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보름날. 한자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이란 중원(中元: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下元:음력 10월 15일)에 대칭되는 말로서 이것들은 다 도교적인 명칭이다. 이날은 우리 세시풍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크다.
1월 1일은 1년이 시작하는 날로서 당연히 의의를 지녀왔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이 보다 더 중요한 뜻을 가져온 듯하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서는 보름달이 가지는 뜻이 아주 강하였다. 정월대보름이 우선 그렇고, 다음의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석도 보름날이다.
한반도 북부에서는 단오가 큰 명절이기도 했으나 중부 이남에서는 7월 보름인 백중보다도 비중이 작았다. 중부 이남에서는 단오를 그렇게 큰 명절로는 여기지 않았다. 씨름판이나 그네, 또는 백중 장(場) 같은 세시풍속 행사들이 단오보다는 7월 보름에 성하였다. 그것은 단오 때는 1년 농사 중 제일 큰일의 하나인 모내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바쁜 때이고, 백중 때는 김매기도 다 끝나고 가을 추수만을 남긴 한가한 시기라는 농사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는 결과이다.
이렇듯 달을 표준으로 하는 상원이나 추석은 중국에서도 물론 고대 이래의 중요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당(唐)/송대(宋代) 이래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에서의 추석은 한식이나 단오, 중구(重九:9월 9일)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던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가위[嘉俳] 기록 이래로 중국과는 달리 보름달의 비중이 훨씬 컸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 문화적 상징성
대보름날의 뜻을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달-여신-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 또는 풍요원리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태양이 양(陽)이며 남성으로 인격화되는 데 대해서 달은 음 (陰)이며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그래서 달의 상징구조는 여성, 출산력, 물, 식물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여신은 대지와 결합되며,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우리 세시풍속에서 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태양의 비중이 문제되지 않을 만큼 강하고 큰 것이었다. 실제 농경을 위해서는 음력이 한달씩이나 자연계절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계절이 정확한 태양력적 요소인 24절기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반 세시풍속에서는 여전히 달의 비중이 결정적이었고, 대보름은 바로 그 대표요 상징적인 날로 여겨져왔던 것이다.
■ 대보름날의 세시풍속
▷ 동제
동제를 지내는 시일은 약 6천동의 서면조사 통계로는 정초가 30%, 대보름이 40%, 10월 기타가 30%로서 대보름날이 차지하는 비율이 주류를 이룬다. 그 시간도 대개 자정으로서 1년 열두달의 첫 보름달이 충천하는 상징적인 시간이 된다. 동제신(洞祭神)도 여신이 남신의 2배를 넘는 주류를 이룬다. 이렇게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것이 우리 동제의 주류였고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줄다리기
줄다리기도 대부분이 대보름날 행사였다. 즉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상남도 영산의 줄다리기에서는 대낮에 그러한 짓을 하는 자는 없고 해가 져야 이루어진다고 하여, 마치 이것을 성행위처럼 여기는 것이 지방 노인들의 관념이었다. 특히 암줄(서부, 여자편)과 수줄(동부, 남자편)의 고리를 거는 일을 그렇게 여기는데, 여기에서 암줄편인 여성편이 이겨야 대지에 풍년이 든다는 관념, 그것을 성행위로 여긴다는 관념들은 특히 민간신앙에서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대보름날의 뜻은 이와같은 행사들의 요점에서 특히 잘 집약된다. 대보름의 뜻,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서 풍요의 원점이 된다.
▷보름새기
대보름날을 설날처럼 여기는 태고적 관습의 전승은 지금까지도 적지않게 남아 있다. 150여년 전의 《동국세시기》에도 “이날 온 집안에 등잔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 마치 섣달그믐날 밤 수세(守歲)하는 예와 같다.”고 되어 있다. 현대의 각 지방 민속조사보고서들에도 이러한 관습들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열나흗날 저녁부터 보름날이 밝아야 운수가 좋다고 하여 집안이 환해지도록 불을 켜놓으려고 하며, 배를 가진 사람은 배에도 불을 켜놓는다. 경기도에서도 열나흗날 밤에 제야(除夜)와 같이 밤을 새우는 풍속이 있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잠 안자기 내기를 하는 곳이 있다. 충청북도에서도 열나흗날 밤에 ‘보름새기’를 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요컨대 대보름날의 모든 관습들은 달을 표준으로 하던 신년이라는 고대생활의 유습이 계속 강하게 전승되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밖의 풍속
한편 대보름날에는 절식으로서 약밥, 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 일부럼, 귀밝이술을 먹으며, 기풍 기복행사로서 볏가릿대[禾竿]세우기, 복토(福土)훔치기, 용알뜨기, 다리밟기, 나무시집보내기, 백가반(百家飯)먹기, 나무아홉짐하기, 곡식안내기 등을 행한다. 또한 이날 행하여지는 농점(農點)으로서는 달집태우기, 사발점, 그림자점, 달불이, 집불이, 소밥주기, 닭울음점 등이 있으며, 이날 행해지는 제의와 놀이로서는 지신밟기, 별신굿, 안택고사, 용궁맞이, 기세배(旗歲拜), 쥐불놀이, 사자놀이, 관원놀음, 들놀음과 오광대탈놀음 등이 있다. 그리고 이날에는 고싸움, 나무쇠싸움 등의 각종 편싸움이 행하여지고, 제웅치기, 나무조롱달기, 더위팔기, 개보름쇠기, 모기불놓기, 방실놀이, 뱀치기 등의 액막이와 구충행사(驅蟲行事)도 행하여진다.
