쪽으로부터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 보라)으로 된 반원형으로 나타나는 빛의 줄, 흔히 비가 온 뒤 일어나는 현상이 마치 활의 모습과 같아서 붙여진 것 같습니다.
(활-i\ri")과 활(tovxon) 로 표현된 무지개는 하나님의 영광(겔1:28), 하나님의 진실과 은혜(계4:3). 하나님의 진노(시11:2) 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즉 활을 가짐은 하나님의 “언약”을 소유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②. 이들은 함께 도망하기로 공모하였습니다.
“너의 관원들은 다 함께(dh'y" 야하드3162 단위, 둘 다, 전혀, 일심으로 ) 도망하였다가”전쟁의 보고를 받은 관원들은 은밀히 동료들에게 전갈하여 연합하여 도망할 것을 결의하고 시행에 옮깁니다.
그런데 말씀을 팽개쳐 보리고 목숨 살려 공모하며 도망하는 그들을 줄줄이 사탕 역듯이, 굴비 역듯이 밧줄에 묶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끌려옵니다.
도망 할 때는 자유로웠으나 포로 되어 잡혀 올 때는 잔인하게 묶여(sklhrw'" dedemevnoi) 끌려 옮니다.
2). 포로 된 자들이 하나님 바라봄을 슬퍼하시는 하나님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버리고 자기만 살기위해 도주하였으나 잡혀 올 때는 굴비 역은 모습으로 돌아오며 성전 앞에 이르자 하나님을 향하였으며 이때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시22:4 이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ak;B; 바카1056 우는 것, 눈물, 골짜기)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멸하였음을 인하여 나를 위로하려고(!j'n: 나함5162 뉘우치다, 숨쉬다, 위로하다) 힘쓰지 말지니라
①. 하나님을 위로함이란 죄인이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곡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죄 값으로 보응을 받음을 슬퍼하는 것이며 이와는 반대로 죄인 되어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들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백성의 지도자들이 전쟁의 소문을 듣고 도망하는 것을 다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으로 포로로 잡아 오심은 하나님께서 곁으로 부르시는 방법(parakalei'n me-내가 곁으로 부른다)이라고 70인 역 헬라어 번역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②.하나님을 위로함이란 성도들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패자가 되어(mh; - 승리하지 못한다, 극복하지 못한다) 적군에 잡혀감으로 하나님께서는 슬퍼하셨다면, 그 반대로 성도들이 승자됨은 하나님께서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3). 인도자로 인하여 유대가 멸망
사22:5 이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①. 인도자가 잘못인도 하였습니다.
유대가 멸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인도자인 지도자들이 백성을 잘못 인도하였기 때문입니다.
70인 역 번역자들은 유대의 멸망의 원인을 크고 작은 잘못 인도한 것(lanw'ntai ajpo; mikrou' e{w" megavlou) 이라고 합니다.
이상을 보는 자들의 잘못된 인도가, 제사장들의 잘못된 인도가, 방백들의 잘못된 인도가 유대의 패망의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②. 인도자가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도자는 명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데 이들은 말씀을 버렸으니 이는 길 되시는 하나님을 버림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유리하는 별이 되었으며, 광야에서 배회하는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70인 역 번역자들은 유대의 멸망의 두 번째 원인을 길을 잃어버린 상태(plavnhsi" - 배회, 길 잃은 자)에서 유대의 지도자가 되어 길을 인도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③. 인도자들이 짓밟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도자들은 백성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앞에 서서 인도하는 자들인데 유대의 지도자(방백, 이상은 보는 자, 제사장 등)들은 백성위에 군림하여 백성의 고혈을 취합니다.
70인 역 번역자들은 유대가 멸망하는 세 번째 원인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을 짓밟는(katapathvmato"-짓밟는다)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상의 골짜기에서 이상을 보는 이유가 지배하기 위함이라면, 제사장이 된 이유가 지배욕 때문이라면, 방백이 되려는 이유가 백성의 고혈을 빨기 위함이라면 이는 하나님의 멸망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3. 유대가 만홀히 여겼던 것들
아래는 유대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잘못 인도한 것과 별도로 멸망의 또 다른 원인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1). 유대는 자신들에게 무기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지도자들이 타락하니 백성 된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나라를 지킬 무기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망하게 됩니다.
적들은 각종 무기로 부장하고 점령해 오는데 유대인들 손에는 하나의 칼자루도 없으니 적들이 무혈입성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22:6 엘람 사람은 전통을 졌고 병거 탄자와 마병이 함께 하였고 기르 사람은 방패를 들어내었으니
엘람 - ‘고지’(高地), ‘고원’, ‘숨겨진’이란 뜻. 바벨론 반대편 티그리스 강 동쪽 곧 오늘날의 이란 고원 남서부 지역에 세웠던 강대국(겔 32:24), 이 지역은 파사 곧 페르시아 지역으로 현재 이란을 말하며, 수도는 ‘수산’(수사)이다.
기르 - ‘성읍’, ‘벽’이란 뜻.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이 북이스라엘과 수리아 연합군을 쳐부수고 다메섹의 포로를 이주시킨 메소보다미아의 한 성읍(왕하 16:9; 사 22:6; 암 1:5; 9:7). 티그리스 강 동편 도로 변에 위치한 ‘델’과 동일 지역으로 본다.
①. 전쟁의 승패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연습함에 있습니다.
