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무풍한송길[舞風寒松路] 기타 아래 사진참조
三一登山會 2016.06.09.(木) 遠行野遊 案內
1.박제상유적(朴堤上遺蹟)-울주군 두동면 만화리-[대공원역에서 83KM, 1시간 20분].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던 사당터이다. 박제상은 신라시조(始祖) 朴赫居世의 후예로 奈勿王 8년(363) 양주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박제상은 訥祗王 즉위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왕제를 구출코자, 먼저 고구려에 가 있던 복호(卜好)를 구출해 귀국시킨 후, 일본으로 건너가 未斯欣을 구출해 내었다. 그러나 자신은 잡혀 심한 고문 끝에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당해 숨졌다. 한편 박제상의 부인은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으니 그 몸은 돌로 변하여 望夫石이 되고 그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가 숨은 곳이 隱乙岩[울주군 범서읍 적과리]이라 한다. 그 후 왕은 박제상의 딸을 둘째며느리로 삼고 박제상에게는 大阿飡을 追贈하였으며, 金氏婦人은 국國大夫人에 추봉하였다. 이곳에 사당을 짓고 향사토록 한 곳이 치산서원(鵄山書院)이다.
2.[NAVI-언양읍사무소], 언양읍성-울산시 언양읍 동부리 및 서부리 일원-박제상 유적에서 17KM, 32분. 사적 제153호. 지정면적 41,349㎡, 둘레 약 1,000m. 현재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다. 언양읍성은 토성과 석성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토성은 삼국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둘레는 1, 498척, 높이는 8척이었다. 이후 1500년(연산군 6)에 현감 이담룡(李聃龍)이 돌로 개축하여 확장하였는데, 이 때의 둘레는 3,064척, 높이가 13척이었다. 또한, 첩(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834개소이고 성안에는 우물이 네 곳 있었는데 현존하는 석성은 둥글게 자리잡은 성의 기초 위에 축조되어 있다. 언양읍성도 경주 남산의 신성(新城)이나 문무왕 때에 축조된 부산성(富山城) 등의 석축기법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신라 이래의 축성방법을 계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지역은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이 읍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언양읍성은 1966년 12월 27일 사적 제153호로 지정되었고, 2011년 6월 23일에는 남문 주변지역 132필지 26,997㎡도 사적으로 추가지정 예고되었다.
3. 중식-언양불고기 중식-울산시 언양읍 서부리-언양기와집불고기[☏
-052-262-4884],언양전통불고기[☏-052-262-0940],언양원조불고기[☏-052-254-4040]. 중식 후 임의로 식당에서 20∼100M 내외 언양읍성 관광
4. 작천정 계곡(작괘천)-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언양읍성에서 4.3KM, 12분]-해발 1,083m의 간월산에서 흘러 등억리를 지나면서 작천정 앞을 흐르는 시내를 작괘천(酌掛川)이라 하는데 물이 맑고 풍경이 뛰어나서 일찍 언양 지방의 위안처가 되어 왔으며, 작괘천이란 내[川]의 이름을 약해서 작천(酌川)이라고도 한다. 눈을 돌려 작천정 쪽을 보면 홍류폭포에서 내려 흐르는 옥수만년을 다듬어 큰 것은 호박소요 작은 것은 하나의 잔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바닥은 백포반석(白鋪盤石)이라 하여 이곳을 즐기는데 알맞은 자리를 만들어 준다.
작괘천의 이름의 유래에서 짐작되는 바와 같이 크고 작은 구덕은 자연적으로 자수정이 패여 나간 옥 구덕인 것이다. 특히 작괘천의 바위면은 형석이 많이 베겨 있어 달밤이면 반딧불이 불빛처럼 빛을 반사하는 것으로 장관을 이룬다.이 곳을 찾는 유람객은 작천정이란 이름은 알지만 나란히 걸려있는 수석정(漱石亭)이란 현판은 본체만체 한다. 수석(漱石)이란 수석침류(漱石枕流)의 고사(故事)에서 따온 말로 돌로 양치질하고 물을 베게 삼는다는 말로 오기가 센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5. 자수정동굴(紫水晶洞窟)-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작천정에서 2.2KM, 6분-영남의 교통요충지인 언양(삼남)에 있는 자수정동굴나라는 자수정 광산의 폐갱도를 활용하여 조성한 국내 최초의 인공 동굴 관광지이다. 자수정동굴나라는 미로(迷路)로 연결된 동굴은 총연장 2.5km, 넓이는 약 16,529m²의 연평균 온도가 12~16℃이며 자수정 광석의 직접 관찰이 가능하며 여름에는 추위를 겨울에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국내 유일한 동굴테마 관광지라 한다.
6. 통도사(通度寺) 무풍한송길(舞風寒松路) 트레킹[1.2KM]-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자수정동굴에서 10KM, 24분]-삼보사찰(三寶寺刹:佛寶·法寶·僧寶로 일컬이지는 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까닭은 ①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득도(得度)한다는 뜻, ②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③ 산형이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다. 특히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이에 통도사는 신라 불교의 계율 근본도량(根本道場)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찰이 아니고 후에 금강계단이라고 불려진 계단을 중심으로 몇몇 법당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 뒤 고려 초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둘 만큼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특히 현존하는 중요 석조물이 고려 초기 선종대에 조성되었으므로,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중요한 석조 조형으로는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 배례석(拜禮石), 봉발대(奉鉢臺), 그리고 국장생석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속하는 유물이고 그 밖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되었다.
통도사 무풍한송길[舞風寒松路]
[박제상유적]
[언양읍성]
[작천정]
[자수정동굴]
첫댓글 糖가 많습니다 늘것강에 유의하시기바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