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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노트와 이런저런 이야기
열정과 관능, 유머와 감동이 넘치는 알모도바르식 팜므 판타지
<귀향>의 대본을 읽으면서 소설 <페드로 파라모 (Pedro Páramo)>가 떠올랐습니다. 룰포(Rulfo)의 소설과 페드로의 대본은 죽은 자와 산 자, 현실과 비현실, 환상과 일상, 경험과 경험하지 못한 것, 잠듦과 깨어있음의 공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다는 점 외에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요. 룰포의 소설과 <귀향>의 대본을 읽을 때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물론 깨어있지만 그 두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꿈에 사로 잡힙니다. 룰포의 소설은 굉장히 ‘멕시코’적이고 페드로의 각본은 매우 ‘만차’스럽다는 것도 독특한 공통점이랄 수 있겠죠.
-후안 호세 미야스 (Juan José Millás)
<귀향>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장기를 살린 드라마틱한 코미디다. 이야기는 거칠고 절망적일정도로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관습적이지 않다. 가장 지독한 현실의 이면에 초현실적인 마법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알모도바르 감독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판타지는 절망의 끝에서 딸을 찾아온 어머니의 유령이라는 소재로 더욱 치밀하고 완벽하게 관객을 사로잡는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장르의 교합을 즐기는 감독으로 이 영화 역시 교묘한 마술과 생생한 현실의 지속적인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누구도 알모도바르 감독이 쳐놓은 그 교묘함을 절대 간파할 수 없을 것. 그는 줄타기 곡예사와 같이 생사를 넘나들고 내러티브적인 요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자연스럽게 융합함으로써 환상적이고 뛰어난 각본이라는 찬사와 함께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유령이 찾아온다는 판타지적인 요소는 코믹함을 부각시키는 데도 일조한다. 쏠레가 라이문다 몰래 엄마의 유령을 숨기고, 미용실 고객들과 유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는 장면은 스릴까지 선사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남편의 죽음, 그것도 딸에 의한 살인이라는 지독히 절망적이고 끔찍한 사건 다음에 보여지는 시체를 처리하려 고군 분투 하는 라이문다의 모습 또한 코믹한 상황을 연출한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유령이 왜 라이문다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며, 딸의 미래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엄마의 무섭고도 강인한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웃음은 웃음으로 끝나지 않고, 판타지는 단지 판타지만이 아니다. 코미디와 여성, 열정과 감동이라는 알모도바르의 모든 장기가 어우러진 <귀향>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장르를 혼합 한다는 것은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건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다. 장르 사이를 오가거나, 바로 이야기의 톤을 바꿀 때 해야 할 일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그럴싸하게 연출해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묘한 작업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배우들이다. 이 영화에선 특히 여배우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어머니에게서 딸로, 다시 딸에게로 전해지는 여자들만의 비밀 이야기
“<귀향>은 가족에 관한 영화이고 나의 가족과 함께 한 영화이다. 나의 가족은 쏠레와 라이문다처럼 성공을 위해 촌에서 도시로 왔다. 내 여동생은 다행히도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머니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집에서 나와 도시인이 되었다. 라 만차의 관습과 문화로 돌아 갔을 때 그러한 경험이 나의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귀향>의 가족은 여성들로 이루어졌다. 돌아온 할머니는 바로 카르멘 마우라였고 그녀의 두 딸은 바로 롤라 두에냐스와 페넬로페 크루즈였다. 요아나 코보는 손녀였고 츄스 람프레아베는 아직 마을에 남아있던 파울라 숙모였다. 그리고 이웃인 아구스티나가 있다. 그녀는 라이문다 가족의 수많은 비밀을 알고 있고, 고향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라 만차에 남아 라이문다 대신 파울라 숙모를 돌보았다. 일어나자마자 파울라 숙모가 대답할 때까지 집 창가를 두드리며 매일 빵을 가지고 왔으며, 숙모가 죽은 걸 발견하고 마드리드에 있는 쏠레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또한 유령에게 문을 열어 줘 조카가 도착하기 전에 쉴 수 있게 해주었다. 아구스티나는 라이문다 가족의 일원이나 다름 없다.
