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 들어 2
어제는 창원에서 남서쪽 산성산 둘레길을 걸었더랬다. 방학에 든 둘째 날도 역시 학교로 갔다. 하지 지난 지 한 달이니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였다. 그간 장마 속에 태양이 내린 쬔 복사열에 북반구 지구 표면은 달구어졌다. 아직 중복과 말복이 남아 있다. 절기로는 입추와 처서까지 지내려면 더위가 한 달은 오롯이 견뎌야 한다. 대서였지만 폭염이라 할 만큼 무더위는 아니었다.
방학 둘째 날은 창원의 동쪽 산마루인 용제봉을 택했다.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대암고등학교 부근에 내렸다. 대체 국도 25호선 대방동 나들목을 따라 걸어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아침 등산로에는 주부들이 넘쳐났다. 이른 시간 산행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도 있고 아침 식후 산으로 오르는 아낙도 많았다. 평균수명이 여성이 높은 줄은 산에 들면 알 수 있다.
농바위를 지난 평바위를 앞둔 쉼터 의자에 앉아 얼려간 물을 마셨다. 간밤 인근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친구와 대작을 했더니 갈증이 났다. 그는 방학 중이만 보충수업을 맡아 학교에 출근했다. 그를 비롯해 몇몇 지기에게 나는 산으로 출근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변함없다. 내일모레도 마찬가지다. 다리 근력에 무리가 오지 않는다면 당분간 산으로 출근하련다.
숲 바깥 저만치 아래로는 창원터널로 넘나드는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숲에서는 여름을 맞아 제철에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자웅을 겨루듯 했다. 숲속으로 더 들어가니 기계음은 멀어지고 자연음은 더 가까워졌다. 비가 그친 지 제법 되었지만 용제봉 기슭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발품을 팔아 나선만큼 속세와 거리를 두고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상점령 이정표에 이르자 임도를 가득 매우다시피한 산행객들은 그 수가 현저히 줄었다. 등산은 얼마든지 수준별 학습이 가능해 중간에 되돌아 나가거나 숲 그늘이나 계곡으로 내려갔다. 나는 중간의 쉼터에서 얼음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석간수가 흐르는 계곡에 앉았다. 보름 전 비가 많이 왔을 때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폭포가 쏟아졌던 자리였다. 잠시 서늘한 기운 앞에 앉아 있었다.
이어 등산로에서 용제봉 정상을 향해 올랐다. 정상을 얼마 앞둔 지점에서 숲속으로 들었다. 숲을 헤쳐 나가면서 삭은 참나무 등걸에서 영지버섯을 찾았다. 아기 손바닥 크기 영지를 두 개 땄다. 얼마간 숲을 지나니 돌너덜이 나타났다. 자연석 바위 무더기에는 담쟁이가 붙어 자랐다. 언젠가 내가 돌에 붙어 자라는 담쟁이는 이름을 바꾸어 돌쟁이로 불러주어야겠다는 시가 떠올랐다.
산세가 낭떠러지는 아닐지라도 돌너덜을 조심스럽게 건너 다시 숲속으로 들었다. 그곳에 이르니 내가 찾던 영지버섯을 몇 개 더 발견했다. 갓을 펼친 크기가 내 손바닥보다 큰 것도 있었다. 아까 등산로 입구에 많고 많은 산행객들이 있었지만 내처럼 영지버섯을 따는 사람은 없거나 드물 것이다. 나는 인적 드문 숲속을 두리번거리면서 영지버섯을 계속 찾아냈다. 수확량이 제법 되었다.
산중턱으로 고압 송전탑이 산마루를 넘어갔다. 용제봉 정상과 대암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만나 산정으로 향하지 않고 계곡으로 내려섰다. 비탈을 따라 내려가다가 영지버섯을 몇 개 더 만났다. 이제 더 찾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목표한 소기의 성과는 거둔 편이었다. 석간수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비워진 생수 통에다 계곡의 물을 그냥 채워 마셨다. 샘물만큼이나 깨끗한 계곡물이었다.
계곡에는 습기를 좋아하는 노루오줌이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주변 그늘진 자리에는 비비추가 연보라 꽃을 피웠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아 산속에 더 머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등산로가 묵어 길이 희미했다. 부스럭거리는 부엽토를 밟으면서 산비탈을 내려섰다. 임도에 이르니 한낮이라 사람들이 드물었다. 맑은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얼굴의 땀을 씻고 나왔다. 1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