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노상인천] 콜레라와 미군 기름
2016년 09월 02일 00:05 금요일
"1960년대 초 인천 전역에 콜레라가 돌아 옛 송도역 인근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우리 마을엔 한 사람도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없었어요.
우물을 파면 기름이 둥둥 떴는데 우린 그 물을 먹고 자라서 절대로 콜레라 안 걸린다고들 했어요."
몇 년 전, 옥련동 옥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계속 살고 있던 어느 주민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한때 옥골은 '기름골'이었다. 1950년대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
옥련국제사격장 인근 산기슭에 미군 유류창이 자리 잡았다.
수원비행장 등 수도권 일대 미군부대에 기름을 공급하기 위해 지름 30m의 대형 기름 탱크 20여개가 있었다. 인천항으로 유조선이 들어오면 기름은 POL(미군유류보급창, 현 용현동 SK스카이뷰아파트)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옥골 저장탱크 까지 왔다.
송유관 파이프는 이음새가 자주 터졌다. 주민들은 깡통을 받쳐 기름을 받았다.
집집마다 된장, 고추장 대신 기름을 넣은 장독들이 있었다.
깡통을 넘친 기름은 논밭 웅덩이에 고였다.
겨울철 두껍게 말라버린 기름층을 회 뜨듯 양철로 벗겨서 그릇에 담았다. 이것은 훌륭한 땔감이었다. 왕겨에 버무리면 한줌으로도 하루 종일 불기가 살아 있었다.
남는 것은 몰래 내다 팔기도 했다. 주민들은 땅 속에 스며드는 미군 기름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최근 문학산 일대의 유류 오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인근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도 유류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20m 떨어진 곳에 미군 유류저장시설 1기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남구 용마루 지구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다량의 유류 오염 토양이 발견되었다.
과거 수인선 철도를 따라 이어진 미군 송유관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오염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고팠던 시절, 주민들은 송유관의 통과를 마을에 내린 축복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감당하기 힘든 골칫덩어리로 변했다.
콜레라와 미군 기름, 다 잊힌 줄 알았는데 망령처럼 다시 우리 곁에 다가 왔다.
미군 기름은 '콜레라 백신'이 아니다. 발암물질 일뿐이다.
굿모닝인천 편집장
용마루 주거환경 개선사업지구
기름탱크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빌려온 사진 입니다 1962년 사진입니다.
우선 왼쪽 위에 아암도가 보이고 ..그 아래로 송도유원지 일부가 보이고..
그 아래 석산으로 가는 능선 위에 작은 점의 모습으로 능허대가 보이고 있습니다.
석산 능선 아래의 산자락(기름탱크들이 있는)은 노적봉의 산록이 되겠습니다.
그 노적봉 서쪽 끝이 조개고개인데, 수인선과 송도가는 차로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밝은 선이 도로이고 어둡고 좁은 선이 수인선입니다.
아래로 오면서 두선이 근접하는 곳의 왼쪽..포풀러나무들이 있는 고지에
극동방송 학익송신소가 있었습니다.
오른쪽 갯벌에 둥그런 원이 보이는데 그 중심에 송신탑이 보이고 있습니다.
맨 아래 도로가 인하대 앞 도로인데..
자세히 보시면 중간 부위에 인하대 옛날 정문이 보입니다.
이 도로와 송도쪽에서 오는 도로가 오른쪽 아래 끝에서 만나게 되는데..
만나기 직전의 왼쪽에 보이는 공장 자리는
나중에 스칸디아 가구, 남인천 골프연습장이 들어서게 됩니다만..
지금은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길 맞은편에 집들이 모여있는 곳..이곳이 용현역 자리입니다
첫댓글 내가 어렸을때 보던 추억속의 지형 이군요 그 광경이 고스란히
제 머릿속에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아직도 생생 하답니다~~
pol 또는 시다찌라고 하던 곳이 사료 공장이 됬다가 후엔 경인
에너지로 넘어 갔다가 현재는 아파트 단지가 됬지요~~
50년대초반엔 시다찌에 북괴군 폭격으로 아주 큰 불도 났었죠
그 비행기는 격추를 못 시키고 놓쳤다고 했지요~인천의 옛 추억과
역사가 깃든 좋은 자료를 구해 오셨군요~~ 감개무량합니다~~
`~좋은자료 즐감 하고 갑니다~ 감사^*^
어렸을적 여름에 POL 철조망울타리안에 먹음직한 산딸기가 열려 있기에
저는 망을 보고 맹아산에 있었던 부랑아 보호시설의 원생 몇명이 철조망 안으로 들어 갔다가
군복을 입은 경비 아저씨에게 붙들려서 본의 아니게 POL안을 구경을 했었읍니다
다행히 POL측에서 저희 아버지(당시 부랑아 보호시설 원장)에게 이사실을 알리지 않아서
호된 야단을 면하였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