드러나지도 돋보이지도 않는 캐릭터일수도 있지만, 사실 아구스티나는 여성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그건 바로 이웃 여성들간의 연대이다. 마을의 여자들은 문젯거리를 함께 공유하고 고통을 좀 더 잘 견디기 위해 함께 해결해 나간다. 물론 그 반대의 일도 일어난다. 이웃에 대한 증오는 결정적 사건이 터질 때까지 몇 세대를 내려오며 풀리지 않는다. 감독은 어린 시절 경험한 자신의 고향마을에서 있었던 긍정적인 사건들만을 기억했다고 한다. <귀향>은 홀로 살거나 홀로 된 여인들과 함께 하며 도움을 주는 이웃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감독의 어머니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웃들은 아구스티나의 캐릭터에 영감이 되었다. <귀향>에서 보여지는 여성들끼리의 강인한 연대감, 그것은 모성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족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여성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 무엇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가장 빛나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알모도바르는 내게 최고의 감독이다. 그는 나의 왕이다.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의 영화들은 나를 유혹했다. 나는 알모도바르의 영화 때문에 배우가 되었고,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꿈 같은 날을 기다렸고, 그날이 오게 됐다.”
-페넬로페 크루즈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의하면 페넬로페는 지금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다! 촬영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감독에겐 큰 기쁨 중 하나였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녀는 매우 스타일리쉬 해졌으나 데뷔작인 <하몽하몽>에서부터 그녀는 서민적인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으며, 8년 전 <라이브 플래쉬>에서는 버스 안에서 애를 낳는 창녀 역할을 하면서 영화의 처음 8분 동안 스크린을 완전히 압도하기도 했다.
<귀향>에서 라이문다 역할은 <내가 뭘 잘못했길래>에서 카르멘 마우라의 역할과 연장 선상에 있다. 페넬로페는 이런 압도적인 에너지를 소화 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문다는 또한 아주 연약한 여성 이기도 하다. 라이문다는 매우 사나울 수도 있고 힘없는 아이처럼 무너지기도 한다. 이러한 속수무책의 연약함에 바로 공감하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인상적이다. 감정이 배제된 서슬 푸른 눈동자가 바로 눈물로 가득 채워 지는, 가득 채우나 넘치지는 않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황홀하다. 영화 속에서 페넬로페의 모습은 초기 소피아 로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만큼 육감적이고 강렬하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생명력 넘치는 육감적인 라이문다의 몸을 표현하는데 페넬로페 크루즈는 완벽했지만, 단 하나 가짜인 것이 엉덩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알모도바르 감독과의 7년만의 재회에서 그녀가 보여준 건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억척스런 엄마, 거칠고 열정적인 여성 라이문다로서의 생생한 연기는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과 함께 그녀를 스페인 최고의 여배우로 만들어냈다.
칸영화제 공동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알모도바르의 여신들
감독이 직접 들려주는 보석처럼 빛나는 여배우들의 이야기!!
변함없는 불꽃을 간직한 영원한 알모도바르의 뮤즈, 카르멘 마우라
난 카르멘과 다시 만날 것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기대하게 될 줄 몰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카르멘이 함께 한다는 것에 기뻐했는지! 차벨라(Chavela)는 이렇게 노래 했다. ‘당신은 언제나 삶을 사랑했던 그 오래된 곳으로 돌아가죠’. 이건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다.
