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김명아<본지 주간>
오노레 드 발자크는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다”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신호와 일상에서 전해지는 감정은 언어와 행동으로 나타나고 표정으로 각인되어 진다. 책이 된 얼굴을 통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면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다른 이들의 삶도 들여다볼 수 있다. 정형화되지 않은 색과 향기는 마음을 움직이며 정서적 전염을 통해 수용과 인정으로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상처가 풍경이 되는 동안 한 권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책장 한쪽에 처박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그물엔 다양성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빛으로 투영되어 반사되기에 낯선 이들의 삶 속에서 새롭게 읽히며 감동을 줄 것이다. 그 믿음이 문 없는 문 앞에 서서 오늘을 기록하며 내일의 책장을 넘기게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낼 것인지 끝없는 질문을 통해 사유와 치유의 통로에서 소통하고 ‘오늘의 시’에 닿아 재발견되기를 바란다. 개인의 개성과 차이가 존중됨으로써 인생의 반전을 꾀할 수 있고 길 위에서 만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질문의 크기는 우리의 삶의 크기를 결정해준다고 했으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불임의 땅속은 꽃이 시력을 잃어야 열매를 맺고 길은 사람이 낸 상처이며 “누구나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고 했던가. 한낮의 햇살이 폭죽처럼 터질 때 꽃들은 온몸으로 빛을 토해내고 흔들리며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향기로 삶의 모습을 다르게 표출할 것이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빛나는 슬픔이 떠오르고 눈부신 상처 또한 일어설 것이며 벌거벗은 시선이 시적 변용의 과정을 거쳐 사라져가는 것들을 담아내고 수많은 질문으로 뚫고 나온다. 상상력과 반복의 연속을 통해 삶에 다시 새로운 옷을 입히고 시는 천천히 또는 빠르게 다가와 통념을 넘어선 사유와 치유의 순간을 주고 있다.
언젠가 “사람은 동사다”, “꿈 뒤의 꿈이 필요하다”, “명사를 사용하면 생각을 접는다”는 글을 읽었을 때 명명命名된 것들에 대해서도 재조명하고 재출발할 수 있는 ‘움직이는 시’를 쓰기 위해 무엇을 또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하며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심상으로 잠재력을 키우고 실험하고 싶었다. 집중과 선택으로 현실에서 진술된 모습을 확장 시키면 내 안에 새로운 길이 날 것이며 또한 새로운 질서가 생길 것이라 본다. 반복된 만남은 서로의 모습이 되었고 또 다른 만남을 연결하듯 시는 서로의 통로가 되어 주고 있다.
허형만 시인은 시 「사랑론」에서 “사랑이란 생각의 분량이다/ 출렁이되 넘치지 않는 생각의 바다/ 눈부신 생각의 산맥/ 슬플 때 한없이 깊어지는 생각의 우물/ 행복할 땐 꽃잎처럼 전율하는 생각의 나무/ 사랑이란 비어있는 영혼을 채우는 것이다…”고 했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고 했던가. 용서와 포용으로 서로가 이어지고 또 다른 서사를 만들어 낼 때 우리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바람을 통과하며 출렁이던 시간이 글을 씀으로써 다양한 형식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불균형을 바로 잡는다. 헐벗은 저녁이 잠들 때, 일상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은 시詩를 통해 얻어지고, 삶에 던졌던 질문들과 지나쳤던 것들은 마주하며, 말할 수 없는 것들에게는 침묵하고, 불확실함을 환영하면서 동시에 절제를 배워나간다. 서로를 위해 좀 더 기울인 시간의 무게가 현재 우리의 모습이며 『시와산문』을 있게 했음을 깨닫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6월, 제7회 계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시상식 및 이충이 전집 출판기념식을 앞두고 있다. 1994년 계간 『시와산문』을 창간하신 이충이 시인의 시 「찬란한 비밀」, “누가 물어도 그리운 사람”으로 우리는 선생님을 기억할 것이며 전집을 통해 함께 할 것이다. 또한 “신인문학상” 수상자를 여름호에 발표하며 그분들이 『시와산문』을 통해 시인, 에세이스트로서 새로운 이름을 얻고 작가로 출발하게 됨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더불어 시와산문문학회 안에서 소통하고 울림 있는 작품을 계속 쓸 수 있길 마음으로부터 기원하며 6월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