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이재명은 전주를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이재명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가정사를 공개했다. 자신을 ‘비천한 집안 출신’이라고 전제한 뒤, 자신의 주변을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고 하면서 ’진흙 속에서도 꽃은 피고 제 출신이 비천한 것은 제 잘못이 아니니 저를 탓하지 말라‘고 했다. 대선 캠페인은 어차피 네거티브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인 만큼 이재명의 이 발언은 앞으로 있을 대선 가도에서 틀림없이 불거질 것으로 보이는 형수 욕설, 살인자 조카 변호, 친형 정신 병원 강제 입원, 등 자신의 이름표 뒤에 따라 다니는 숱한 패륜적 허물에 대한 공격을 사전에 방어하기 위해 수성 차원에서 나온 전략적 발언으로 들려 참으로 치사하고 비열한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이 유년기를 보냈던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위치는 전 세계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에 속할 정도로 가난을 탈피하지 못한 빈곤 국가였다. 식량의 자급자족은 턱없이 부족하여 춘궁기가 도래하면 어김없이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을 정도로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하고 궁핍했다. 빈곤한 생활은 서민의 일상사가 되었기에 가난은 수치스러운 일도 아니었고 창피한 일도 아니었다. 앞집, 옆집, 뒷집이 처한 환경이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오십보백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비루한 환경이었지만 사람들의 심성은 맑고 밝아 이웃 간에는 정이 넘쳤다. 비록 가난은 했지만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 나라와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루는데 중추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960년대 중반, 대구에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윤복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 움막에 생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노름과 술에 찌들어 있었고 남편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남겨 두고 가출까지 했다. 이러한 환경이다 보니 동생을 보살피는 몫은 언제나 이윤복의 차지였다. 식구들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이윤복은 갖은 고초를 겪어가며 구두 딱기, 신문팔이, 껌팔이 등을 하면서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달픈 자신의 하루하루 생활상을 일기장에 촘촘히 적었다. 가난한 학생에게 헌신적이었던 담임 선생님은 이 사실을 책으로 발간하여 세상에 알렸다. 이 책이 발간되자 이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각계로부터 이윤복을 돕는 온정의 물결이 쇄도했다.
이윤복의 일기장이 세상에 크게 화제가 되자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계기가 되었고 가출한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요인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이윤복의 일기장 제목이 “저 하늘에도 슬픔이”였다. 심금을 울린 이윤복의 이 스토리텔링은 그 당시 착하게 살았던 모든 사람이 공유했던 휴머니즘이었기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윤복의 실화는 후일 몇 편의 영화로 만들어져 그 시대 생활상을 반추했다. 이윤복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이유는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이 자신을 “비천한 집안 출신이라면서 자신의 주변을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있다는 말로 자신의 비윤리적 허물을 그 시대 환경 탓으로 돌려 물타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명보다 훨씬 더 험악한 가정에 살았던 이윤복은 그토록 찌든 가난 속에서 갖은 험한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부모를 탓하거나 빈곤한 생활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학대가 심했을 때도 그랬고, 구두 딱이를 하면서 텃세에 시달릴 때도 가난을 탓하거나 비천한 집안을 탓하지 않았다. 대구 시내 다방을 돌면서 껌을 팔다가 고아원 직원에 붙들려 강제 수용당했을 때는 오직 끼니를 거르고 있을 아버지와 동생들을 생각하며 탈출했으며, 돈 벌러 가겠다며 편지 한 장 남겨 놓고 가출한 여동생을 찾기 위해선 무작정 상경하는 진정한 가족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의 가정은 부모가 건재했고 식구들도 많았으니 가난은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윤복의 가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은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재명이 스스로 비천한 가정 출신이라고 말한 것은 폭압적이고 삐뚤어진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을 교묘하게 가난한 환경 탓으로 돌려 가족에게 결코 해선 안 될 몹쓸 짓을 한 것에 대한 동정심 유발을 통해 자기 합리화를 기하기 위한 목적 때문일 것이지만 이러한 감성팔이는 비록 어려운 환경이지만 건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일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생활상을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세대에는 그러한 유치한 퍼포먼스는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조롱만 받을 뿐이다. 하기야 자신의 야심 찬 공약인 재난지원금,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음식점 총량제 등. 비현실적인 공약이 여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자 궁여지책으로 들고나온 것이 감성팔이겠지만 이제 그것도 통하지 않으니 바닥이 다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댓글 이재명이 사전에 설레발을 치며 비굴하게 자기 방어를 하지만 이재명의 추악한 인긴 됨됨이를 아는 국민들은 이재명의 이러한 넋두리를 미친개가 달보고 짖어대는 짓거리로 빆에는 생각핮비 않을 걳입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 변명, 남탓하기 뿐인데 이재명을 따르는 중생들이 한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 중반에는전 세계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에 속할 정도로 가난을 탈피하지 못한 빈곤 국가'에서 72년도에 통일벼가 재배되면서 식량문제가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중반에는'은 삭제해야 될것 같습니다. "이재명이 스스로 비천한 가정 출신이라고 말한 것은 폭압적이고 삐뚤어진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을 교묘하게 가난한 환경 탓으로 돌려 가족에게 결코 해선 안 될 몹쓸 짓을 한 것에 대한 동정심 유발을 통해 자기 합리화를 기하기 위한 목적 때문일 것"이란 지적이 촌철살인의 명언입니다.
위낙 말바꾸기를 잘하는 이재명이다 보니
밑천이 다 떨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국가 채무를 무한정 늘려도 된다는 그의 무지막지한 발언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존경하는 박근혜라고 했다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줄 알았나보다"라고 언급한 대목은 경악 그 자체입니다. 최근 여의도 주변은 이재명의 완주 가능성 여부로 설왕설래한다고 합니다.
이윤복의 저하늘의 슬픔이란 영화도 나왔었죠..
저의 명덕초등학교 선배입니다.
이재명 부친이 동촌비행장에서 근무하며 청구대 야간을 다녔다는 보도도 있더군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윤복의 가정보다 훨씬 더 넉넉했다는 의미가 성립됩니다. 그런데도 성정이 폭압적이고 난폭한 것은 가난 탓이 아니라 본인의 삐뚤어진 성격탓 이겠지요. 그에 비하면 이윤복은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될 정도로 성실하고 꿋꿋하게 살았던 인물이지요. 훌륭한 선배를 두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