영화에서 거의 독백으로 구성된 아주 긴 시퀀스가 있다. 카르멘이 혼자 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카르멘은 꽉 찬 6페이지에 달하는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꽉 찬 6컷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딸 라이문다에 대해, 자신의 죽음과 귀향에 대해 얘기한다. 바로 이 장면 때문에 난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난 대사를 고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촬영 날, 모든 스탭들은 이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으며 기대 또한 컸다. 날을 꼬박 새워 촬영을 했고 모든 사람들이 이 장면을 위해 절대적으로 집중을 했다. 촬영을 하면서 다시 한번 난 카르멘과 일체감을 느꼈다. 그건 마치 내 손에 완벽하게 튜닝 된 악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았다. <신경쇠약직전의 여자>에서 <귀향>까지 카르멘은 배우로서 변한 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점을 발견 한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배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20년간 그 불꽃을 간직해왔다. 이 점은 다른 배우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른 캐스팅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쏠레 역의 롤라 두에냐스는 가장 복잡한 연기를 해내었다. 그녀는 가족의 네 여자 중 가장 별났다. 롤라는 만차의 억양을 스스로 완전히 깨우쳤다. 그녀는 미용사들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간 몰랐던 코믹한 재능을 깨우쳤다. 그녀는 매우 열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며 받은 또 다른 축복은 모든 여배우들이 가까이 지냈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정말 가족과 같았다.
어린 배우인 요아나 코보의 연기에도 매우 감동 받았다. 그녀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항상 귀를 기울였고, 침묵 속에서도 존재하였다. 이것이 연기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는 매우 풍부한 표정의 존재감이 있다. 요아나의 연기는 매우 진중하고, 신비롭다. 그리고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다.
아구스티나 역을 잘 소화해 준 블랑카 포르티요에게 감사한다. 난 그녀에 대해 잘 몰랐었기 때문에 정말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그녀는 매우 정확하고 잘 다듬어진 배우이고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은 정말 감동적이다. 아구스티나가 텅 빈 거리에 홀로 남아 쏠레의 차가 사라지는 걸 보는 모습은 모든 과장을 걷어 낸 외딴 곳의 고독을 잘 보여준다. 블랑카는 내 고향의 좋은 이웃들의 모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어머니가 돌아왔으니 딸들이여 희망을 품어도 됩니다.
아름다운 엔딩이다. 어머니는 딸을 배웅하고 문을 걸어 닫는다. 이상하지만 여기는 그 어머니의 집도 아니고 딸의 집도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거기 남는다. 미끄러지듯 어두운 복도를 걸어 카메라에서 멀어진 뒤에 왼편으로 돌아서 이층으로 막 올라서려 한다. 영화는 그때 끝난다. <귀향>의 이 마지막 장면에는 수사도 없고 방점도 없다. 어머니는 내 딸이 아닌 남의 딸의 병든 몸을 돌보기 위해 지금 남의 집 이층을 오르려는 참이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맺어야 할 곳에서 맺지 않은 채 설명해야 할 것을 다 말하지 않고 끝나는 중이다. 심지어 어머니가 지금 돌보려는 그 딸은 원수 같은 여자가 낳은 자식이다. 영화 속에서 라만차의 사람들은 말한다. 생전에 하지 못하고 남겨둔 일이 있을 때에 유령은 돌아오는 것이라고. <귀향>은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이 어머니가 별안간 생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 발단이 된 영화이므로 어머니는 정말 유령일 수도 있다(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다. 알모도바르는 여기에 대한 근거라 할 만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가 유령이라면, 그녀가 죽음의 강을 건너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원수의 딸을 돌보는 것이다. 알모도바르는 이 계단 앞에 선 어머니 혹은 어머니 유령의 모습을 엔딩으로 선택함으로써, 그녀의 ‘회귀’에 관련한 모든 과거의 진실과 풍문을 빈칸으로 만든 뒤, 어떤 숭고한 보살핌의 행위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태만을 남겨둔다.
