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톡 다음엔 우리인가” 떨고 있는 혁신 스타트업들
예비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00억 원 이상), 400억 원 투자 유치, 지난해 이용자 수 2300만 명…. 이렇게 잘나가던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의 날개가 꺾였다. 변호사 단체와의 갈등이 길어지면서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됐기 때문이다. 로톡을 운영하는 리걸테크(IT와 법률 서비스 결합) 스타트업 ‘로앤컴퍼니’는 직원 90여 명 중 절반 감원을 목표로 24일까지 희망퇴직 접수에 나섰다. 지난해 6월 입주한 서울 강남역 신사옥도 내놓는다. 남은 직원들의 연봉은 동결하고, 경영진은 임금을 삭감한다.
▷2014년 2월 서비스를 시작한 로톡은 의뢰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변호사를 직접 플랫폼에서 찾아 사건을 의뢰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증시에도 상장된 ‘벤고시(변호사)닷컴’을 벤치마킹했다. 법률시장의 문턱을 낮췄다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서비스 시작 1년여 만인 2015년 3월부터 수차례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특히 지난해 10월 대한변호사협회가 로톡 가입 변호사 9명에게 내린 과태료 처분이 직격탄이 됐다.
▷로톡의 위기를 지켜보는 다른 플랫폼 스타트업들도 불안하기만 하다. 법률뿐만 아니라 의료, 세무, 중개 등에서 전문직 단체와의 갈등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대한약사회는 비대면 의료 플랫폼 닥터나우에 대해 의약품 과장광고 등으로 약사법을 위반했다며 처벌을 요구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의료를 한시 허용한 정부 방침이 바뀌면 언제든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세금 환급 서비스 삼쩜삼을 운영하는 자비스앤빌런즈는 한국세무사회 등의 고발을 받았고,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협회를 법정단체로 만들어 회원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까지 부여하는 이른바 ‘직방금지법’을 밀고 있다.
▷플랫폼과 전문직 양쪽 주장은 팽팽하다. 플랫폼은 빅데이터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값싸게 전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직 단체들은 전문자격인의 통제가 없으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을 받게 된다고 맞선다. 각각 소비자의 편익과 보호를 앞세운 논리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다. 정부가 갈등의 중재자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로톡이 감원을 고민하던 14일 ‘벤고시닷컴’은 챗GPT 기술을 활용한 무료 온라인 법률상담을 상반기 중에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리걸테크 기업들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법률 서비스의 판을 키우고 있다. 최근 미국에선 챗GPT가 경영대학원(MBA), 로스쿨, 의사면허 모의시험에서 가뿐하게 합격점을 넘었다. 전문직들도 플랫폼의 도전에 ‘직역 수호’의 둑을 쌓는 대신 근본적인 대응책을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제방으론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