■ 다른나라의 대보름
이웃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상원은 중국에서도 한나라 때부터 8대축일(八大祝日)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다. 그러나 특히 일본에서는 대보름을 소정월(小正月)이라 부르고 있고, 지금은 양력화하고 있으면서도 이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일부의 북유럽 나라들의 민속에서는 1월 14일을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투리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대보름날을 신년 제1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이라고 할 수 있다.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
음력 정월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이 날이 설날만큼 의미가 있었다. 연간 약 2 백 가지인 우리 세시풍속 중 절반이 정월에 몰려 있고, 정월 세시풍속의 절반이 대보름과 관련이 있다. 달의 움직임에 따라 생활했기에 한 해의 첫 만월을 매우 중히 여긴 것이다. 설날부터 대보름날까지는 세시 풍속도 다양하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음력 정월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불렀다. 문일평(文一平)의 [호암전집 湖岩全集]에 다음과 같이 상원에 대한 일화가 나타나고 있다.
상원은 정월 십오 일이니, 이 날에 첫째 생각나는 것은 약밥이다. 전하는 말에는 신라 소지왕(炤智王)이 까마귀의 경고(警告)로 말미암아 금갑(琴匣)을 쏘아 위난(危難)에서 벗어난 날이 마침 이 상원이므로 이날로써 까마귀의 제일(祭日)을 삼아 약밥을 지어 무르추개질하던 것이 후세에 와서는 국속(國俗)을 이루어 마치 떡국이 원일(元日)의 시식(時食)이 되듯이 약밥이 상원의 시식이 되고 말았다.
'아홉 차례' - 대보름 전날의 세시민속으로 '아홉 차례' 라는 것이 있었다. 이날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아홉 차례 읽어야 하고, 새끼를 꼬면 아홉 발을 꽈야 하고 나무를 하면 아홉 단을 해야 한다. 빨래를 하면 아홉 가지, 물을 길으면 아홉 동이, 매 맞으면 아홉 대를 맞아야 한다. 오곡밥도 아홉 번 먹었다. '9'라는 숫자는 길수(吉數)인 '3'이 세 번 곱해진 큰 길수이다. 그러나 '아홉(9)수'는 너무 지나치게 운수가 좋다보니 액운이 따를 수 있으므로 아홉수의 나이에는 혼인을 하지말라는 등의 속신도 있다. - [입춘], [삼짇날], [중양절] 참조
달이 뜨면 아이들은 뺑대쑥단에 자기 나이만큼 묶은 볏 짚 끈을 하나 씩 풀어 태우며 달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대보름 전야에 베푸는 호기놀이·오방놀이·지신밟기도 있다. 풍악을 치고 집집을 누비며 대청-큰방-우물-부엌-측간-곳간 등을 돌며 잡귀와 잡신을 공갈하여 내쫓아 주고 대가로서 술과 떡을 대접받고 곡식을 얻어 모은다. 모은 곡식으로 떡을 빚어 나누어 먹으면 연중 병귀가 가까이 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다.