오래전에 부모를 잃고 고향 라만차를 떠나 마드리드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자매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와 쏠레(롤라 두에냐스). 언니 라이문다는 힘겹게 잡일을 하며 놈팡이 같은 남편과 어린 딸 파울라를 부양하며 산다. 동생 쏠레는 2년 전 남편이 집을 나가버린 뒤 홀로 무허가 미용실을 운영하며 산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라이문다는 딸을 성추행하려던 남편이 딸의 손에 죽어 있는 걸 본다. 때맞춰 동생 쏠레에게서 전화가 온다. 라만차에 살던 이모가 죽었으니 장례식에 가자고 한다. 라이문다는 핑계를 대서 남게 되고, 동생 쏠레만 간다. 장례식장에서 쏠레는 죽은 어머니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고향 사람들의 말을 전해 듣는다. 그러고 나서,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쏠레는 자동차 트렁크 안에서 실제로 어머니(카르멘 마우라)의 음성을 듣는다. 실제 산 사람처럼 트렁크에서 나온 어머니는 이때부터 쏠레와 같이 지내며 살아간다. 영화는 이후부터 어머니가 무엇을 위해 돌아온 것인지 보여준다.
알모도바르는 이 영화가 “여자들간에 존재하는 연대의식에 대한,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죽음과 맺고 있는 전혀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매우 자연스러운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전적인 이야기라고도 하는데, 그 말은 알모도바르가 경험한 이야기라기보다, 한때 그가 살았던 땅 라만차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이해하는 편이 맞다. 라만차가 고향인 알모도바르는 이 영화의 각본을 위해 실제 그의 두명의 누나를 불러들여 고향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던 여자들의 이야기와 유령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영감을 얻었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여성과 모성의 세계는 원천적인 것이다. 남성과 부권의 세계가 종종 허약한 것이거나 여성들의 세계 안으로 유입되고 싶어하는 가면의 욕망인 것에 반해, 그들의 세계는 항상 불안한 토대 위에서도 결과적으로는 꿋꿋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충만함이 도사리고 있다. 알모도바르의 말대로 <귀향>은 여성과 모성의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그려낸 영화다. 때문에 ‘여성들의 연대’라는 첫 번째 화두가 매력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귀향>의 매력은 그 여성들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 방식에 있다. 그것은 두 번째 화두인 죽음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
알모도바르는 멜로드라마와 미스터리 구조를 꾸준하게 사용한다. 멜로드라마가 여성들의 세계를 주제화 하는 것이라면, 미스터리 구조는 그 주제를 흥미롭게 하는 빈칸의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 <귀향>에서 알모도바르는 미스터리한 서사에 주술을 건다. 그것이 멜로드라마 장르의 거대한 숭고함을 끌어낸다. 그 주술은 죽음을 상대로 한 것이며, 죽었다고 생각되는 어머니를 귀환시키는 것이다. 혹은 그녀의 귀환을 믿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귀향>에서 미스터리는 어머니의 존재 그 자체다. 알모도바르는 죽음에 대해 조롱이나 안간힘으로 맞서는 대신 능청스러운 서사를 통해, 그의 표현을 빌면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관계를 통해, 유령이 산 자의 세계를 방문하게 한다. 원천적인 모성의 힘과 여성의 연대는 그 유령의 출몰로만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알모도바르가 <귀향>에서 성공하는 것은 유령이 산 자들과 함께 있다고 믿게 하는 영화적 주술에 있다. 그건 무속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영매나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알모도바르는 라만차식 무속의 영화 <귀향>을 만들었으며 스스로 영화적 영매가 되기를 자임하였다. <귀향>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영화적인 완성도로 볼 때 <귀향>은 알모도바르가 지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음을 알리는 영화다. 똑 떨어지는 상상력, 이른바 신경증적 미학의 80년대를 지나 만들어진 90년대와 2000년대 그의 다른 영화들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이힐>과 <비밀의 화원>의 충격을 지나, <라이브 플래쉬>의 완성을 지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과 <그녀에게>의 정점을 지나, <나쁜 교육>에서 했던 반복을 한번 더 반복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십여년간에 만들어낸 여타 작품보다 주제적으로나 영화적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9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알모도바르의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력은 이번에 모성의 유령을 귀환시키는 방법으로 매력을 선사한다. 원수의 딸까지 사랑할 수 있는 거대한 모성의 힘은 그렇게 알모도바르가 불러들인 유령의 현존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된 것이다. 글 정한석(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2006-09-19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