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 (張綠水)
장녹수 (張綠水 ? ~ 1506)
조선시대 연산군(燕山君)의 총희(寵姬)로서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 19년에 충청도 문의현령까지 지냈다.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었고 신분도 천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제안대군(齊安大君 : 成宗의 兄)의 여종이었는데 가노(家奴)와 혼인하여 자식까지 하나 있었다.
그러나 용모가 뛰어나고 가무에도 능하여 연산군의 눈에 들어 입궐, 내명부(內命婦) 종4품 숙원(淑媛)에 봉해졌고 많은 금·은·노비·전택(田宅) 등을 하사받았다.
왕의 총애를 기화로 국사(國事)에 간여하고 재정의 궁핍을 초래하는 등 연산군 실정(失政)의 한 원인을 만들었다.
즉, 1503년(연산군 9) 종3품 숙용(淑容)에 봉해진 뒤에는 선공감(繕工監)으로 하여금 그녀의 집을 새롭게 단장시켰으며, 1506년에는 오빠와 자녀들을 양인 신분으로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친척 중에서 제일 출세한 사람이라면 형부 김효손인데, 연산군 10년 이전에는 겨우 7품 무관직인 사정(司正)을 받았을 뿐이다.
6품과 7품은 질적 차이가 있어서 7품 이하는 정치적 비중이 거의 없는 단순 행정 또는 실무직에 해당하며, 서리 출신들도 여기까지는 많이 진출했다.
그러나 연산군 10년에서 12년 사이에 김효손은 벼락승진을 해서 정3품 당상관까지 올라갔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참형을 받고 적몰(籍沒)되었다. [출처] 장녹수 (張綠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