볏가릿대 풍속 - 농가에서 정월 보름날 하루 전에 볏짚단의 밑 부분을 묶고 그 안에 벼·보리·조·기장·수수·콩·팥 등 갖가지 곡식을 이삭채 싸서 긴 장대 끝에 매달아 안채 한 귀퉁이나 외양간 옆에 높이 세운다. 이것을 볏가릿대라 하는데 곡식을 넣어 묶은 짚단 밑에 목화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목화를 매달기도 하고 또 새끼줄을 여러 개 늘어뜨려 놓기도 하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가지 많은 나무에 여러 곡식이삭과 목화송이를 장식하여 세우기도 한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새벽 일찍이 집안 아이들로 하여금 볏가릿대주위를 돌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노래를 해가 뜰 때까지 부르게 한다. 볏가릿대는 음력 2월 1일 농사를 시작하는 머슴날에 거두는데. 이때 짚단 안에 넣었던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 볏가릿대 풍속은 한강 이북에서는 볼 수 없고 한강 이남의 영호남 지방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우리민족의 고대 생활에서 유래된 고유의 풍속인 것을 알 수 있다.
우정솥 - 밤이 이슥해지면 또래들은 밥과 나물을 훔쳐 비벼 먹고 했다. 어머니들께서는 훔쳐갈 밥을 우정(友情) 솥 안에 넣어 두셨는데 가끔 토끼며 닭서리까지 하다가 경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보름절식(귀밝이술과 부럼, 사진1) - 보름 새벽에는 오곡으로 밥을 지어먹고, 두부, 취나물, 콩나물 등을 먹는다. 아침에 찰밥을 지어 성주신에게 바치고, 이때 바쳤던 술을 '귀밝이술'(또는 명이주(明耳酒), 치롱주(癡聾酒))이라 하여 마셨다. 이 풍습도 아직 남아 있는데, 대보름날 새벽에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잘 들린다는 것이다. 이날 또, 호두 은행 잣 등을 깨물며「올 한해 피부병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 「부럼 깨기」라고 한다. 부럼은 피부 부스럼에서 나온 말이다. 나이 수대로 깨뜨리기도 하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몇 개만 깬다.
달집태우기 - 낮에는 윷놀이 판이 벌어지고, 저녁이면 온 동네 사람이 마을 동산에 올라 동천에 뜨는 달을 맞이하며 "달 봤다"외치면서 절을 하며 한해 소원을 빌었다. 그런 후 장작, 볏짚, 솔가지, 댓가지로 높이 쌓아 만든 달집에 불을 사르기로 달맞이를 하며 그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액연(厄鳶) 태우기 - 겨우내 날리며 놀던 연을 줄을 끊어 날려보내거나 달집에 넣어 태운다. 연에다 '액(厄)'자 하나를 쓰기도 하고,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 혹은 '某家某生身厄消滅'이라고 써서 띄우다가 해질 무렵에 그 연줄을 끊어버린다. 액운(厄運)을 멀리하고 태우기 위함이다. 이날 이후 연을 날리면 상놈이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남녀 줄다리기 - 달맞이가 끝나면 남정네와 여인네들이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인네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남정네들은 슬그머니 져주기도 했다. 달은 여인이며 풍요의 대지이기 때문이다.
다리 밟기(踏橋) - 이밖에도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언덕에 올라가 달뜨는 것을 기다리는 영월(迎月), 일년간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양의 수표교(水標橋) 등을 밟는 행사와 지방에 따라 숱한 민속행사가 있었다.
쥐불놀이 - 요즘 대보름날 밤에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쥐불놀이는 원래 새해 첫 쥐날 (상자일(上子日)) 민속이었다. 남자들이 논두렁에 불을 질러 쥐를 없앰으로써 그해 풍년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때 여자들은 빈 방아를 찧으며 쥐가 없어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먹거리 - 세시의 먹을거리로는 정초의 떡국·식혜·부침개·엿·조청·인절미 등이 있고, 대보름날은 부럼 외에 차조인절미·나박김치·고사리·시래기·호박·가지·취나물 등이 있었다. 또한 대보름을 대표하는 음식은 약밥이다. 대추·밤·꿀·잣 등을 섞은 찹쌀밥으로 신라 때부터 즐겨 먹고 있는데 이는 왕실의 위기를 구해준 까마귀 제사 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쌀에 콩·팥 등을 섞은 오곡밥도 해 먹는다. 오곡밥은 세 집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이웃과 나눠 먹는다.
'굶는 개' - 사람들은 이것저것 잘 먹고 마셨지만 이날만큼은 개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보름날 개가 밥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끓는 등 발육이 좋지 않다는 속설 때문이라 하지만 크고 밝은 달을 바라보며 밤새 짖어댈 개의 배를 미리 허기지게 하여 지쳐 짖지 못하게 할 필요 때문이다. 지금도 굶는 것을 "개, 보름 쇠 듯 한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즐거이 지내야 할 명절을 특별한 음식도 없이 무미하게 지냄을 이르는 말이다.