적병들은 활, 마병, 방패 등으로 전쟁연습을 충실히 하였으니 페르시아 땅의 엘람인은 전통을 지고 전쟁에 대비하며, 기르인은 방패를 가지고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하는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먹고 즐기기에 온힘을 다했으니 그 전쟁은 백전백패입니다.
②.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만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사22:7 병거는 너의 아름다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고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
“너의 아름다운 골짜기에(ejklektai; favraggev" sou-너의 택함을 받은 골짜기)”적병이 가득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좌정해야 할 장소에 사단의 군사들이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골짜기는 이상의 골짜기이며 시온의 골짜기입니다.
“마병은 성문에 정렬되었도다(plhsqhvsontai aJrmavtwn-결합하여 채운다).”함은 활 쏘는 자, 방패든 자, 마병 등이 미리 계획된 자기 위치에서 전쟁하기 위해 준비를 빈틈없이 마친 상태를 말합니다.
③. 전쟁에 패하고 나서야 자신들의 무기가 보였습니다.
사22: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전쟁에 패하고 나서 페르샤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을 뒤지는 가운데 무기고에는 능히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남을 무기가 비축되어 있었음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도들에게도 능히 사단을 대적하고도 남을 무기를 이미 지급하여 주셨는데 패전하는 이유는 이 무기가 있는 줄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
사22: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s;m; 마싸크4539 덮개, 휘장, 너울) 것을 벗기매(hl;G; 갈라1540 드러내다, 광고하다, 나타나다) 이 날에야 네가 수풀(r['y" 야아르3293 관목 숲, 꿀, 벌집, 산림) 곳간의 병기를(qv,n< 네쉐크5402 무기, 군 장비, 병기고) 바라보았고(fb'n: 나바트5027 주시하다, 열심히 바라보다 )
①. 택함을 받은 자들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사22:8의 결론은 택함 받은 자라도 눈이 열리지 않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무기를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70인 역 번역자들은 유대의 성을 향하여 말하기를 택함 받은 자의 성(tou;" ejklektou;" oi[kou" th'" povlew" - 택함 받은 자의 집이 있는 성)이라고 말씀하며 이성에 있는 무기고의 베일을 벗기고서야 다윗성에 있는 무기를 발견하였다는 말입니다.
무기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찾고 찾아야 발견합니다.
이 무기를 유대인이 찾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만약 유대인이 찾았다면 그들은 도망가다 굴비처럼 엮여 다윗 성으로 끌려오는 수모는 없었을 것입니다.
②. 무릎 꿇지 않음은 타락한 것이라 말씀합니다,
사22:9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yqiB] 베키아1233 균열, 틈, 사이 헬:a[kra"-방종, 타락한)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래(@/Tj]T' 타흐톤8481 맨 밑바닥의, - 보다 낮은 헬:ajrcaiva"-옛, 오래된) 못(hk;riB] 베레카1295 저수지, 무릎 꿇는)의 물로 모으며($b'q; 카바츠6908 모으다, 붙잡다, 쌓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나자 가장 귀한 물을 관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22:9의 말씀 속에는 몇가지 특이점이 발견됩니다.
첫째는 모으는 방법인데 “카바츠”로만 기록하였습니다, 그 다음 스트롱은
카브체엘(6909laex]b]q' 카브체엘 하나님께서 모으셨다) 즉 이 둘의 차이는 하나님 존재 여부이며 전쟁에 입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방법으로 일함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무너짐” 이라는 단어를 70인 역은 “방종, 타락”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이는 외형적인 균열보다는 유대인의 믿음의 균열이 패전의 주요요인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못”에 대한 설명입니다, 70인 역은 무릎을 꿇어야 하는 오래된 못이라고 합니다. 이는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함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믿고,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③. 승리의 비결은 도시를 깨끗하게 하는 여부에 있습니다.
사22:10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kaqeivlosan-깨끗하게 한다, 순결하게 한다).
예루살렘 성벽 주변에 적이 침투할 만한 집들이 있었던 것 같으며 이를 헐어버리고 성벽을 든든하게 하는데 이를 70인 역 번역자들은 성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3). 창조자를 바라보는 것이 전쟁의 승리비결입니다.
사22:11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ktivsanta-창조자, 창조한다)를 존경하지(ei[dete-바라보지) 아니하였느니라
전쟁을 준비하는 것 대단하게 중요합니다. 말씀을 연구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조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①. 창조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22: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 머리털을 밀며 굵은 베를 띠고 통곡하라는 말씀은 부끄러움에 개의치 말고 회개하라는 말씀이며, 누가 너를 주시하더라도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이사야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벌거벗은 몸으로 3년을 지낸 것처럼 말입니다.
②. 사람의 낮을 살핌은 징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사22: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그들은 회개를 거부하고 “서로 격려하도록 만든다.”고 말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승리하도록 만드실 터인데 오히려 그들은 서로 서로 격려(eujfrosuvnhn-격려한다, 즐겁게 한다)하니 그 격려하는 내용은 “내일 죽으리니 오늘 고기로 배불리고, 포도주를 마시자입니다.
③. 용서받을 수 없는 죄.
하나님께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말고 회개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유대인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서로를 즐기도록 격려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행위이며 그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22: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는 회개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죄도 회개하면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의인이라도 회개함이 없다면 결코 하나님께 용서 받지 못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